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리더]‘40대 기수론’ 희망의 길을 찾는다

386 ‘역할론’ 넘어 당의장 출마 저울질… 침체된 당에 ‘봄바람’ 일으키나

송영길 열린우리당 의원 약력

1963년 3월 21일 전남 고흥 출생
광주 대동고 졸업(1981년)
1981년 연세대 경영학과 입학
1984년 연세대 직선 총학생회장 선출
1985년 집시법 위반으로 구속 및 제적
대우자동차 배관용접 등 노동현장생활
1987년 인천기독교민중교육연구소 설립
1991년 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 인천시지부 초대 사무국장
1994년 제36회 사법시험 합격
1997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참여연대, 목요회 회원
1998년 새정치국민회의 인천시 6·4지방선거 대책본부 대변인
1999년 5월 새정치국민회의 인천 계양강화갑지구당 지구당위원장
2000년 5월 제16대 국회의원(인천 계양, 새천년민주당)
2003년 9월 새천년민주당 탈당
2004년 6월 제17대 국회의원
(인천 계양을, 열린우리당)
2004년 한일의원연맹21세기위원회 위원장

일본 9·11 총선에서 제1야당 민주당은 궤멸적 참패를 겪었다. 충격에서 벗어나기 위한 민주당의 선택은 마에하라 세이지 카드. 교토대 법학부 81학번인 마에하라는 43세의 젊은 나이에 민주당 대표를 맡으며 침체된 당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40대 기수론이 대중들에게 먹힌 셈이다. 일본 언론에서는 마에하라를 41세에 노동당 당수를 차지한 영국의 토니 블레어와 비교하기도 했다. 40대 기수론의 득세는 우리나라 정치사에서도 낯선 풍경이 아니다. 이미 1971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신민당 내에서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이 40대 기수론을 주창하며 거센 바람을 일으킨 바 있다.

내년 2월 18일 전당대회를 앞두고 있는 열린우리당에서도 최근 40대 기수론이 화두로 떠올랐다. 여당의 40대 기수론을 주도하고 있는 집단은 김부겸·송영길·김영춘·임종석·오영식 등 재선의원 그룹이다.

넓은 의미에서 386세대로 분류되기도 하는 이들 가운데 송영길 의원이 차지하는 자리는 매우 상징적이다. 맏형 격인 김부겸 의원을 386세대가 아닌 긴조세대 막내그룹으로 분류한다면 송 의원이야말로 386의 1세대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송 의원에게 40대 기수론의 실체는 ‘80년대성’을 대표할 수 있는 386세대가 정치 전면에 부상하는 것을 의미한다. 송 의원은 “이제는 386세대가 대한민국을 책임지는 정치세력으로서 자기역량을 갖춰야 할 필요가 있다”면서 “국민들에게는 386이 국가를 안정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비전을 갖춘 집단임을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정치인 송영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일본 마에하라 민주당 대표와 같이 81학번이라는 점을 먼저 떠올릴 필요가 있다. 5·18광주항쟁이 일어나던 해 광주에서 고3시절을 보낸 송 의원은 1981년 연세대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군부독재의 서슬이 퍼렇던 당시 대학생들이 조직사건으로 엮이는 것을 피해 사상적 고민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곳 가운데 하나가 교회였다. 그는 박형규 목사가 당회장으로 있던 서울 제일교회를 찾았고 여기서 1983년 서울대에 재학중이던 이정우(현 변호사)를, 그리고 이듬해 고대 김영춘과 운명적 만남을 갖게 된다. 세 명은 모두 81학번이다. 이 세 명의 만남을 운명적이라는 단어로 거창하게 수식한 이유는 이들이 1984년 대한민국 역사상 유일한 불법 총학생회장 3인방이었기 때문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군부쿠데타로 집권한 뒤 1983년까지만 해도 캠퍼스와 강의실마저도 사복경찰에 의해 감시당하던 시절이었다. 대학의 학생대표기구는 대통령령으로 설치된 학도호국단이었고 그 대표자의 공식명칭은 사단장이었다.

‘1세대’로서 가지는 상징성

송 의원을 포함한 불법 총학생회장 3인방이 의기투합해 학도호국단을 해체하고 총학생회장을 학생 직선으로 선출하도록 고쳤다. 지지부진하던 학원민주화가 결실을 맺은 쾌거였고 80년대 대중적 학생운동의 서막이 오른 계기였다. 하지만 정부는 이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각 대학에 이들 3인방을 제적시킬 것을 요구했다. 결국 이들은 84년 김영춘, 이정우, 송영길 순으로 차례로 구속과 제적을 당하고 말았다.

