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리더]오세훈, 정계 떠났지만 ‘은퇴’는 아니다

잠재적 한나라당 차세대 리더… ‘때가 되면 나설 수 있다’ 여운 남겨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out of sight, out of mind)’는 서양 격언이 있다. 사랑과 우정은 지리적 거리에 비례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국민의 사랑과 지지를 먹고 살아야 하는 정치인들에게 정치현장은 절박하다. 한 야당 중진 정치인은 16대 총선 때 공천에서 물을 먹고 난 뒤 “물구나무를 서서라도 국회에 들어가겠다”는 유명한 말을 남길 정도였다.

여론은 아직 그를 보내지 않았다

재선이 확실시되던 오세훈 변호사는 17대 총선을 3개월여 앞두고 총선 불출마 선언을 했다. 정계를 떠난 지 거의 2년이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정치현장에 있을 때 못지않은 국민의 사랑과 지지를 받고 있다. 지난해 11월 25일 ‘뉴스메이커’가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메트릭스코퍼레이션과 함께 ‘향후 우리 정치를 이끌어갈 차세대 리더’를 조사한 결과 오세훈 변호사가 11.5%로 유시민(10.5%)·남경필(7.9%)·원희룡(7.6%)·박진(7.1%)·송영길(3.8%)·임종석(3.7%)·김부겸(2.7%) 의원 등 내로라는 현역의원들을 제치고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이 조사는 전국에 거주하는 만 19세 이상 남녀 1014명(표본오차 ±3.07%포인트)을 대상으로 실시했다. 그는 또 ‘한나라당 후보로 거론되는 인물 중 차기 서울시장으로 적합한 인물은 누구인가’를 묻는 질문에서도 10.4%를 얻어 경선의사를 밝힌 홍준표(13.3%)·맹형규 의원(12.2%) 등과 함께 표본오차(±4.34%포인트, 서울 거주하는 만 19세 이상 510명) 범위 안에서 선두권을 형성했다.

정치인들, ‘오세훈법’에 적응중

그러나 정작 정치권에서 ‘정치인 오세훈’은 거의 잊혀져가는 상황이다. 오 변호사는 “서울시장 후보나 서울시 정무부시장 제의, 권유가 있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한마디로 “나에게 그런 제안을 할 턱이 있냐”고 반문했다. 당사자가 나서지 않으면 기회를 얻을 수 없는 정치현실과 정치 메커니즘을 보여주는 대답이다. 그가 17대 총선을 앞두고 재선이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총선 불출마 선언을 했을 때 주위에서 “또 다른 도약을 위한 트릭” “스타정치인의 치기(稚氣)”라는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을 때와 흐름이 크게 다르지 않다.

오 변호사는 정치권을 떠날 때 “정치를 하면서 한 번도 행복감을 느끼지 못했다” “벽창호와 싸우는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과연 다시 ‘벽창호’와 맞설 것인가.

오 변호사는 “정치인을 죄악시해선 안되며 (나의) 정치 재개 가능성은 열어놔야 한다”면서도 “그렇지만 현재로서는 그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1월 12일 있었던 인터뷰는 정치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는 조건으로 성사됐다. 인터뷰 중에 그는 여러 차례 “정치적인 문제에 대한 답변은 유보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오세훈법’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언급했다.

17대 총선이 끝나기 무섭게 ‘오세훈법’으로 명명되던 선거법·정치자금법 개정 움직임이 본격화됐다. ‘오세훈법’은 모든 정치인들을 선거사범으로 만든다는 게 법 개정론자들의 주장이었다. 정치적 사명감이 없는 사람들이 정치를 할 수 없도록 함으로써 정치의 질을 높이겠다는 당시 오세훈 의원의 의지를 비웃는 것이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정치인들이 ‘오세훈법’에 적응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오 변호사는 “온갖 반대를 무릅쓰고 만들었던 법 취지에 약 50% 정도는 부합하고 있는 것 같다”면서 “두 번 정도의 총선이 지나면 국민이 보고 싶어하는 정치로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그의 정치재개의 전제는 무엇일까. 그 해답은 그의 공직관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그는 서울시장 출마의사가 없음을 밝히면서 “무엇인가 하고 싶은 일이 있어야 하고 또 그 무엇을 할 자신과 능력이 없다면 공직 출마의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 말에는 ‘때가 되면 나설 수 있다’는 여운이 남아 있다. “Learning by Doing, Doing by Learnig(배우면서 행동하고 실행하면서 배움)했던 노무현 정권이 국민에게 불행을 주고 있지 않느냐”는 그의 일갈 속에도 비슷한 느낌을 느낄 수 있다.

