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연구]세간의 관심 큰 ‘핫이슈의 변론’ 나서다

인권변호사로 돌아온 박찬종

변론의 사전적 의미는 사리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이다. 변호사는 공판정에서 변론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공판에서 시비를 가리는 핵심은 설득력이다. 이 때문에 변론의 본질을 ‘설득과 중재’라고 규정하기도 한다.

한때 ‘무균질 정치인’으로 통했던 ‘변호사 박찬종’ 변론은 설득과 중재에다가 정의가 추가된다. 인터넷에서 표현의 자유와 그 책임에 대한 논란을 폭발시켰던 ‘미네르바(본명 박대성) 사건’의 접근법도 그랬다. 무죄 판결을 이끌어냈던 1심 최후 변론에서 그는 사법정의를 역설했다.

“국민 상당수가 ‘시국사건’에 대한 법관의 소신 있는 판결을 기대조차 하지 않는다. 소신을 지키기 위해선 법관의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고 여긴다. 불행스럽게도 이게 현실이다. ‘신영철 대법관 사건’이 대표적인 예다. 우리 법조인은 이를 부끄러워하고 고치려고 노력해야 한다. 증거와 법률에 따른 판결만 하면 된다. 소신껏만 해달라.”

그가 미네르바 사건에서 한 최후변론 요지다. 이날 재판관은 1심 판결 주심을 맡은 유영현(서울중앙지법 형사5단독) 판사였다. 박 변호사의 막내아들보다 한 살 어리다고 한다. 나이와 상관없이 법대에 앉은 판사는 국가와 사법부를 대표한다. 그런 담당 법관을 상대로 변호사가 불신받는 사법부의 풍토를 언급하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어떻든 미네르바는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고 석방됐다. 박 변호사조차 ‘무죄’를 자신하지 못했다. 그는 “무죄 소식을 듣고 잠시 정신이 멍해질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면서 “촛불시위와 관련해 글 쓴 사람을 구속시키는 등 권력 눈치를 보는 사법부의 분위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사법 역사에 남길 기록적 판결”이라고 의미를 부여하면서 “이번 판결은 ‘신영철 대법관 사건’과 관련한 처리 방법을 강력히 암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더욱이 미네르바 1심 재판이 있던 4월 20일, 충남 천안에서 2003년 이후 6년 만에 처음으로 ‘전국 법관회의’가 열렸다. ‘재판권 독립’이 이날 회의 주제였다. 즉 ‘신영철 대법관 사건’의 촛불재판 개입을 둘러싼 수습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박찬종 변론의 본질은 설득과 정의감
새삼 ‘박찬종 변호사’가 세인의 관심을 받는 것은 단지 미네르바 사건에서 무죄를 이끌어낸 때문만은 아니다. 한때 잘 나가던 ‘정치인 박찬종’이 인권변호사로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최근 변호를 맡은 사람은 판사에게 석궁을 날린 김명호 전 성균관대 교수, BBK 김경준, 미네르바 박대성, 그리고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 등이다. 그것도 모두 무료 변론에 나섰다.

그는 “세인의 주목을 즐기는 것이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석궁 사건은 사법부에, BBK 사건·미네르바 사건은 MB(이명박 대통령 이니셜) 정권에 대립각을 세워야 하는 변론인데 돈을 벌려는 변호사들 중에 누가 나서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이어 “내가 감히 모범을 보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그는 세상의 이목이 닿지 않는 사법 피해 사건에 대해서도 변론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최근 성매매 알선 혐의로 300만 원의 벌금형을 받은 60대 여관 주인 할머니에 대한 변론도 그중 하나다. 함정수사에 당했다는 점, 그리고 영업을 못하면 식구의 생계 유지가 어렵다는 점 등을 부각시켜 성공적 결과를 얻었다는 게 박 변호사 측 설명이다.

사실 그는 70, 80년대 한국 최고의 인권변호사였다. 민주화추진협의회의 인권옹호위원장으로 박종철 사인(고문)을 규명해 세상에 알렸다. 또 무려 20명의 학생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했던 미문화원 사건(1985년)의 변론을 맡았다. 이 사건은 그가 3년 6개월 동안 변호사 자격이 정지당하는 간접적 계기가 됐다. 전두환 정권이 미문화원 사건의 변론을 막기 위해 신민당 인권위원장 자격으로 ‘고대앞 시위’에 참여한 것을 빌미로 그를 집시법으로 불구속기소했다. 이밖에도 전북대 본관 시위 사건, 민정당사 학생 농성점거 사건, 수원대학연합시위사건 변론과 함께 각종 시국 사건에 연루된 김영춘·송영길 의원, 김민석 전 의원 등을 위한 변호를 맡았다.

미동만 해도 정치적 생명까지 위협받을 수 있는 폭압적 상황에서 이 같은 적극적인 인권활동은 국민에게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는 또 감동을 개척하려는 노력도 아끼지 않았다. ‘거수기 정치인’을 거부하고 3김으로 상징되는 주류와 홀로 맞섰다. 특히 참신성과 개혁성을 무기로 김영삼·김대중 후보 단일화 삭발 요구→3김 청산과 지역주의 타파→3당 합당 반대 등을 선도하면서 국민적 인기를 얻었다. 그의 개혁 리더십의 브랜드는 ‘무균질 정치인’이라는 카피를 만들기도 했다.

박 변호사는 “5선의 정치 경력에서 상임위원장 자리가 하나 있는지 보라”면서 “나는 자리를 놓고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과 흥정하지 않았다”고 역설했다. 그는 또 “깨끗한 정치라는 소신을 지키려고 발언하고 행동한 결과이며 이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정치사의 첫 대중을 의식한 정치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가 자신을 “공천제도에서 왕따당한 정치인”이라고 자평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박찬종 식 개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는 이미 정치 입문 과정부터 정치인의 ‘기질’을 드러냈다. 박정희 정권 말기 사법·행정·공인회계사를 통과한 수재라는 타이틀로 공화당 공천으로 9대 국회에 진입했다. ‘박정희 철권정치’가 막을 내릴 즈음 공화당 정풍운동을 주도하면서 야당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하지만 인기 지향적 ‘단독플레이’는 패거리 정치가 횡행하던 권위주의 시대에 국가 지도자로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오죽하면 김영삼 전 대통령이 박 변호사를 향해 “독불장군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경고했을까. 한 차례 서울시장과 대권에 도전했지만 실패했다. 특히 1992년 대선 때 혈혈단신으로 대권에 도전해 4등에 머물렀다. 그는 97년 이회창 후보와 경선 도중 탈당, 이인제 후보를 지원함으로써 김대중 전 대통령의 당선을 도왔다는 비난을 보수 진영으로부터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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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박찬종’과 ‘인권변호사 박찬종’, 양면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개혁’이다. 그는 “정치인도 변호사도 아닌 개혁가로 이름을 남기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던 13대 국회 이후 정치 발전 문제에 대해 “절차적 민주주의는 발전했지만 정치의 품격이나 품위는 그때만 못하다”면서 “소신 있는 국회의원을 찾아볼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그의 결론은 역시 사법개혁이었다. 그는 “사법 개혁을 위해서는 대한변협이 나서야 자체 정화작업과 함께 구조 개혁을 할 수 있다”면서 “사법 개혁을 결단하기 위한 사법부특위를 발족시키도록 요청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김경은 기자 jjj@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