석방 이후 송 의원은 독자적으로 대중운동을 하겠다는 생각에 위장취업의 길을 택했다. ‘학출(대학생 출신)노동자’ 송영길은 본명 대신 ‘이상현’이란 이름으로 1985년 인천 대우자동차 르망공장을 비롯해 2년여라는 시간 동안 노동자들과 함께 현장을 전전했다.

1980년대 말의 두 개의 삽화는 송영길 의원이 향후 정치적 지향을 설정하는 데 중요한 계기로 작용했다. 우선 그는 1987년 주사파가 학생운동을 휩쓸고 노동계로 스며들고 있을 무렵 노회찬·조승수 등과 함께 ‘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인민노련)에서 활동했다. 인민노련은 주체사상파와 끊임없이 대립하며 이를 비판하던 조직이었다. 송 의원은 “당시 인천지역 노동현장에도 주사파에 대한 논란이 많아 주체사상에 대한 책도 읽어보고 했는데 그 길은 아닌 것 같았다”고 술회했다.

1980년대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의 붕괴도 송 의원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특히 1991년 직접 배낭을 메고 동구권을 찾아 사회주의의 몰락을 눈으로 확인한 송 의원은 당시의 감상에 대해 “사회주의에 대해 일말의 환상을 품고 있었는데 직접 가서 깨진 동상과 건물들을 바라보니 황당했다”고 전했다.

내년 전당대회에서 송 의원이 직접 후보로 나서든, 나서지 않든 이번은 그에게 386의 이름으로 치르는 세 번째 도전이 된다. 첫 번째 도전은 1999년에 있었다. 당시 6·3재선거를 앞두고 386들은 자신들의 정치세력화를 위해 송영길을 택했다. 송영길의 첫 번째 도전이자 386의 첫 번째 도전이기도 했다.

물론 김민석 전 의원(서울대 82학번)이 1996년 최연소 국회의원에 당선되는 등 제도권에서는 늘 386의 선두주자로 꼽혔지만 386의 정치세력화를 꾀하는 이들 사이에서 김 전 의원의 독주는 그리 달가운 소식이 아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386들은 ‘연대’와 ‘팀워크’를 중시하기 때문이다. 그 전통은 현재 40대 기수론을 띄우고 있는 열린우리당 재선의원 그룹에서도 암묵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386의 정치세력화’라는 임무를 안고 선거전에 뛰어든 송영길을 위해 386들은 ‘송영길을 격려하는 386세대 모임’이라는 조직을 만들어 유세현장에서 직접 뛰는가 하면 당을 찾아가 공천을 달라고 압력(?)을 가하기도 했다. 여기에는 이정우, 이인영, 우상호, 오영식, 임종석, 허인회 등이 함께 했다. 결과는 패배였다. 송 의원은 “노동자라는 특정계층을 위해 일하던 운동권 출신으로서 남녀노소를 아우르는, 명실상부한 국민의 대표를 뽑는 선거에 맞춰 자기변환의 과정을 거쳤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라고 토로했다.

두 번째 도전은 지난 4월 열린우리당 전당대회였다. 당시 열린우리당 내에 386 출신 의원들은 당의장 경선에서 지금과 비슷하게 ‘40대 기수론’을 주장하며 독자 세력화를 꾀했다. 그리고 ‘재선·386후보’는 역시 송영길 의원이었다.

‘송영길 캠프’에는 김부겸, 김영춘, 임종석, 이종걸, 우상호 등 주요 당직자들이 대거 참여했다. 당시 이들 386 출신 의원들은 ‘함께 하는 개혁’ ‘정통개혁’을 내세우며 선거전을 펼쳤다. 유시민 상임중앙위원의 개혁은 정통개혁이 아니라 분열적 개혁, 알리바이용 개혁이라며 대립각을 세우기도 했다. 일부에서 386세대 정치인들을 말할 때 여전히 ‘급진개혁’ ‘불안함’이란 잣대를 들이대는 만큼 스스로 이념적 편향성을 극복하겠다는 계산도 깔려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패배였다. ‘정통개혁’은 임팩트가 약했고 송 의원은 지도부 입성에 실패했다. 무엇보다 애초부터 당의장을 노리고 전대에 임한 것이 아니라 상임중앙위원 후보로 나선다는 전략이 어정쩡했다. 전대 패배의 후유증으로 386들이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구 당권파와 가까워졌다는 ‘오해’만 사기도 했다.

