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리더]김영춘 열린우리당 의원

“87년 체제 업그레이드가 나의 사명”

84년 민정당사 점거농성 주역… ‘하루살이’ 신세 두렵지 않은 소신파

1984년 11월 14일 오후 4시 20분께, 종로 허리우드극장을 중심으로 대학생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삼삼오오 짝은 지은 학생들은 초겨울 가랑비를 맞으며 약 500m 떨어진 민정당사로 향했다.

학생들의 행렬이 민정당사에 거의 도착했을 무렵, 누군가 “학우여” 하며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함성을 신호탄으로 약 300명의 학생이 일제히 민정당사를 지키던 전경들을 밀어젖히며 건물 안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뒤로는 ‘우리는 왜 민정당사를 찾아왔는가’라는 제목의 유인물이 살포됐다.

사태를 파악한 전투경찰들이 허겁지겁 당사를 에워싸고 최루탄을 쏘아댔지만 학생들이 이미 총재실과 소회의실을 장악한 이후였다. 9층 소회의실에 당도한 학생들은 철문을 안으로 걸어잠근 채 창문에 ‘노동법 개정하라’ ‘전면해금 실시하라’는 플래카드를 내걸고 농성에 들어갔다.

이른바 84년 ‘민정당사 점거농성’ 사건이었다. 당시 민정당은 무소불위의 독재권력을 휘두르던 전두환 정권 아래에서 전위부대 역할을 하던 막강 여당이었다. 이런 권력의 심장부를 대학생 300명이 기습점거한 이 사건은 80년대 학생운동사의 한 페이지를 화려하게 장식한 것은 물론, 이듬해 치러진 2·12총선에서 야당인 신민당이 돌풍을 일으키는 데도 많은 기여를 했다.

YS와의 인연 그리고 결별

김영춘 열린우리당 의원은 바로 민정당사 점거농성을 주도한 인물이다. 고려대 81학번인 그는 이정우 변호사(서울대 81학번), 송영길 의원(연세대 81학번) 등과 함께 ‘불법 총학생회장 3인방’ 가운데 한 명이었다. 김 의원은 “농성의 목적은 당시 폭압정치의 현실과 전두환 정권이 내놓은 학원자율화 조치의 허구성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자는 것이었다”면서 “민정당사 점거농성으로 송 의원과 나는 구속됐지만 억눌려 있던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를 분출시키는 촉매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우리의 농성은 애초 목표를 200% 달성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80년 광주항쟁 직후 대학에 입학한 81학번들은 80년대 학생운동의 도화선 역할을 했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이후 정치권에 뛰어들면서 ‘386세대 정치인’이란 수식어를 얻었다. 김영춘 의원이 바로 386의 1세대에 해당한다.

학도호국단 해체와 대학 총학생회 부활, 민정당사 점거농성 주도 등으로 80년대 초반 학생운동을 이끈 그는 1987년 초 김영삼 당시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 공동의장 비서로 임명되며 정치권에 입문했다. 동료 386의원들과 비교해도 매우 빠른 편이었다.

같은 부산 출신의 김영삼 전 대통령과 그가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 1985년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민정당사 점거농성으로 구속됐다 막 석방된 김 의원 등 농성 구속자들을 김 의장이 초청해 간단한 티타임을 가졌다. 그리고 2년 뒤인 1987년 초 그가 직선제 개헌투쟁을 주도하던 김 의장 비서를 맡으며 본격적으로 정치행보를 함께 하게 됐다.

그는 “당시로서는 정치를 해야겠다는 생각보다 직선제 개헌에 힘을 보태겠다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이었다”면서 “밖에서 도와주는 길도 있었겠지만 당시 군사정권이 직선제 개헌을 받아들일 것이라는 전망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안으로 직접 들어가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 인연은 그가 2003년까지 보수진영에 몸담게 된 직접적 계기로 작용했다.

정치 입문 이후 그는 줄곧 엘리트 코스를 걸어왔다. 1992년 대선을 앞두고 김영삼 당시 민자당 후보 추대위 기획실장을 맡았고 김 후보 당선 직후에는 갓 서른을 넘긴 젊은 나이에 대통령비서실 정무비서관으로 임명됐다. 2002년 대선에서는 ‘2030위원회’ 총괄본부장을 맡으며 당시 이회창 총재의 핵심측근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리고 2003년 7월 그는 이른바 ‘독수리 5형제’의 이름으로 야당인 한나라당을 탈당해 열린우리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한나라당 탈당과 열린우리당 합류는 김영춘 의원 개인의 입장에서 볼 때 대단히 중요한 정치적 사건이었다. 탈당을 결심할 당시 김영삼 전 대통령은 그를 불러 “한나라당에 가만히 있으면 대선후보도 될 수 있는데 왜 하루살이가 되려고 하느냐”며 그를 만류했다. “한나라당이 ‘도로 민정당’이 됐는데 어떻게 있겠느냐”는 것이 그의 답변이었다. 김 전 대통령과의 오랜 정치적 인연도 여기까지였다.

김 전 대통령의 재직 시절 내내 숨죽이고 있던 민정계가 97대선 직후 다시 당을 장악한 탓에 건강한 개혁보수의 목소리가 실종됐다는 것이 그가 밝힌 탈당의 변이었다. 그는 “민자당 시절부터 당을 건강한 보수정당으로 만드는 데 기여하는 것이 목표였는데 탈당 시점에서 본다면 이는 실패했다고 볼 수 있다”고 규정했다.

