[박광규의 미스터리 산책]비밀의 세상 숲속을 조심하라

나무가 많아져서 숲을 이루면 멋진 삼림이 되지만, 때로는 무서운 곳으로 변한다. 뒤에 누가 따라오는지 눈치 채지도 못하고, 구원을 청하는 외침 소리도 전해지지 않고, 자칫하면 길을 잃을 수도 있는 그런 곳이 된다.

2000년대 들어와 주 5일 근무가 확립되면서 일상생활이 크게 바뀌었다. 매주 연휴가 있는 셈이라, 주말에 집안에서 쉬는 대신 야외로 놀러가는 사람이 크게 늘어났다. 다만 이에 따른 반대급부로 4월의 유일한 공휴일이었던 식목일이 공휴일에서 제외(2006년부터)되었다. 어느덧 10년 남짓 되었어도 ‘4월’ 하면 식목일이 떠오르고, 4월 5일이면 하루 쉴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야외활동으로 갈 만한 곳은 다양하다. 해수욕장이나 스키장처럼 특정 계절에만 갈 수 있는 곳과는 달리 수목원이나 삼림욕장 등의 숲은 사시사철 변함없이 찾아갈 수도 있고, 편한 복장과 신발만 있으면 되니 별다른 준비가 필요 없다는 것도 장점이다. 울창한 숲길에서 나무를 바라보고 걸으며 마음이 가라앉는 경험은 누구나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이처럼 나무는 사람에게 가까운 존재이다. 추리소설에서 개나 고양이 탐정은 등장했지만 나무 탐정, 혹은 식물 탐정은 아직 본 일이 없다. 말도 못하고 움직이지도 않으니 당연한 일이다. 일본 작품에서 나무로 만든 ‘안락의자’가 탐정으로 등장한 것을 보면 어느 상상력 좋은 작가가 나무 탐정을 탄생시킬지도 모르겠다.

수백 년을 지켜온 나무, 표지 삼기엔 최고
나무는 탐정까지는 아니더라도 소재나 소도구로서는 적지 않게 쓰이곤 한다. 누가 베어내거나 파내지만 않는다면 한자리에서 꼼짝하지 않고 수백 년을 살아가기 때문에 어떤 표지로 삼기에 최고라 할 수 있다. 에드거 앨런 포의 <황금 풍뎅이>(1843)는 암호 추리소설의 시조이면서, 나무를 주요 목표물로 쓴 대표적인 작품이다. 유서 깊은 가문 출신이지만 지금은 외딴 섬에서 빈곤하게 살아가는 윌리엄 레그런드의 취미는 곤충 채집. 어느 날 신종 황금풍뎅이를 발견한 그는 근처에서 주운 낡은 양피지로 감싸 집으로 돌아오는데, 그 양피지를 불에 쬐자 의미를 알 수 없는 숫자와 기호, 즉 암호들이 나타난다. 암호가 가리키는 곳은 바로 수십m에 달하는 아름드리 백합나무였다.

포의 ‘후계자’인 코난 도일 역시 오래된 나무를 표지로 사용하는 작품인 <머스그레이브 전례문>(1893)을 썼다. 대학 동창의 의뢰로 집사 실종사건 조사를 시작한 홈즈는 몇백 년 전부터 전해 내려온 가문의 의식문이 암호라는 것을 알아낸다. 그 암호에서도 ‘떡갈나무’가 주요한 표지로 사용되고 있다.

일본 작가 츠하라 야스미의 단편 <백합나무 그늘>(<루피너스 탐정단의 우수>(2007)에 수록)은 이보다 소박한 수수께끼를 다룬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여성의 장례식을 찾아간 고등학교 시절 단짝 친구들은 시댁 식구들의 차가운 분위기에 당황한다. 그 이유는 그녀가 죽기 전 시댁 소유의 땅을 시에 기증하게 했기 때문. 그녀가 어떤 나무는 베어버리게 하고, 백합 나무들만을 남겨놓은 이유는 무엇인지, 남은 친구들은 지혜를 모은다.

