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연구]신임 국정원 기조실장 김주성

구조조정 전문가 ‘개혁의 칼날’쥐다

김주성(61) 세종문화회관 사장이 국가정보원 기획조정실장으로 임명된 것은 파격이었다. 그래서 MB의 ‘이상한 고집’ ‘친형의 정실인사’라는 악평이 나오기도 했다. 김주성 실장이 코오롱그룹 부회장 출신으로, 같은 회사 출신인 이상득 부의장이 영향력을 발휘한 인사가 아니냐는 것이다. 그러나 김 실장의 ‘전공과목’이 기업 구조조정이라는 데에 생각이 미치면 이 대통령의 인사에 수긍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국정원 시스템의 대대적인 개혁, 큰 규모의 인적 청산이 예고된 인사라는 것이다.

세종문화회관 경영개선 성과 올려
“김 실장은 (이 대통령에게) 실력을 인정받았다”는 설이 그래서 흘러 나온다. 그는 2005년 세종문화회관 대표이사로 취임한 후 만성적인 노사 갈등으로 바람 잘 날 없었던 세종문화회관을 조용히 평정했다. 코오롱에서도 그는 ‘고요하나 예리한 칼날’을 휘둘렀다. 구조조정본부장을 맡아 외환위기 이후 기업 구조조정을 거의 완벽히 수행했고, 이동찬 명예회장에서 아들 이웅열 회장으로 넘어가는 세대교체를 조율하는 과정에서 매끄러운 솜씨를 과시했다.

김주성 실장의 임명으로 이 대통령은 국정원을 움직이는 강력한 동력, 예리한 메스, 민감한 안테나를 장착한 셈이다. 국정원 기조실장 자리는 차관급이다. 연간 1조 원 정도로 추산되는 국정원 전체 예산을 관리한다. 예산집행권과 함께 조직 관리를 틀어쥘 수 있는 자리기 때문에 역대 대통령들은 자신의 복심이라 할 수 있는 인물들을 국정원 기조실장에 임명했다. 국정원 개혁의 바로미터, 개혁의 풍향계가 바로 기조실장이었다. 노무현 정부가 출범할 때 진보적 소장학자 서동만씨가 임명돼 국정원 개혁을 진두지휘했다.

김 실장은 외환위기 당시 코오롱그룹 구조조정본부장으로 회사의 체질 개선을 진두지휘했다. 회사 입장에선 충신이었고, 노조 입장에서 보면 ‘구사대의 수장’이었다. 1994년 그는 노사문제가 심각했던 코오롱 구미공장장으로 있으면서 노조원의 파업 찬반투표를 2년 연속 부결로 이끌어 그의 능력과 명성을 각인시켰다.

2005년 12월 당시 서울시장이던 이 대통령이 만성 적자에 허덕이던 세종문화회관의 해결사로 그를 발탁했다. 세종문화회관 사장을 맡아서는 개관 이래 싸움이 그치지 않던 고질적인 노사갈등을 해결하고 경영실적을 개선했다. 세종문화회관 사장 시절 그는 ‘과거의 관행’과 맞붙어 ‘사투’를 벌였다고 최근 술회했다. 그는 취임 직후 30여 년에 걸쳐 세종문화회관 건물 주변에 붙어 있는 묵은 껌들을 떼냈다. 한 달이 소요된 ‘난공사’였다고 한다. 남녀 화장실의 비율을 종전 7 대 3에서 3 대 7로 바꾸고 공연장 뒤 주차장을 공원으로 꾸며 각종 무료공연 장소로 활용토록 했다. ‘시골 다방’ 같다는 얘기를 들었던 커피숍도 호텔 수준의 뷔페식당으로 바꿔 광화문의 명소로 만들었다.

각종 회의 및 행사장으로 사용되던 컨벤션센터를 고급 실내악 전용홀로 꾸민 것도 음악인들의 열렬한 지지를 끌어냈다. 440석 규모였던 소극장을 639석 규모의 뮤지컬·연극·오페라 전문 공연장으로 리모델링했다.

예술단과 단원에 대한 평가제를 도입한 것도 그의 ‘경쟁과 질(質)경영’을 반영한 조치였다. 공연 시작 시간을 철저히 준수했고, 느슨했던 조직에 긴장감이 생겼다. 대관 등 각종 제도를 공연자 중심으로 고쳤으며, 경비·청소·방재 부문은 전자입찰을 통해 투명성을 제고했다. 그의 개혁 드라이브가 결실을 맺어 세종문화회관의 재정 자립도는 2005년 23.8%에서 2007년에는 31.8%(예상)로 높아졌다.

김 실장의 이 같은 경력으로 미뤄볼 때 향후 국정원은 전방위적 개혁의 회오리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대대적인 조직개편과 통폐합, 인력 구조조정이 예고돼 있는데, 바로 그 분야의 최고 전문가가 김 실장이라는 평가다. 정보기관 특유의 방만한 조직을 슬림화하고 효율적인 시스템으로 만들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김 실장의 발탁에는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우선 정보기관 기조실장으로서의 전문성을 갖췄냐는 지적이 있다. 일각에서는 “최시중 방통위원장보다 더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제기한다.

정보기관의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을까에 대한 우려도 있다. 측근 인사를 기조실장에 임명하면서 국내 정치에 개입하는 것이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참여연대’는 김 실장의 기조실장 발탁에 대해 성명을 내고 “권위주의 시대의 공작정치가 부활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라며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전문성 결여’ 우려 목소리 적지 않아
김 실장은 자신의 발탁을 정치적인 함의로 해석하는 것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자신은 본질적으로 ‘비즈니스맨’이며 ‘효율과 생산성’이 행동과 사고의 원리라는 점을 숨기려 하지 않는다.

“실수요자가 누구냐, 그들을 충분히 만족시켰느냐 하는 것이 경영의 핵심요소다. 연구보고서 작성에도 생산성이 있어야 한다. 모든 분야에 비즈니스적 마인드가 접목돼야 한다.” 기업인 시절 김 실장이 각종 강연 때 강조한 내용들이다. “실수요자를 만족시켰느냐”는 기준이 담고 있는 의미는 심장하다. 국정원의 실수요자를 집권자로 보느냐, 아니면 국민으로 보느냐에 따라 국정원 개혁의 방향과 테제가 정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김 실장이 국정원의 조직 구성이나 정보 수집 측면에서 능률과 생산성을 최고의 가치로 고려한다는 점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국정원의 인적 쇄신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특히 대선 전 국정원이 당시 이명박 후보의 주변 인물 93명의 개인 정보를 모두 400여 차례 조회했던 것으로 드러난 것이 그의 결심을 굳히는 데 영향을 미쳤다. 구조조정 전문가인 김주성 실장을 임명한 것도 결국 국정원을 장악해 제대로 손보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인물연구

김 실장은 경북 봉화 출생으로 봉화고와 연세대 철학과를 졸업했다. 1973년 코오롱상사에 입사한 김 사장은 회장비서실장, 기획조정실장을 거쳐 20여 년 뒤 코오롱개발 사장, 코오롱그룹 부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기조실장 임명 전까지 전국경제인연합회 기업경영협의회장을 맡고 있었다. 기업 구조조정 전문가가 정보기관 개혁에도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한기홍<편집위원> glutton4@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