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① 정상회담에 뒷거래는 없나

대규모 SOC 제의說… 구체적 정황은 없어

“2000년 남북정상회담에 돈거래가 있었다면 이번 정상회담에는 정치적 뒷거래가 있다.”

2000년 제1차 남북정상회담 때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순안공항에 나와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맞이하고 있다. <경향신문>

정부가 남북정상회담을 발표한 8월 8일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의 이 발언은 곧 한나라당의 당론으로 채택됐다. 한나라당은 이튿날 “남북정상회담 성사를 위해 합의 과정에서 대북 경수로 건설이나 차관 제공 약속 등 ‘정치적 뒷거래’가 있었다”고 단정하면서 뒷거래 조사를 위한 태스크포스팀(단장·이주영 의원)을 구성했다. 나경원 대변인도 이날 논평에서 “사회간접자본 시설 지원 등 뒷거래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무성하다”면서 “공개하지 않은 이면합의는 어떤 형태로든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면합의가 있었다면 즉각 공개해 국민의 동의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런 주장의 근거는 이번 정상회담의 추진 주체가 국가정보기관인 국정원이라는 점이다. 정형근 의원은 “정보기관에서 많은 공을 들였다는 말이 나오고 있는 점 등을 봐서 그런 의구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면서 “국정원이 주도해 정치적 뒷거래로 합의한 의혹이 짙다”고 말했다. 확증이 아니라 심증에서 비롯한 문제제기인 셈이다. 하지만 대북정보 수집과 방첩활동이 주요 업무인 국가정보기관이 나섰다는 사실은 자연스럽지 못한 면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이 때문에 한나라당의 주장이 일면 이해되는 면도 없지 않다는 게 북한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정치평론가인 황태순씨는 “비밀보장을 위한 불가피한 면을 인정한다”고 전제하면서도 “그러나 김만복 국정원장의 북한 파트너가 김양건 통일선전부장(남측의 통일부 장관에 해당)이라는 점은 오해받을 만하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정 의원의 주장에 대해 “공식적 라인의 비공식적 업무”라면서 “비공식 라인은 가동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지키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조치”라고 반박했다.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냉전시계를 평화시계로 바꾸는 데 기왓장 하나라도 얹는 자세로 한나라당이 동행하길 원한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의 ‘심증’은 범여권 인사들의 발언에서 유발된 면도 있다. 권력핵심의 흐름에 밝은 열린우리당의 한 의원은 “정부 관계기관이 지난 1월 초부터 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김만복 국정원장이 8월 초 두 차례 방북한 것 이외에도 국가정보원 차장들도 몇 차례 방북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국정원 관계자들의 방북이 곧 한나라당이 제기하는 사회간접자본과 관련한 100억 달러 미만의 차관 제공과 직접 연계되지는 않는다. 구체적 정황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는 김정훈 한나라당 정보위원장의 말에서도 유추할 수 있다. 김정훈 위원장은 8월 9일 열린 당 통외통위·국방위·정보위 소속 의원 긴급 연석회에서 “(남쪽이 북에) 차관으로 100억 달러 미만의 사회간접자본 시설 지원을 제의할 가능성이 있다”며 “남쪽이 쓸 수 있는 카드는 경제 카드다. 이걸 함부로 쓸 수 없게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북한은 심각한 경제난에 시달리고 있다. 북한에 대한 경제지원과 협력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중요한 의제가 될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뿐만 아니라 항만 준설과 간선도로 건설 등 대규모 SOC(사회간접자본) 지원은 북핵 문제 해결을 전제로 이미 북한에 제의했던 것이어서 새로운 것도 아니다. 이 때문에 한나라당이 대북 지원의 규모 축소를 위한 사전 공세라는 주장을 제기하기도 한다.

문제는 극비리에 추진하고 보안을 지켜야 할 남북정상회담 날짜와 발표 일정이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 등을 통해 미리 언론에 알려졌다는 사실이다. 정형근 의원은 정부 발표가 있기 2시간 전에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지난달 28일 북한이 김만복 국정원장을 초청했고 김 원장이 이달 초 북한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을 두 번 만나 합의한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는 또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8월 7일 국무회의에 불참한 것도 정상회담과 관련 있는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정상회담과 관련, 상세한 경위를 파악하고 있었던 정 의원이 ‘정치적 뒷거래설’을 제기한 것이다. 어느 정도 정보의 신뢰성을 인정할 수 있지 않느냐는 시선도 이런 정황에서 비롯한다.

정부가 부인하는 상황에서 한나라당이 제기한 ‘뒷거래설’을 확인할 방법은 없다. 다만 의혹 제기를 수긍할 수 있는 정치적 상황이 의혹을 더욱 확대재생산하고 있다. 홍관희 안보전략연구소장은 남북정상회담을 “진보세력의 장기집권을 위한 전략의 일환”이라면서 “모종의 밀약 가능성에 관심을 갖는 이유”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의 전직 고위 관계자도 “권력 재창출을 위한 남북한 권력의 연대”라면서 “이를 위해 북한의 요구를 모두 수용한 ‘구걸 회담’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범여권은 노무현 대통령이 정상회담 추진과정의 투명성을 강조해온 점을 새삼 역설하고 있다.

<김경은 기자 jjj@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