가끔은 좋지 않은 측면으로 쓰일 때가 있다. 나무는 대개 가공된 형태(야구배트나 각목)의 흉기로 많이 쓰인다. 공포영화에서는 사람 잡아먹는 식인식물도 가끔 나오는데, 현대 문명사회를 배경으로 한 추리소설에 등장시키기에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도전정신이 투철한 시마다 소지는 <어둠 비탈의 식인나무>(1990)를 발표했다. 1941년, 요코하마의 어둠 비탈에 있는 거대한 녹나무 가지에 온몸이 갈가리 찢긴 여섯 살 여자아이의 시체가 걸려 있다. 그리고 40년 후인 1984년의 어둠 비탈 근처 저택 지붕에 앉은 채 그 거대 녹나무를 바라보는 듯한 자세로 죽은 한 남자가 발견된다. 이어 거대 녹나무의 밑동에서 어린아이로 추정되는 오래된 백골 네 구도 발견된다. 과연 이 나무는 수십 년에 걸쳐서 사람을 잡아먹어 온 괴물 나무일까. 마치 괴기소설처럼 분위기가 이어지지만, 명탐정 미타라이는 명쾌하게 사건을 해결해 나간다.

(왼쪽부터)표지가 된 나무(에드거 앨런 포, <황금풍뎅이>) 시마다 소지 <어둠 비탈의 식인나무> 타나 프렌치 <살인의 숲>

숲으로 들어가 실종된 어린아이들
나무가 많아져서 숲을 이루면 멋진 삼림이 되지만, 때로는 무서운 곳으로 변한다. 뒤에 누가 따라오는지 눈치채지도 못하고, 구원을 청하는 외침 소리도 전해지지 않고, 자칫하면 길을 잃을 수도 있는 그런 곳이 된다. 특히 어린아이들에게는 더욱 그럴 것이다.

“숲은 반짝임과 속삭임, 환상으로 가득하다. …바스락거림, 돌풍의 소란스러움,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끊어진 비명소리들. 숲의 빈 공간은 비밀의 세상으로 충만하다. 그 세상은 우리의 눈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 종종거리며 달리고 있다. 조심하라.”

숲속에서 길을 잃은 트리샤 (스티븐 킹 <톰 고든을 사랑한 소녀> 팝업북에서)

아일랜드 작가 타나 프렌치의 숲 묘사이다. 그녀의 데뷔작 <살인의 숲>(2007)에서는 숲에서 비극이 벌어진다. 열두 살 동갑내기 친구 셋이 집 근처의 숲으로 놀러 들어가지만 밤이 늦도록 돌아오지 않고, 수색 끝에 소년 하나만 발견된다. 그는 심한 정신적 충격으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하지 못하고, 나머지 두 명은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 숲에서 살아 돌아온 소년은 과거를 숨기고 이름마저 바꾸어 성장한다. 20년 후 형사가 된 그는 친구들이 실종된 숲에서 어린 소녀의 시체가 발견되자 과거의 트라우마와 싸우며 사건 수사에 나서는데, 모든 단서는 숲속을 향하고 있다.

그러나 숲속의 공포보다 더욱 무서운 것은 따로 있다. G. K. 체스터튼의 단편 <부러진 검의 의미>(1911)에서 브라운 신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현명한 사람이라면 어디에다가 잎사귀를 숨길까? 숲속이지. 만일 숲이 없다면 그는 숲을 만들려 할 거란 말일세. … 자, 누군가 시체를 숨겨야 한다면 그는 그것을 숨기기 위하여 시체더미를 만들 것이란 말일세. … 끔찍한 죄악일세.”

은유이긴 하지만 현실에서도 ‘잎사귀를 숨기려고 숲을 만드는’ 힘 있는 사람이 있으니 무서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스티븐 킹은 체스터튼이나 타나 프렌치보다는 훨씬 밝은 면을 보여준다. 미국 프로야구팀 보스턴 레드삭스의 팬인 그는 <톰 고든을 사랑한 소녀>(1999)에서 아홉 살 어린 소녀의 모험담을 묘사한다. 주말에 엄마, 오빠와 함께 숲으로 소풍을 나간 트리샤는 뒤처지는 바람에 길을 잃고 만다. 숲속을 헤매는 동안 허기와 외로움이 찾아오고, 무언가가 계속 자신을 따라오는 듯한 기분에 무서움도 생기지만, 유일한 휴대품인 라디오에서 들리는 야구 중계에서 투수 톰 고든(지난해까지 다저스에서 활약했던 디 고든의 아버지)의 활약에 힘을 얻어가며 계속 나아간다.

박광규의 미스터리 산책

다행히 우리나라의 수목원이나 삼림욕장은 미국의 규모보다는 훨씬 조촐한 편이라 길을 잃거나 조난당할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주말 날씨가 좋다면, 잠깐 시간을 내어 숲을 찾아가 보시기를 권한다.

<박광규 추리소설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