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리더]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

국감스타로 뜬 ‘철의 여인’
현장에서 성장한 노동운동가… “지지층 조직화 ‘거대한 소수’ 실현할 것”

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이 일반인들에게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은 불과 얼마 전의 일이다. 제17대 국회의원에 비례대표로 당선되며 정치권에 발을 디딘 심 의원은 2004년 17대 국회의 첫 번째 국정감사에서부터 단숨에 스타로 떠올랐다.
심 의원의 꼼꼼한 자료준비와 날카롭고 논리적인 질의 앞에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등 쟁쟁한 피감기관의 인사들이 진땀을 빼야 했다. 언론과 시민단체에서는 그를 국감 우수의원으로 선정했다. 2005년 국감에서도 그는 삼성자동차의 3000억 원대 분식회계를 파헤치는 등 또 다시 히트했다. 명실상부한 국감 스타로의 발돋움이었다.

일반인들에게는 이렇게 이름을 알렸지만 적어도 노동계에서 ‘운동깨나’ 했다는 사람들 사이에서 심상정 의원의 이름 석 자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한국노동운동사를 주도한 큰 흐름마다 어김없이 그의 이름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남성 중심 학생운동에 일침

서울대 역사교육과 78학번인 그는 2004년 정계입문 직전까지 25년 동안 노동운동을 해왔다. 그가 노동운동을 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대학 1학년이던 1978년 대학문화연구회, 줄여서 ‘대문’에 들어서면서였다.

당시 대문은 쟁쟁한 언더서클과 달리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는 본부 등록 서클, 즉 오픈서클이었다. 대문의 전신인 ‘청넝쿨’로, 1973년 김충환 현 한나라당 의원과 성경륭 국가균형발전위원장 등 73학번이 만든 독서회 성격의 서클로 출발했다.
초기의 청넝쿨에는 주로 수석입학자나 각 고등학교 학생회장 등 엘리트 그룹이 대거 가입했다. 때문에 청넝쿨은 운동권으로부터 ‘귀족클럽’이라는 따가운 시선을 받았다. 특히 1975년 당시 청넝쿨 회장인 김충환 의원이 학도호국단 부사단장에 임명되면서 청넝쿨은 급기야 ‘어용조직’이라는 비난마저 들어야 했다.

이런 청넝쿨에서 출발한 대문이 훗날 80년대 서울대 학생운동을 주도하는 관악의 ‘빅패밀리’로 성장하는 데는 78학번 동기인 심상정 의원과 최민(열린우리당 장애인특별위원장)·이호균(길벗 대표)씨 등의 역할이 컸다.

‘맨 땅에 헤딩’ 비주류 인생

그는 “당시는 지식인들의 사회활동이 크게 강조되고 있던 시기였는데, 이에 반해 대문 선배들이 좀 소극적이지 않느냐 하는 것이 78학번들의 목소리였다”면서 “나와 최민, 이호균 등이 주축이 돼서 대문을 좀더 사회변혁운동에 다가가는 운동성을 강화하는 쪽으로 강드라이브를 걸었다”고 말했다.

대문 개조에 성공한 심 의원은 서울대 학생운동에서 또 하나의 족적을 남겼다. 학내에 여학생회를 만든 것이다. 당시 운동권 학회에서 여학생들은 3학년 이후 대부분 학회 중심활동에서 밀려나 있었다. 특히 언더서클들은 모집 당시부터 남학생들을 유인하기 위한 수단으로 여학생들을 적극적으로 참가시키지만 정작 학회를 운영하고 후배들을 지도하고 학생운동 속에서의 임무 등 운동가로서 역할에는 철저히 여성을 배제했다는 것이 심 의원의 주장이다.

그는 인문대 곽복희, 가정대 장영인 등과 함께 사범대, 인문대, 가정대에 독자적으로 여학생학회를 만들기로 의기투합했다. 남자 선배들과 동기들로부터 만류와 비난을 동시에 받던 심 의원은 비난하던 선배들과 맞서 싸우며 마침내 여학생학회를 출범시켰다.

대문의 개혁과 여학생회의 출범이라는 두 가지 빛나는 업적을 남긴 심 의원은 대학 3학년이던 1980년 말에 구로공단 대동전자에서 노동자로서의 삶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는 “지식인이 사회변혁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 당시로서는 너무도 당연했기 때문에 나이와 상관없이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면서 “여학생회를 만든 선배로서 후배들에 앞서 길을 터야겠다는 판단도 비교적 일찍 구로공단으로 뛰어들게 된 계기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1985년 구로동맹파업은 노동운동가로서의 심 의원의 존재를 선명하게 각인시켜준 사건이었다. 구로동맹파업은 22개 노조와 운동단체가 결합하며 6·25 이후 최초·최대의 정치적 파업으로 기록되며 80년대 노동운동의 분기점이 됐다. 80년대 민주노조운동의 성과가 구로동맹파업으로 전면적으로 표현됐을 뿐만 아니라 이 사건 이후 민주노조운동은 급속한 질적 변화와 분화를 겪게 됐다. ‘서울노동운동연합’(서노련) 등 정치적 노동단체가 출범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였다.

