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신가족 풍속도 만든 ‘당당한 싱글맘’

비혼모가정 | 허수경씨

정자 기증받아 혼자 아이 낳고 키우겠다며 비혼모 선언

지난해 한국 사회는 방송인 허수경의 ‘비혼모’(결혼은 거부하고 아이만 낳아 키우는 여자, 일명 자발적 비혼모) 선언으로 한바탕 홍역을 앓아야 했다. 그동안 이혼, 사별을 통해 아이를 혼자 키우는 ‘싱글맘’은 많았지만, 정자를 기증받아 혼자 아이를 낳아 키우겠다고 비혼모 선언을 한 경우는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허수경의 비혼모 선언은 많은 여성의 ‘공감’과 ‘격려’를 받기도 했지만, 반면 ‘정자 기증의 법적 허용 논란’ ‘아빠 없는 아이에 대한 문제점’ 등이 제기되면서 한국 사회를 꽤나 시끄럽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는 이런 사회적 논란과 주위의 따가운 시선을 담담하게 견뎌냈고, 지난해 12월 31일 그토록 바라던 ‘엄마’가 됐다. 사람들의 우려와 편견을 깨고, ‘당당한 비혼모’라는 ‘신가족 풍속도’를 성공적으로 그려낸 것이다.

지난해 마지막날, 자연분만으로 3.4㎏의 예쁜 딸을 출산한 허수경. 그는 출산 직후 가진 기자와 인터뷰에서 “그동안 아이를 너무 간절히 원했기 때문에 처음 보는 순간 눈물만 흘렸다”며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감개무량하다”고 벅찬 소감을 밝혔다. 하지만 아이의 이름을 공개하는 것은 꺼렸다. 행여 사회가 아이에게 상처를 입힐까 봐 두렵기 때문이다. 그는 “아이의 이름이 더는 공개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비혼모 선언 이후, 극도로 말을 아껴온 허수경이 그동안 보도된 기사 때문에 많은 상처를 받았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자신이 감수해야 할 고통이 컸음에도, 그가 ‘비혼모’를 선택한 이유는 단 하나, 바로 ‘엄마’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저는 일부 언론에 비치는 것처럼 한국 사회의 고정관념을 바꾼다거나 여권 신장을 하고 싶어 출산한 것은 아니에요. 과거 두 번의 자궁외 임신으로 양쪽 나팔관을 다 절제했기 때문에 자연임신이 불가능했죠. 하지만 아이를 간절히 원했기 때문에 최후의 수단으로 정자 기증을 통한 ‘시험관 시술’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어요.”

허수경의 나이 올해 마흔두 살. 과거 ‘두 번의 결혼 실패’와 ‘두 번의 자궁외 임신’은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힘든 시간이었다. 이런 그에게 살고 싶다는 희망을 느끼게 한 것이 바로 ‘아이’였던 것.

“결혼도 이미 두 번이나 해봤고, 남자에 대한 미련도 없어요. 단지 ‘엄마’가 되고 싶은 마음뿐이었죠. 하지만 아이를 낳기 위해 남자를 구해 결혼할 수는 없잖아요. 저는 나이도 많아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어요.”

그렇게 그는 소중한 딸을 품에 안았고, 살면서 “이보다 더 행복한 순간은 없었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 그는 아이와 함께 풀어야 할 숙제가 많이 남았다. 바로 ‘아빠의 부(不)존재’. 이 문제에 대해 그는 이미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다.

“아이는 엄마 아빠가 모두 있는 화목한 가정에서 자라는 것이 가장 바람직해요. 하지만 세상에 모든 조건을 완벽하게 갖고 태어나는 아이들은 드물다고 생각해요. 우리 아이는 단지 부족한 부분이 있는 것뿐이고, 그걸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제 몫이에요. 나중에라도 아이에게 ‘형식적인 아빠’를 만들어주고 싶은 생각도 전혀 없어요.”

허수경이 비혼모를 선언한 후 우리 사회 곳곳에서는 ‘혼자 아이를 낳아 키우고 싶다’는 미혼 여성들의 목소리가 불거져나왔다. 결혼은 싫고, 아이만 원한다는 것. 하지만 이에 대해 허수경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라고 충고했다. 여성 혼자서 아이를 키우는 것은 결코 섣불리 판단할 일이 아니라는 것.

“막상 아이가 태어났는데 기대처럼 예쁘지 않다면 어떻게 할 건가요? 또 나중에 엄마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 아이가 걸림돌로 전락할 수도 있어요. 게다가 아이를 키우는 데는 돈도 많이 들어요. 혼자서 일과 육아를 어떻게 병행할지도 신중하게 생각할 문제죠.”

허수경은 자신이 마지막으로 선택한 방법이 사람들에게 비혼모 양산을 부추기는 모습으로 비치는 것을 경계하며, 거듭 신중함을 강조했다.

“전 결혼해서 충분히 아이를 가질 수 있는데도 결혼하지 않은 채 아이만 낳아 키우는 비혼모를 선택하는 것은 바보 같은 행동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아이는 엄마 아빠의 사랑이 100% 필요하거든요. 절대 비혼모를 낭만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단지 ‘아이를 갖고 싶다’는 열망 때문에 한국 사회에 비혼모 돌풍을 일으킨 허수경. 그가 원했든 원치 않았든 우리 사회는 이제 ‘허수경처럼 당당한 비혼모도 괜찮아’라는 인식이 서서히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여성의 사회적 위치와 경제력이 향상되고, 호주제가 폐지됨에 따라 자발적 비혼모는 더욱 확산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허수경처럼 ‘최후의 선택’이든 아니면 ‘시대의 흐름’이든 ‘비혼모’를 선택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그에 합당한 ‘책임’까지 수반해야 한다는 사실이 아닐까.

김민주〈레이디경향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