어정쩡한 전략으로 실패했지만…

내년 2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송영길 의원과 386 출신 의원들의 각오는 남다르다. 이번에는 후보단일화가 아니라 각개약진 쪽으로 가닥이 잡혀가고 있다. 김부겸, 송영길, 김영춘, 임종석 의원 등이 출마를 저울질하고 있다. 지난 4월 전대에서 이들이 당의장을 노린 것이 아니라 지도부 입성을 노린 것이었고, 때문에 이들이 내세운 ‘40대 기수론’이 실상은 조금은 겸손한 ‘40대 역할론’이었다는 점을 염두에 두면 이번에는 과연 기수론이냐 역할론이냐 하는 점이 관심의 대상이다. 1위를 노리는 싸움과 2위를 노리는 싸움은 전술적인 측면에서 확연히 구분되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재선의원 그룹 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송영길 의원은 40대 기수론을 내세우는 반면 몇몇 의원들은 ‘역할론’에 머물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송 의원의 표현처럼 80년대 시대정신을 공유한 386세대 정치인들이 내년 열린우리당 전당대회에서 어떠한 성과를 얻을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인터뷰/송영길 열린우리당 의원

“언론 대하는 청와대 태도 변해야”

-내년 2월 전당대회에 출마하나.

“아직까지는 유보다. 결정유보.”

-이번에는 각개약진 쪽으로 가닥이 잡혀가고 있는 듯한데.

“좀더 논의를 해보겠다. 다만 한 명보다는 두세 명이 함께 나가서 같이 좀 붐을 일으켜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 전반적인 흐름인 것 같다. 물론 각개약진을 하더라도 자기들 이름을 내려고 나오면 안 되고 386이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가야 한다.”

-지난 전대에서 386 단일화 후보로 나섰다가 실패했다.

“나로서도 아쉬운 부분인데 출마하려면 당의장이 되겠다고 나서야 할 것 같다. 지난 전대에서 유일하게 나만 당의장 후보가 아니라 상임중앙위원 후보라고 하지 않았나. 그게 대중들에게 임팩트도 안 가고 자기 스스로 선거운동할 때 여러 가지 제약요소로 작용한 것 같다. 당의장을 노린다고 하면 모두 경쟁자가 되는 만큼 서로 비판할 것은 비판하면서 선의의 경쟁을 펼칠 수 있는 건데 상임중앙위원 후보니까 겸손하게 ‘우리 386세대가 허리역할만 하겠다’ 이런 식의 선거운동밖에 할 수 없었다. 선거운동 하는데 파워도 안 실리고 공연히 유시민 후보하고만 대립각이 만들어지고 그래서 좀 애매했다.”

-이번에 정확히 40대 역할론인가 40대 기수론인가.

“40대 기수론이다. 김근태, 정동영 두 장관 사이에서 곁다리처럼 끼어 있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당의장이 된다면 어떻게 하겠다는 메시지를 국민과 당원들에게 보여줘야 효과가 있지 않겠나. 그런 식의 포부와 배짱을 가지고 임해야 한다고 본다.”

-40대 기수론의 실체는 뭔가. 대안인가 단순히 흥행을 위한 카드인가.

“선거라는 과정을 통해 우리가 함께 커나가야 한다. 함께 논의하고 고민하고, 또 논의가 집중되면서 우리 당이 어디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또 우리 스스로는 당당하게 제3의 대안으로서 우리의 모습을 제시할 수 있는 포부가 필요하다.”

-열린우리당 지지도 하락은 흥행 부족이 원인이라고 보나.

“지지율 하락은 대통령과 우리당에 반반씩 책임이 있다. 같이 해결해야 하는데, 쉽지는 않다. 우선 우리가 대중정치인인 이상 대중은 항상 옳다는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다. 국민들은 오만한 사람을 용서하지 않는다. 대중에게 호소할 것은 호소하고 반응할 것은 반응해야 한다. 대중과 함께 하는 개혁이 필요하다. 따라서 청와대도 변해야 한다. 지금처럼 대중의 탓, 언론의 탓으로 돌려서는 안된다. 언론만 해도, 부당한 언론에 굴복하고 야합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언론을 통해 국민들에게 전달되는 것인 만큼 국민을 대하는 자세로 언론을 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40대 후보가 ‘대안’으로서 경쟁력을 갖는다고 보나.

뉴리더

“386은 두 가지 이미지를 통합해 나가야 한다. 구좌파로부터의 결별이라는 표현을 당내에서 많이 쓰는데 이제는 시민단체 수준의 문제제기를 넘어, 대한민국을 책임지는 정치세력으로서의 자기역량을 안정적으로 갖춰야 할 필요가 있다. 또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국민들은 현 정부의 여러 미숙함을 보면서 무능과 우왕좌왕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안정적이지 못한 것을 싫어한다. 386은 이제 이런 국민들에게 우리가 국가를 안정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비전을 갖춘 집단이라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그러면서도 진보와 개혁을 지향해야 한다. 당장 이번이 아니더라도 그런 모습과 자세로 전대를 준비하고 또 그 다음을 준비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글/최성진 기자 csj@kyunghyang.com 사진/김석구 기자 sgkim@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