사실 그가 완전히 ‘정치적인 업무’와 결별한 것은 아니다. 그가 정치에 입문하기 전부터 해왔던 시민·환경운동 등을 병행하면서 정치에 대한 관찰과 분석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지난해 ‘미래포럼’이라는 초당파적 모임을 결성해서 현재 국정현안들, 이를테면 영·유아 보육의 질 향상, 장수기업의 비결, 고령화 사회의 대책 등 국가비전과 관련 있는 중대현안 등에 대해 활발한 토론을 하고 있다. 또 현직 정치인들과도 만나고 있다. 남경필 의원 등과 어울린 1월 13일 모임도 그 중의 하나다.
그렇다면 정치권 내부에서는 그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2년여가 지난 동안 그를 보는 시각에 변화가 있는 것일까. 오 변호사와 한솥밥을 먹었던 한나라당 남경필 의원은 “아주 훌륭한 재목”이라고 전제하고 “그러나 그 본인의 의지가 좀 부족한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남 의원은 “본인의 의지만 있다면”이라는 전제 아래 “인터넷 세상에서 정치인 이름을 국민의 기억에서 되살리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나라당 의원은 “인기있는 한나라당 소장파 의원들에겐 약점이 있다”고 전제하고 “그것은 국민과 당을 분리해서 접근하는 이중적 접근법인데 오 변호사는 이중적 정치행태를 극복한다면 새로운 리더로서 크게 성장할 수 있는 장점과 여건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오세훈법’으로 명명되는 현행 선거법과 정치자금법 처리과정과 5공 인사청산 주장에서 보여준 정치적 소신, 외모에서 나오는 스마트한 이미지, 엔터테이너에 버금가는 만능 스포츠맨, 그리고 TV토론 등을 통해 얻은 국민과의 친밀감 등 그의 강점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취미활동이 신문에 난 것일 뿐”

사실 그는 잊혀질 만하면 언론에 나타났다. 후원금 국고반납(3000만 원), 철인 3종 경기 출전, 킬리만자로의 길만스포인트 ‘희망등반’, 광고 출연, 무용 ‘까뮈’ 출연…. 그는 이 부분에 대해 “정치를 염두에 둔 것은 하나도 없다”면서 “나의 취미활동이 신문에 난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가 국민을 의식했든, 의식하지 않았든 국민들이 그의 이름을 상기하는 것은 틀림없다. 자신의 이름값으로 정치를 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정치인은 아무도 없다.

“지지율 40%는 한나라당에 재앙”

-최근 근황은.

“나의 과외활동들이 최근 언론에 소개되곤 했는데 나는 변호사로서 임무에 충실하고 있다. 법무법인 지성에 본격적으로 복귀한 지 1년 반 만에 매출규모가 2배 이상 신장했다. 환경운동 활동도 겸하고 있다. 정치하기 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생활이다.”

-서울시장 후보나 서울시 정무부시장에 대한 제안이나 권유는 없었는가.

“왜 그런 얘기가 나오는지 모르겠다. 서울시장 출마 얘기는 그만둘 때부터 나온 얘기다. 사실 서울시장 출마를 고민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임무를 잘 할 수 있는지 많은 고민을 했다. 하지만 끝내 그에 대한 긍정적 해답을 얻지 못했다. 그래서 서울시장 선거에도 출마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밝힌 것이다.”

-정치를 그만둘 때 ‘정치는 나에게 행복을 주지 않았다’는 말을 했고 TV토론 진행자로의 권유에 대해서도 ‘그 구조를 너무 잘 알아서 할 수 없다’는 얘기를 했는데 너무 피해의식이나 패배의식에 젖어 있는 것이 아닌가.

“여러 방송국에서 집요하고 간곡하게 토론진행을 맡아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나는 상식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TV토론 진행자는 중립성과 전문성이 있어야 한다.
적어도 내가 어느 정파에 속해서 정치를 한 기한 만큼 지나야 시청자들이 나를 중립적 진행자로로 볼 것이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솔직히 (초선 때보다) 더 잘 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출마를 포기한 것이다.”

-17대 총선 직후 ‘오세훈법’ 개정론이 일었다.

“2004년에 만든 정치자금법과 선거법의 큰 골격을 바꾸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시도한다고 해도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이 제도 아래 두 차례의 총선이 치러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후 국민이 보고 싶은 정치로 바뀔 것이다. 정치인들이 빈손으로 상가집에 가고 상가집에서도 이를 당연시하고 있지 않은가.”

-한나라당이 변화하고 있는가.

“갈길이 먼 것 같다. 의지도 없는 것 같다. 지지율이 40% 넘는 것은 한나라당에 재앙이다. 잘 나가는 이런 상황에서 당명과 사람을 바꿀 수 있겠느냐. 위기감 속에서도 바꾸기는 어려운 법이다.”

-정치를 재개할 의사는 있는가.

“나의 의지와 별개로 다시 정치권에 진입하기는 쉽지 않다. 현실 메커니즘이 그렇다.
많은 사람이 ‘왜 도전을 피하느냐’는 공격적인 질문을 하는데 웃을 수밖에 없다. 결국 재입문 수용 여부는 국민의 의사에 달린 문제다. 그게 현실이다.”

-탤런트 기질이 너무 뛰어나다는 비판이 있다.

“언론에 노출된 생활이 그럭저럭 10년이 넘는다. 실제로 대중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생활을 해왔다. 그런 사랑에 기대 이상으로 부응하고 싶은 강박관념 속에서 살아왔다.
그게 사생활도 건전할 수밖에 없게 했다. 일도 최선을 다했다. ‘그런 척’이 아니라 실제로 정직한 모델로 부응하고 싶었다. 피곤한 인생을 살아왔다.”

약력

뉴리더

1961년생
1980년 대일고, 고려대 법대 졸(1983년), 고려대 법학석사(1990년)·박사(1999년)
1984년 제26화 사법시험 합격
1995년 대한변협 환경문제연구위원
2000년 한나라당 4·13총선 선거대책위원회 부대변인
2000년 제16대 한나라당 국회의원
2003년 한나라당 원내부총무
2004년5월~ 법무법인 지성 대표변호사
2005년8월~ 한국노총 자문변호사

<글/김경은 기자 jjj@kyunghyang.com>
<사진/김석구 기자 sgkim@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