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대통령의 꿈’ 심어준 대통령 멘토

최시중-이명박, 이상득 의원 소개로 70년대 중반 운명적 만남

2007년 12월 20일 한나라당 대선 선대위 해단식을 마친 뒤 당사를 올려보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과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박민규 기자>

‘대통령의 멘토’ ‘친구 같은 형님’ ‘그림자 참모’…
이 같은 현란한 수사를 받고 있는 주인공은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다. 그는 고희를 넘겼지만 현장정치의 초년병이다. 그는 방송과 통신정책을 총괄하는 방송통신위 위원장이다. 하지만 방송통신위에서 그의 영향력은 단지 방송과 통신정책에 국한하지 않는다. 그의 이름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는 ‘막후 정치적 영향력’이다. 그 영향력의 원천은 이명박 대통령과의 각별한 인연이다.

두 사람의 인연은 1970년대 중반으로 거슬러올라간다. 이 대통령이 현대건설 이사 시절 이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의원이 “잘나가는 동생이 있다”고 소개함으로써 만나 운명적 만남이 이뤄졌다. 두 사람은 동향(포항)으로 자주 만났다. 단지 형 친구의 동생이기 때문은 아니다. ‘친구’가 되는 데는 특별한 끌림이 있게 마련이다. 최 위원장은 그것을 ‘감각적 공유’라고 표현했다. 지지리도 가난했던 성장 과정, 그리고 자수성가, 사회적 리더로 성장 등 인생의 공통분모가 서로 통하게 했던 것이다.

한국갤럽회장, 선거판 막후 실력자
최 위원장은 경북 구룡포에서 1937년에 태어났다. 중학교 1학년 때 부친이 사고로 자리보전을 하는 바람에 소년 가장으로 생활전선에 나서야 했다. 구룡포 선착장에서 고구마를 구워 팔았다. 구룡포에서 오징어를 짊어지고 포항 죽도시장까지 120리를 걸어다니며 오징어 장사를 다녔다. 이틀에 죽 한 끼 먹는 날도 허다했다고 회상했다. 주변의 도움이 없었다면 학업을 중단해야 할 형편이었다. 서점 무료점원, 입주 가정교사 등을 하면서 근근히 구룡포 중학교와 대구 대륜고등학교(수석입학)를 마쳤다. 이런 성장사는 이 대통령과 빼닮았다.

최 위원장은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뒤 언론인(합동통신과 동아일보)으로, 그리고 여론조사 전문가(한국갤럽회장)로 활동했다. 이 기간 동안 이 대통령에게 ‘기업인’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하는 데 조언할 수 있는 기초를 마련해준 것이다. 그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한국갤럽 회장 시절을 회상하면서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은 내 말에 귀를 기울였다”면서 “당시 한나라당 대선 후보였던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는 그렇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사실 한국 선거에 여론조사 기법을 도입한 주인공이다. 이런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게 선거판의 막후 실력자가 된 것이다.

한승수 총리와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지난해 8월 12일 국무회의에 앞서 환담을 나누고 있다. <우철훈 기자>

그는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제대로 된 대통령을 만들어보고 싶었다”면서 “내가 정치를 안한 한풀이를 하고 싶었고, 그래서 이 대통령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그가 ‘이명박’을 선택한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여기에는 여러 설이 있지만 우연한 기회의 여행이 계기가 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앙코르와트를 방문한 그는 화려한 문명을 자랑했던 캄보디아가 폐허가 된 모습을 보고 ‘이명박 같은 사람이 국가 지도자가 되어야 국운이 편다’고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 경제를 아는 대통령이 나와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다는 것이다.

최 위원장은 이 대통령이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뒤부터 줄곧 정치적 조언을 하면서 이 대통령의 정치적 역량을 키우기 위해 노력했다. 이 대통령의 서울시장 출마도 그중 하나다. 최 위원장은 “정치적 기반을 다지기 위해서는 서울시장에 출마하는 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당시 이 대통령에게 국가 최고지도자의 꿈을 심어준 것이다.

그는 “사실 나와 이 대통령과 관계는 (대통령 선거 출마를) 요청하고 뭐하고 그럴 관계가 아니다. 그냥 가는 것이다”라면서 “2002년 서울시장이 되고 나서 마음 속으로는 구체화하면서 진행해왔으니까…”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서울시장 출마하는 게 도움될 것”
2007년 대선에서는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5년 전 대선에서 노무현 민주당 후보를 지지했던 사람들이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를 지지한 것이다. 국정을 같이 운영했던 민주당 정동영 후보보다 많이 지지했다. 정당이 다르고, 노선이 다르고, 이미지가 다른데도 득표 기반을 일정 부분 공유한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최 위원장의 대답이 필요한 대목이다.

2007년 대선 이전의 한국 정치는 한마디로 ‘정체성 정치’라고 규정되곤 했다. 다른말로 하면 ‘패거리 정치’다. 지역으로 나뉘고 이념으로 갈라져 세력싸움을 했다. 실용론을 앞세운 경제대통령은 정체성 정치를 무력화한 것이다. 이 대통령과 관련한 수많은 도덕적 시비마저도 잠재웠다.

2007년 5월 경선 국면에서 박근혜 의원은 한국갤럽의 공정성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당시 이명박 후보와 최 한국갤럽회장이 가깝다는 것을 의식한 지적이다. 그는 아예 사표를 내고 이명박 캠프(고문)에 합류했다. 그리고 이명박 캠프의 건너편에 있는 대하빌딩에 개인사무실을 냈다. 최 위원장을 잘 아는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그는 사재를 털어 선거를 도운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최 위원장의 한 측근도 “당시 자기 돈 쓰지 않고 선거를 도운 사람이 있겠느냐”고 말했다. 이 측근은 또 “지난 대선 때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에 생명을 걸 정도로 노력한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대하빌딩팀’의 실체는 대선이 끝난 뒤 세상에 알려졌다. 이곳에서 만들어진 전략기획 및 여론분석과 선거대책이 곧 MB 대선전략이 됐다는 후문이다. 최 위원장의 탁월한 여론분석과 정세판단, 방향설정의 판단자료가 여기서 나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최 위원장 자신도 이를 부정하지 않는다. 그는 “당시 이 후보에게 수시로 바른말을 하는 역할을 맡았다”고 말했다. 그중 하나가 경선에서 박근혜 의원과 박빙 승부였다. 캠프 내 거의 모든 사람은 경선의 압승을 예상했다.

정권 창출의 일등공신이자 대통령의 멘토라는 정치적 위상은 그에게 엄청난 힘을 실어주었다. 실제로 “그의 영향력은 한승수 총리를 능가한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고위직 인선 때마다 하마평에 올랐다. 국무총리, 국정원장, 청와대 비서실 실장, 한나라당 비례대표 1번 심지어 KBS 사장 등의 물망에도 올랐다. 그의 정치적 영향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있다.

국정원의 한 인사는 “사실 내부에선 최 위원장이 국정원장으로 오기 바라는 기류가 강했다”면서 “그런 바람은 청와대에도 전달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최 위원장은 대통령 선거가 끝난 뒤 한 인터뷰에서 “나는 사실 잠시 떠나 있었으면 한다.

(내 이름이) 잊힐 정도의 기간 동안 떠날까 한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정치적 멘토에서 정치적 동지로 바뀐 것이다.

<김경은 기자 jjj@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