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미디어 빅뱅, 조·중·동이 앞장선다?

동아, 방송 진출 위해 기자 모집… 조선은 전진기지 구축 착수

조·중·동은 신문·방송 겸영 시대를 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왼쪽부터) 조선 방상훈 사장, 중앙 홍석현 회장, 동아 김재호 사장. <경향신문>

지난 2월 임시국회 당시 직권상정을 통해서라도 미디어법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촉구했던 조선·중앙일보는 여야가 미디어위원회를 구성해 신문·방송 겸영 문제를 논의하기로 합의하자 일단 숨을 고르는 모습이다. 지난해 말까지만 하더라도 CJ, KT, SKT 등 자본력과 콘텐츠를 겸비한 대기업을 대상으로 방송 겸영 시대를 대비한 물밑작업에 들어갔던 이들 신문은 해당 업체들로부터 거절당한 뒤 업체 물색을 잠정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들이 방송 진출 준비를 완전히 접은 것은 아니다. ‘조·중·동 방송’ ‘재벌 방송’이라는 여론의 악화에도 이 신문의 사주들은 신년사에서 방송 진출 의지를 공개적으로 천명하는 등 의미심장한 발언을 이어갔다.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은 당시 “우리는 이미 새로운 매체(방송)에서도 경쟁력이 충분하다는 점을 확인했다”며 “이제 실험은 끝났다, 실행에 옮겨야 할 때”라고 밝혔다.

중앙, 방송 진출 프로젝트팀 꾸려
한나라당이 지난 1월 김형오 국회의장에게 미디어법 개정안의 직권상정을 요구하며 강행처리 움직임을 보일 무렵, 언론계에는 “조선이 방송통신위원회로부터 방송 채널을 약속받았다”는 소문이 돌았다. 조선의 한 관계자는 “지상파도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채널을 준다고 해도 막대한 투자비가 들어가는 사업에 무작정 뛰어들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일축했지만, 조선은 자회사 디지틀조선일보가 운영하는 경제전문 케이블TV 비즈니스앤을 통해 경력기자와 PD, 인턴기자, VJ를 모집하는 등 방송사업을 위한 포석 깔기를 멈추지 않았다.

특히 조선은 3월 16일 방송사업의 전진 기지가 될 상암DMC 개발을 위한 특수목적법인 엔에프컨소시엄 주식회사를 공식 출범시키기도 했다. 이 회사는 조선과 디지틀조선일보, 한국경제TV, 한국경제신문, 메가스터디, 미래에셋생명보험 6개사가 컨소시엄 형태로 운영하던 것을 법인으로 설립한 것으로, 조선은 “신설 법인이 출범함에 따라 프로젝트 추진에 한층 탄력을 받게 됐다”고 자평했다.

그동안 방상훈 사장은 “지상파나 종합편성채널은 여력이 안 돼 시장에 나오더라도 뛰어들기 어렵다”고 선을 그었지만, 조선의 한 관계자는 “보도전문채널, 종합편성채널, 지상파TV, IPTV 등 각각의 시나리오에 대해 검토했다”며 “지상파의 경우 신문사의 지분을 20%로 한정한 한나라당 개정안을 보고 실망했다”고 털어놨다.

방송 진출에 대해 ‘조선일보’의 기본 입장이 ‘Wait and See’라며 표정 관리를 하는 반면, 가장 적극적이었던 ‘중앙일보’는 숨고르기에 들어간 분위기다.

지난해 8월 방송 진출을 위한 프로젝트팀 ‘Q프로젝트 태스크포스’를 꾸린 뒤 중앙은 자회사인 중앙방송의 채널 강화 방안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고, 그 결과 히스토리채널은 없애고 Q채널과 J골프는 분리하는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방송 진출에 대비해 기존 방송사업을 점검, 몸집을 최대한 슬림화하겠다는 구상이다. 이 작업은 홍석현 중앙 회장의 아들 홍정도 이사가 담당했는데, 홍 이사는 중앙의 방송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미디어법에 대한 보도에서도 중앙은 정부·여당과 뉴라이트 인사들의 발언을 주요 면에 게재하고, 프랑스의 규제 완화 사례를 왜곡해 싣는 등 방송 진출 염원을 감추지 않고 있다. 특히 중앙은 방송 진출과 관련해 각종 정보를 가장 적극적으로 수집하고 준비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3월 16일 중앙일보는 판형을 베를리너판으로 바꾸는 ‘모험’을 단행하면서 홍 회장의 관심은 새로운 판형의 안착에 쏠려 있는 듯 보였지만, 아들인 홍 이사에게 방송 등 뉴미디어 분야를 맡긴 점을 볼 때 방송 진출에 대한 의지는 여전한 것으로 보인다.

