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연구]한나라당 신임 대변인 조윤선

예술파 법조인, 미녀 대변인 계보 승계

한나라당이 조윤선(42) 씨티은행 부행장을 신임 대변인으로 임명했다. 미녀 둘이 대변인 자리를 인수 인계한 ‘총선용 인사’라고도 할 수 있다. 한나라당이 김영선-전여옥-나경원-조윤선 등 여성 대변인을 집중적으로 발탁한 이유는 그간 당의 고리타분한 보수적 이미지 때문이었을 것이다. 조 대변인은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1991년 제33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994년 김&장법률사무소에서 변호사, 2007년부터는 한국씨티은행 법무본부장 겸 부행장을 역임했다.

조 대변인과 나경원 전 대변인은 모두 재학 시절 출중한 외모 덕에 주목을 받았다. 조 대변인은 외교학과 84학번, 나 의원은 법학과 82학번이다. 사법시험 합격은 대학 2년 후배인 조 대변인(33회)이 나 의원(34회)보다 한 해 이르다. 두 사람은 정치에 뛰어든 시기, 처음 모셨던 정치적 대부도 같다. 두 사람은 2002년 한나라당 이회창 대선 후보 선대위에 함께 영입됐다. 당시 신임 조 대변인은 공동 대변인으로, 나 의원은 특보로 활약했다. 조 대변인은 한나라당 비례대표 상위 순번에 전략 공천될 예정이며, 4월 총선 선거대책위원회 대변인도 겸임한다.

씨티은행 부행장 직을 그만두고 정계에 진출하기로 결행한 것은 물론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그러나 집권당의 대변인 자리 역시 만만한 자리가 아니다. 전국적인 인물로 성장하는 데 대변인처럼 좋은 포스트가 없다. 거의 매일 TV 메인 뉴스의 단골 출연자로 등장하며, 기자들과 깊이 사귀기에도 편한 자리다.

조 대변인은 어릴 때부터 공부도 잘 했지만 그림과 음악을 좋아했다. 탁월한 사태분석력, 언어구사력과 함께 예술적 감성을 갖췄다는 점에서 한나라당 대변인실 분위기가 달라질 것이란 기대가 있다. 특히 그는 오페라에 대한 식견이 대단하다. 오페라에 대한 남다른 열정과 전문가 못지않은 해박한 지식을 자산으로 ‘오페라 칼럼니스트’로도 맹활약했다.

그는 2년 동안 월간 ‘객석’에 ‘오페라가 있는 명화’라는 주제로 칼럼을 기고하기도 했다. 지난 해에는 그 글들을 다듬어 ‘미술관에서 오페라를 만나다’라는 한 권의 책으로 묶어냈다. 그에게 오페라는 ‘삶을 위무하는 예술’이다. “오페라에는 왕후장상뿐 아니라 범부들의 인생 이야기가 녹아 있다”며 “오페라에는 삶은 고단하다는 진실을 가르치는 위안의 힘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젊은 오피니언 리더들이 중심이 된 오페라 동호회 ‘라 돌체비타’의 회장을 맡아 활발하게 활동했으며 국립오페라단의 법률 자문을 맡은 적도 있다.

법률 용어와 복잡한 수식, 산적한 서류에 피곤을 느낄 때면 그녀는 어김없이 오페라라는 소중한 친구를 찾아갔다. 시간이 날 때마다 공연을 관람했고 관련된 자료들을 섭렵했다. 법률사무소의 동료들에게도 오페라를 ‘전도’했고, 연수차 떠났던 뉴욕에선 누구보다 부지런히 오페라를 찾아다니며 감상의 폭을 넓혔다. 큰 딸과 함께 한 1년 반 동안의 미국 생활은 그녀를 ‘오페라 감상 전문가’로 성장시키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가 대학에 입학한 1984년은 캠퍼스에 ‘혁명의 열정’이 넘치던 시절이었다. 공부가 버겁고 지겨울 때 그는 미대 김병종 교수의 ‘미술의 이해’ 강의를 홀로 수강하며 안식처를 찾았다. 그는 재학 중 떠난 유럽 여행에서 화집에서만 보았던 대가들의 ‘명화’를 직접 만나게 된다. “당시엔 해외 여행이 자유롭지 못한 시기여서 케임브리지 대학에 단기간 교환학생으로 등록해놓고 미술관을 열심히 찾아다녔다. 그때의 기억이 너무나 소중했기에 이후로도 여행을 갈 기회가 생기면 이탈리아의 ‘메디치 가문 컬렉션’ 등은 빼놓지 않고 챙긴다. 물론 국립, 시립 미술관도 필수 코스다.”

그녀는 새로운 장소를 찾을 때면 습관적으로 미술관을 먼저 찾는다. 한 나라의 역사와 문화가 응집되어 있는 그림들을 하루 종일 감상하다 보면 도시의 낯설음은 벅찬 감동으로 체화된다는 것을 그녀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렇게 그림을 가까이 하다 보니 보유하고 있는 화집만 200여 권이 넘었고, 쉬는 날이면 작정하고 이것들을 분류하기 시작했다. 그의 책 ‘오페라가 있는 명화’는 오페라와 미술을 결합한, 예술에 대한 타고난 열정 속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외교학을 전공한 그가 변호사가 된 것은 남편 박성엽(47) 변호사의 영향이 컸다. 박 변호사는 로펌 김&장의 공정거래전문 변호사다. 박 변호사와 조 대변인은 서울대 동문으로 조 대변인이 대학 1학년 때 도서관에서 처음 만나 연인 사이로 발전했다. 연애 기간만 7년. 먼저 사법시험을 통과한 박 변호사가 조 대변인에게 사법 시험 응시를 권유했다. 두 사람은 서울대, 사법연수원에 이어 김&장에서도 선후배 사이가 됐다.

인물연구

조 대변인은 10대, 20대를 공부에, 30대를 일에 미쳐야 하는 시기로 규정한다. 그렇게 해야 나머지 인생을 버텨낼 ‘근력’이 생긴다고 생각한다. 40대 초반, 그는 다시 ‘공부도 일도 아닌’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고 있다. ‘정치’라는 이름의 그 음험한 영역에서 그가 예술을 통해 느꼈던 진실과 감동을 찾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어쨌든 그는 거대 집권 여당의 대변인으로 법조인 시절 갈고 닦았던 수사와 논리를 동원해야 한다. 그가 쏟아내는 말이 진실과 거리가 있다고 느낄 때, 이 예술파 지성인이 느껴야 할 고뇌는 작지 않을 것이다. 그의 정치적 지향이 환멸로 마감하지 않으려면 ‘투철한 리얼리스트’가 돼야 한다는 것이 그에 대한 주변 정치인들의 조언이다.

<한기홍 편집위원 glutton4@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