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결혼 이민자도 한국 사회 관심 가져야”

다문화가정 | 신원태·김올가 부부

서해안 기름 방재활동 등 이웃돕기 적극 나섰으면

러시아를 방문한 신원태·김올가 부부와 자녀 준·영준군이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그때는 전화하면 5분에 1만 원 정도 들었어요. 인터넷 전화 덕분에 지금 그 돈이면 3시간은 통화할 수 있죠. 꿈같은 이야기입니다. 당시 러시아엔 인터넷도 발달하지 않았는데….” 신원태·김올가 부부의 결혼생활은 올해로 11년차. 국제결혼을 통한 다문화가정이지만 외모로는 구분되지 않는다. 아직도 러시아 국적을 갖고 있는 김올가씨는 고려인 3.5세다.

현재 여행업에 종사하고 있는 김씨의 아버지는 러시아 군 장교 출신이다. 아버지 직업이 군인이다 보니 어린 시절 김씨는 구 소련의 전역을 돌아다녔다. 최종 정착지는 연해주의 블라디보스토크. 신씨는 부인 김씨를 만나기 전 장인어른의 한국 사람들에 대한 인식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아무리 고려인의 외모를 하고 있다고 하지만 기본 정서는 러시아 사람입니다. 계약관계 등에서 러시아 사람들은 무뚝뚝하지만, 일단 결심하고 결정하면 잘 지키거든요. 손해보더라도 약속을 지키는 거지요. 하지만 수교 직후 아버지가 만난 한국 사람들은 문제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남한’ 사람들과 비즈니스를 하면서 너무 많이 당하면서 인상이 더 안 좋아졌습니다. 그런데 왠 낯선 남자가 나타나서 덜컥 자기 딸을 데려간다고 하니….”

두 사람은 어떻게 만났을까. 러시아에서 의학을 공부하던 김씨는 정부 초청 동포교환 사업에 참여하여 서울에 와 있었다. 당시 신씨는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을 다니면서 리포트를 쓰기 위해 우연히 서울 양재동에 있는 한 서점을 방문했고, 거기서 김씨를 만났다. 서로 좋은 인상을 간직하고 있는데, 김씨의 친구가 길 안내를 부탁하면서 두 사람의 특별한 인연은 시작됐다. 신씨는 당시를 다음과 같이 기억하고 있다. “나중에 오해 또는 착각이라는 것이 밝혀졌지만, 일이 잘되려 그랬는지 제 처가 부끄럼이 많고 내성적인지 알았어요. 사실은 한국말을 할 줄 몰랐던 거거든요.” 두 사람이 국경을 넘나드는 연예를 할 당시, 수교되었다고 하더라도 아직 두 나라 사람들의 거리는 상당했다. 김씨 친정만 반대한 건 아니었다. “솔직히 당시 우리 집에서도 찬성하는 건 아니었어요. 한국에도 여자가 많은데, 하필이면 러시아까지 가서 한국말도 못 하고, 문화도 다른 사람하고 결혼하려 하냐는 거였어요.” 신씨의 입장에서도 ‘도 아니면 모’ 식의 큰 결정이었다.

결혼 후 10년. 두 살 터울인 두 아이들도 벌써 다 커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다. 러시아에서 레지던트 과정을 마친 김씨는 다시 한국으로 와 서울대에서 약학을 공부했다. 지금은 약사로 약국을 돌아다니면서 여전히 일을 배우고 있다. 아직도 약간 어눌하지만 한국어 실력도 상당 수준이다. 김씨가 경험한 한국의 국적제도는 조금 복잡했다. 결혼할 당시엔 자동으로 국적을 줬다가 6개월 뒤에 선택할 수 있는데, 러시아 국적을 유지하니까 한국 국적이 자동으로 없어졌다. 생활하는 데 불편한 점은 인터넷 가입이나 도서관·공공시설 등을 이용할 때 주민등록번호가 없다 보니 외국인 가입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것. 은행대출도 쉽지 않다. 의료보험은 적용되지만 ‘국민’이 아니기 때문에 국민연금엔 해당되지 않는다.

10년 사이의 이야기를 생략하니 쉬운 듯싶지만, 결혼만 했지 맨주먹으로 살아온 이들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신씨는 말한다. “사실 이 사람은 한국말을 그동안 공부하고, 또 한국대학에 다니다 보니 등록금이나 교재를 구입하는 데 돈이 만만치 않게 들었어요. 그래서 경제적인 부분도 신경 써야 하는데, 생활은 생활대로 해야지, 애기 볼 사람은 따로 없지, 죽이든 밥이든 일단은 먹고 살아야 하니….” 아내가 공부하는 동안 신씨는 애를 보면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았고, 영어 번역·통역·TV영상번역 등 닥치는 대로 일거리를 만들어 일했다. 부인도 방학이면 아르바이트로 빈한한 가정살림의 힘을 덜었다.

현재 신씨는 인천 남구 결혼이민자가족지원센터의 한국어 강사. “아내와 아이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다 보니 나름의 노하우랄까 그런 것이 생겼어요. 집사람을 따라 교회에 나가 한국말을 못하는 외국인들을 가르치는 자원봉사를 했는데, 우리 사회에 이런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어요. 돈 벌러 들어온 사람들은 돈 버는 데 필요한 말만 배워 돌아가면 되지만 결혼 이주민은 정말 문제가 심각하겠구나, 하고 느낀 거지요.” 그러다 보니 일이 더 확대되어 현재의 직업까지 이르렀다. 신씨 부부의 두 아이들은 18세가 되면 국적을 선택해야 한다. 부인 김씨는 “친정 아버지는 한국말을 모르셨지만, 어머니는 조금 아시는 편이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조금만 가르쳐줬더라면,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앞으로 10년, 15년이 지나면 또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반대로 우리 아이들이 러시아 말을 모르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은 엄마가 러시아 사람이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신씨는 자녀들에게 러시아에 대해 부정적으로 이야기해본 적 없다고 말한다. “항상 너희는 특별한 아이다, 언어도 그렇지만 음식을 먹어도 둘 다 먹을 수 있으니 슈퍼 코리안이 아니냐고 강조합니다.”

그는 결혼 이민자들도 한국 사회에 사는 이상, 사회에 대한 의무를 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번 서해안 기름유출사건 때도 이민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가서 일하는 모습을 보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항상 관이나 사회단체 혹은 한국 주류사회에 도움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면서 정정당당하게 요구할 것은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벌써 국제 이민자 가정이 1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비록 먹고살기에 바쁘지만, 앞으로는 그런 모습을 보이면 좋겠습니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