조선이나 중앙에 비해 뒤늦게 방송사업 준비에 시동을 건 ‘동아일보’는 지난 3월 24일, 흥미로운 사고를 실었다. “올해를 방송 진출의 원년으로 삼았다”며 “생동감 있는 현장 리포트를 맡을 방송기자”를 모집한다는 내용이었다. 실제로 김재호 동아 사장은 지난 1월 신년사에서 “올 한 해는 우리에게 종합미디어그룹을 완성하는 원년이 될 것”이라며 “미디어 빅뱅 시대에 방송 진출은 언론사로서 시대적 사명”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지난해 12월 29일 동아닷컴을 통해 인터넷 방송뉴스 ‘동아 뉴스스테이션’을 시작한 동아는 사옥 1층 로비에 이를 홍보하는 커다란 현수막을 걸어놓기도 했다.

방송사업을 통해 돈도 벌고 영향력도 키우겠다는 이들 신문의 꿈은 원대하지만, 꿈이 현실로 이뤄지기까지는 ‘돈’의 문제가 남아 있다. 방송가에서는 인력과 장비 등을 모두 갖춘 상태에서 종합오락채널의 경우 한 해 들어가는 비용을 보통 300억~400억 원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보도 기능을 추가하면 연간 운영비는 600억~1000억 원으로 불어난다. 신문업계에서 부채비율이 낮고 부동산도 많아 재무구조가 가장 탄탄한 조선의 2007년 사내유보금(이익잉여금)은 2913억여 원. 조선의 한 관계자는 “매출이 해마다 줄어드는 상황에서 방송사업에 유보금을 전부 쏟아부었다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본지에까지 타격이 오기 때문에 당장 뭔가를 결정하기엔 부담스러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중앙은 조선보다 더 사정이 좋지 않다. 판형을 변경하는 데 1500억 원을 투자했고, 윤전기를 교체하는 과정에서 환율이 크게 올라 환차손을 입는 등 지난해 수백억 원의 적자를 냈다. 지난해 매출액이 2007년에 비해 140여억 원이나 줄어든 동아는 자회사를 중심으로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다. 대기업과 ‘짝짓기’를 하지 않으면 단독으로 방송사업에 진출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KT·SKT와 짝짓기 시나리오
그럼 짝짓기한다면 그 대상은 누구일까. 가장 많이 거론되는 곳은 KT와 SKT다. 그러나 이들은 하나같이 “종편이든 지상파든 지금 시장에 들어가는 것은 자선사업하러 가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KT와 SKT의 경우 ‘정치적인 결단’을 내릴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은 3월 26일 방통위 1주년 기념식에서 ‘미디어 빅뱅’ 시대를 강조하며 미디어 간 칸막이를 없애겠다고 장담했다. ‘조선·중앙·동아일보가 정권 창출에 기여한 데 대한 보은 입법’이라는 비판을 받는 미디어법 개정안을 놓고 여야가 구성한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가 3월 13일부터 100일 동안의 공식 일정에 들어간 상황에서 최 위원장의 이 같은 발언은 월권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통신업계의 한 관계자는 “라이벌인 SKT의 경우 YTN 계열 PP를 인수했다 실패한 경험이 있지만, KT가 방통위에 이끌려 종편을 시작하면 SKT도 안 들어갈 수 없을 것”이라며 “안팎으로 경기가 안 좋고 광고시장이 얼어붙은 지금 상황에서 새로운 방송사업은 통신사가 벌어들인 수익으로 재투자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KT와 SKT가 각각 신문사와 짝을 이뤄 방송 사업에 진출한다는 시나리오가 가장 설득력 있게 회자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안경숙<미디어오늘 신문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