야당에서 여당으로 옮긴 것이었지만 그가 ‘철새 정치인’ ‘기회주의자’라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재선이 보장된 자리를 버리고 자갈밭으로 들어섰기 때문만은 아니다. 당적을 바꾸었다는 것은 겉으로 드러난 현상일 뿐, 그의 선택은 결국 386의 1세대, 운동권 81학번으로서 자신의 몸에 맞지 않는 ‘보수’라는 옷을 벗고 ‘개혁’이라는 정치적 원형질을 회복한 것에 다름아니기 때문이다.

2006년 전당대회를 앞두고 정치권에서 40대 기수론이 화두로 떠오른 지금 김영춘 의원은 다시 한 번 개혁을 주장하며 일어섰다. 기존의 대선후보인 정동영·김근태 두 장관을 비롯, 기존의 개혁세력에 대해 국민들의 부정적 여론이 자리잡고 있는 만큼 40대 재선그룹이 우리나라의 개혁세력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자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그는 “우리나라가 과거의 패러다임을 극복해서 선진국으로 도약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당위이지만, 이러한 새로운 틀을 수용하고자 하는 사회적 공간은 취약했다”면서 “이런 문제를 오랫동안 고민해온 40대 재선그룹이 새로운 패러다임을 수용해야 하는 이유와 40대가 생각하는 개혁, 그리고 국가경영에 대한 미래의 청사진을 제공하자는 것이 40대 기수론”이라고 규정했다.

‘보수’의 옷을 벗고 ‘개혁’으로

그렇다면 40대가 생각하는 개혁이란 어떤 것일까. 그는 우선 큰 틀에서 보자면 정치적 리더십의 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것과 ‘87년 체제’의 극복에 앞장서야 한다는 것을 꼽았다.

그에 따르면 우리나라 정치는 직선제 개헌을 이끌어낸 87년 체제를 통해 형식적으로는 민주주의를 완성했다. 그러나 87년 체제가 사회·문화적으로 성숙된 토양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 안에는 사회·경제적 민주화에 대한 논의의 장이 부족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는 “이제는 87년 체제를 업그레이드해서 사회·경제적 민주주의까지 함께 이뤄낼 수 있는 틀로 탈바꿈해야 한다”면서 “40대 정치인들이 이러한 민주주의적 과제를 정면으로 제기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 대목은 그가 생각하는 뉴리더의 덕목과도 연결된다. 변화하는 시대에 맞는 새로운 비전과 그 비전에 맞는 구체적인 실현방안을 제시할 것. 다시 말해 젊은 정치인일수록 새로운 시대를 예고하고 울어주는 새가 될 것. 1984년 11월 민정당사 점거농성으로 세상을 놀라게 했던 김영춘 의원이 생각하는 뉴리더의 모습이다.

인터뷰/김영춘 열린우리당 의원

“새로운 패러다임은 40대의 몫”

-40대 기수론에 대해 40대가 아닌 당내 인사들의 반발은 없나.

“지도력을 전면교체해서 우리가 다 하겠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공존이 가능하다고 본다. 또 나이의 문제가 아닐 수도 있는 것이, 우리가 주장하는 것에 공감한다면 40대나 50대가 굳이 상관있겠나. 40대 기수론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시대적 담론의 교체이지 세력의 교체가 아니다.”

-40대 기수들의 경쟁력은 어디에 있나.

“일단 젊다는 것이다. 유권자의 70%는 40대 이하다. 40대라면 이들의 요구를 가장 가까운 지점에서 파악해 이를 자신의 정치적 강령으로 채택할 수 있는 연령대이다. 새로운 시대의 패러다임을 주장하고 설계하고 실천할 수 있는 담지자로서는 40대가 가장 적합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면서도 마냥 젊은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이상과 현실을 조화시켜 힘있게 추진시켜 나갈 수 있는 세대라고 생각한다.”

-전당대회 출마는 결정했나.

“(끄덕끄덕)”

-그밖에 결정된 다른 후보들은.

“임종석 의원 정도. 아직 충분히 확인해보지는 않았다. 더 출마하겠다는 사람도 있고, 또 너무 많이 나가면 중구난방이 될 수 있으니까 대략 세 사람 정도로 조정을 해서 예선 단계에서는 공동캠페인도 하고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다.”

-김 의원에 대해 무색무취하다는 평가가 있는데.

“전혀 무색무취하지 않다. 당내에서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없을 것 같다. 다만 공개된 자리에서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을 뿐이지 당내에서는 강력히 주장할 부분에 대해서는 원칙을 굽히지 않고 관철시키려 한다.”

약력

뉴리더

1980년 2월 부산 동 고등학교 졸업.
1981년 고려대 영문학과 입학.
1984년 고대 총학생회장 당선. 민정당사 점거농성 주도 혐의로 구속.
1985년 2·12총선 뒤 출소.
1987년 1월 김영삼 민주화추진협의회 공동의장 비서.
1992년 김영삼 민자당 대선후보 추대위 기획실장.
1993년 대통령비서실 정무비서관.
1999년 한나라당 미래연대 운영위원장.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서울 광진갑)
2003년 7월 한나라당 탈당.
2003년 9월 국민참여통합신당주비위원회 위원.
2004년 2월 열린우리당 서울시지부장.
2004년 6월 제17대 국회의원.(서울 광진갑)

<글/최성진 기자 csj@kyunghyang.com>
<사진/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