서노련은 구로동맹파업의 주역들과 김문수 현 한나라당 의원 등이 힘을 합쳐 만들었다. 당시 김 의원은 ‘전태일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었는데 ‘전태일기념사업회’는 구로동맹파업을 측면에서 크게 지원하기도 했다. 서노련 결성을 주도한 심 의원은 중앙위원장을 역임하며 서노련의 핵심인물로 지목되기도 했다. 서노련에는 김문수 의원 이외에도 유시민 열린우리당 의원과 백태웅·박노해씨 등이 망라돼 있었다. 그후 그는 민주노총의 전신인 전국노동조합협의회 쟁의국장을 거쳐 금속연맹 사무처장을 맡기도 했다.

심상정 의원이 걸어온 길을 요약하면 비주류의 길이라고 할 수 있다. 학생운동 시절에는 남성 중심, 사회대 중심의 학생운동에 반기를 들어 여학생학회를 결성했고, 노동운동을 했던 시기의 대부분도 남성이 95%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민주노총 금속연맹에서 보냈다.

노동계에 투신하는 과정도 일반적인 ‘학출’ 노동자와 달랐다. 대학생들이 현장에 위장취업을 하기 위해서는 ‘이전팀’에서 이른바 ‘먹물’을 빼는 작업을 거친다. 그러나 그는 여학생회 결성 등으로 남자 선배들과 반목한 탓에 본인의 표현처럼 ‘맨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구로공단을 찾아갔다.

현장에서 운동을 시작한 뒤 정계입문 직전까지 노동현장에서 활동을 지속해온 것도 특이하다. 많은 학출 노동자들이 전위조직을 자처하고 나서지만 대부분 그 조직이나 이념을 스스로 포기하고 운동에서 떨어져 나갔다. 특히 사회주의의 붕괴와 함께 많은 운동가들이 운동과 이념을 떠나 고시를 봐서 판·검사가 되거나 대기업을 찾아갈 때도 그는 대중 노동운동 조직에 계속 남아 있었다. 그는 “좋게 이야기하면 창조적으로 운동을 했고, 나쁘게 이야기하면 선배들과 단절된 채 운동을 해왔다”면서 “전체적으로 비주류에서 성장한 것만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심 의원이 활동공간을 노동계에서 민주노동당으로 옮긴 것은 2004년 총선에서 당내 비례대표 경선에 참여하면서 비롯됐다. 노동조합운동만으로 노동자와 서민의 생존과 권리를 보장받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수십 년 동안 노동운동이 소수의 이해를 대변해왔지만 그 과정에서 오히려 노동자와 진보정치가 번번이 소외돼 왔고, 민노당의 창당으로 노동자를 비롯한 소수를 위한 진보정치를 펼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다는 판단도 있었다.

정계입문이 늦었지만 두 차례의 국정감사를 통해 스타로 부상한 심 의원은 그 배경으로 역시 노동운동 경험을 꼽는다. 오랫동안 노동운동을 하면서 자본측과 협상 및 대화를 해왔던 경험이 경제를 해석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는 것.

“지역구 결정은 올 하반기에”

그는 “그동안 기성정치에서는 제기하지 않았던, 제기하고 싶지 않았던 의제를 내가 적극적으로 거론했던 부분과 노동자와 서민의 관점에서 문제를 제기한다는 부분이 좋은 평가를 받게 된 이유인 것 같다”고 밝혔다.

심 의원은 진보정치와 민노당의 발전전략으로 외형 위주의 성장전략에 대한 반성이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원내진출 이후 당이 여론조사 등락에 일희일비하는 등 외형적 성장만 꾀하는 바람에 당내 정체성이 약화되는 부작용이 있었다는 것이 그가 지적하는 민노당의 실책이다.

이 과정에서 ‘거대한 소수’의 고정지지층을 형성하는 비정규직과 농민, 장애인에 대한 지지층 확대전략이 구체화되지 못했다는 것도 그의 평가다. 심 의원은 “향후 당내 아이덴티티를 강화하고 전략적 주체에 대한 조직화 프로그램이 마련돼야 당이 ‘거대한 소수’ 전략을 실현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민노당의 강령에는 비례대표직은 연임이 불가능하게 돼 있다. 따라서 심 의원도 2008년 총선에서 의무적으로 지역구에 출마해야 한다. 그는 본인의 정치적 지향과 향후 행보를 밝혀달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아직 (정계에 입문한 지) 1년 반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으로서는 진보정치를 책임있게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정치인으로서의 소양과 능력을 꾸준히 배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민노당의 발전전략 속에서 이를 조화시켜 나갈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심 의원은 조금 민감한 문제인 지역구 출마에 대해서는 “수도권에서 당의 선거전략 차원에서 정하려고 한다”면서 “지역구 결정 문제는 올 하반기쯤에 생각해보겠다”고 밝혔다.

약력

뉴리더

1978년 서울대 역사교육학과 입학
1980년 서울대 최초 여학생회 결성 주도
1980년 구로공단 남성전기 노동조합 교육부장
1983년 구로공단 소재 대우어페럴 미싱사로 근무,
노조결성 및 쟁의로 수배
1985년 구로동맹파업 조직·주모자로 지명수배
1985년 서울노동운동연합 결성 주도·중앙위원장
1987년 전국노동조합협의회 쟁의국장·조직국장
1996년 민주금속연맹 사무처장·금속산업연맹 사무차장
2000년 민주노동당 당대회 부의장(비상근)
2004년 6월 제17대 국회의원 당선(비례대표·민주노동당)

<글/최성진 기자 csj@kyunghyang.com>
<사진/김석구 기자 sgkim@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