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⑥ 미국과 사전에 협의했나

“송민순 외교장관이 8월 초에 직접 통보”

정부는 미국과 사전 협의하에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했을까. 정부는 미국, 중국 등 주변국에 정상회담 개최와 관련해 사전에 조율했고, 회담 개최 사실을 정부 발표 시각인 8일 오전 10시 이전에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미국에는 한반도 주변국들 중 가장 먼저 통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와 관련, 외교통상부 관계자는 “송민순 장관이 8월 2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존 네그로폰테 미 국무부 부장관에게 정상회담 관련 내용을 설명했다”고 밝혔다.

남북정상회담이 최종 확정된 날짜가 8월 5일인 것을 감안할 때 3일이나 앞서 전달한 것이다. 김만복 국정원장은 7월 초 김양건 북한 통일전선부장과 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고위급 접촉을 제안한 데 대해 북한이 7월 29일 김 원장의 비공개 방북을 초청함에 따라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8월 2~3일, 4~5일 두 차례 방북해 최종합의를 이뤘다고 설명했다.

백종천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도 “정부는 그동안 외교적 관계에서 자연스럽게 주변 4강과 관계가 중요하다는 인식에 대해 공감대가 있었다”며 “우리 입장은 6자(남·북한 및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회담과 남북관계의 진전을 선순환적으로 연결해 발전시킨다는 것으로 이번 정상회담도 선순환적인 입장에서 나온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밝혔다.

송민순 외교부 장관은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에게도 남북정상회담과 관련해 설명할 기회를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는 “한국 정부가 남북정상회담 개최에 대한 내용을 미리 미국에 통보했다”고 확인했다. 정부 관계자는 중국, 일본, 러시아 등에도 적절한 시점에 정상회담 관련 내용을 전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와 관련국 정부 관계자들의 발언을 종합해볼 때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전격 발표했지만 정부는 외교 경로를 통해서 관련국 당국자들과 사전 조율 작업을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워낙 사안이 중대한 만큼 남북정상회담과 관련해서는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해 백종천 통일외교안보실장, 김만복 국정원장, 송민순 외교부 장관, 이재정 통일부 장관 등 최고위급 당국자들 이외에는 이런 사실을 전혀 감지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국들도 장관급 이상 고위 관계자들만 이 사실을 직접 통보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관계자는 “이 정도 사안이면 외교장관급에서 주요국 장관에게 직접 통보하는 절차를 거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정부가 미국에 2차 남북정상회담 사실을 언제 통보했는지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주미 한국대사관 관계자들은 본부(외교부)로부터 남북정상회담 사실을 발표 수시간 전에 통보받고, 자신들의 카운터 파트인 미국 관리들에게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외교부 관계자는 “워낙 극비를 요하는 사안이기 때문에 주미 대사관 관계자들이 자세한 내용을 모를 수 있으며 그런 맥락에서 빚어진 현상으로 본다”고 해명했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신안보실장은 “2000년 정상회담 때에는 실무선에서 한·미 간에 갈등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며 “이번에는 북한이 우리 측에 정상회담을 제안했을 시점에 미국에 통보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정부는 지난해 11월부터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긍정적인 신호를 보여왔다.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은 2006년 11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핵불능화 완료 시점에) 종전선언과 평화조약을 체결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또한 부시 대통령은 올 12월로 끝나는 자신의 임기 내에 한반도의 냉전구조를 해체하기를 원한다는 메시지를 여려 경로로 전해왔다. 남북정상회담 성사는 단번에 이뤄진 것이 아니라 그동안 우리 정부의 끊임없는 노력과 북·미간의 화해기류 속에서 성사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한편 남북한이 제2차 정상회담을 개최하기로 함에 따라 남북한 및 미국, 중국이 참여하는 4자 정상회담 개최 가능성도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

4자 정상회담의 최우선 의제는 한반도 평화체제 문제다. 1953년 휴전 협정 이후 한반도에서 전쟁상태를 마무리짓는 행위는 당시 정전협정 당사자인 유엔(미국), 북한, 중국과 현실적으로 군사력을 배치시켜놓고 있는 한국이 함께 종전선언을 하는 것이다. 종전선언을 계기로 종전협정, 평화협정 순으로 한반도 평화체제 프로세스가 진행될 것으로 예측된다. 만약 올해 하반기 중 6자회담 관련국들 간에 2·13합의 사항이 순조롭게 이행되고, 북핵 비핵화 2단계인 불능화 단계로 접어들면 연내에 4자 정상회담도 가능하다.

하지만 북핵 해결 과정에서 방코델타아시아(BDA) 문제처럼 뜻밖의 난관이 언제 터질지 모르기 때문에 4자 정상회담 성사를 긍정적으로 볼 수만은 없다. 6자회담이 또 다시 암초에 걸릴 경우 한국과 미국의 대선이 끝나고, 새 정부가 안착하는 내년 상반기까지 4자 정상회담 얘기는 잠복할 가능성도 있다.

<권순철 기자 ik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