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직업생활](4)컴플라이언스, 관련 법규 준수 감시·안내자

업무상 e메일을 쓸 때 어떻게 끝맺음을 하는지? ‘아무개 드림’이라고 나를 한 번 더 주지시키는 경우도 있고, 가끔은 ‘수고하세요’ 같은 문어체 인사가 등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감사합니다”라는 말로 마무리를 하는 듯하다. 나 또한 그렇다. ‘감사합니다’처럼 정석적이면서도 무난한 맺음말은 없다고 생각하니까.

pixabay

그런데 기업의 감사팀 사람들은 e메일 말미에 절대 “감사합니다”라고 쓰지 않는다는 농담을 들은 적이 있다.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자칫 ‘감사(를) 합니다’라고 오해받을까 봐서 그렇다나. 물론 농담이지만, 인사로라도 감사라는 말은 입에 올리지 않는다는 반쯤은 진담 섞인 부연설명에 우습고도 슬펐던 기억이 난다.

임직원의 부정부패를 찾아내고 처벌하는 기업 내의 감시자인 감사팀. 횡령이나 배임, 비리 등의 공적인 영역부터 시작해 사내 불륜이나 성희롱 등의 사적인 영역까지 감사팀이 주시하는 범위는 넓고도 깊다. 그런데 횡령이나 배임이 아니더라도 업무를 공정하게 잘 수행하고 있는지 감시하는 곳은 없을까. 회사의 이익을 위해 모르고 한 일이 역으로 막대한 손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으니 말이다. 이처럼 일반적인 감사팀에서 담당하지 않는, 업무를 올바르게 수행하는지를 감시하는 직업 또한 존재한다. ‘컴플라이언스’라는 다소 난해한 이름으로.

아직은 참 생소한 단어인 컴플라이언스(Compliance). 단어 자체로는 준법(遵法), 즉 법을 따른다는 의미지만, 직업으로서의 컴플라이언스는 준법감시나 준법경영 등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한마디로 정의하면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기업이 관련 법규를 준수하도록 하는 일련의 장치이자 역할을 의미한다.

금융상품에 적힌 ‘준법감시인 심의필’

우리가 일을 할 때는 지켜야 하는 다양한 법이나 정부의 규제 및 규정이 존재한다. 실제로는 잘 체감하지 못하더라도, 우리가 업무상 암묵적으로 하지 않는 일의 배경에는 법률 규정이 자리 잡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실무자가 쉴 새 없이 바뀌고 업데이트되는 복잡한 이해관계를 하나하나 따져가며 일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기업에는 컴플라이언스 담당자가 필요하다.

법률 규제가 그 어느 곳보다 촘촘하게 얽힌 분야를 꼽으라고 한다면 아마도 금융이 아닐까 싶다. 자금세탁방지법을 비롯한 수많은 관계법령과 금융감독원의 규제를 준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실제 현금이 바쁘게 오가는 분야이기도 해서 문제는 더욱 복잡할 것이다. 그래서 컴플라이언스라는 용어나 개념도 금융 분야에서 처음으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준법감시인이라고도 불리는데, 은행이나 카드사에서 새로운 상품에 가입하려면 하단에 ‘준법감시인 심의필’이라 적힌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법률 규제에 저촉되지 않는지 컴플라이언스의 심의를 통과한 상품이라는 뜻이다.

사업상 발생 가능한 일을 사전에 진단하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실무자 입장에서는 업무에 훼방꾼이 생긴 것 같은 기분일 터. 덕분에 <금융기관 컴플라이언스 실무>의 저자 애니 밀스는 책에서 ‘비즈니스 방해 책임자’라는 오명을 얻었다고 말한다. 또한 처음 컴플라이언스 업무를 맡아야 했을 때 “‘사람들을 문제에 빠지게 하는’ 많은 규칙을 배우게 되는 일을 한다는 것”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그는 컴플라이언스 담당자로서 초반에 저질렀던 실수에 대해서도 함께 밝혔다. 가장 대표적인 실수는 타 부서 동료에게 특정 규칙을 들이대면서 그 일을 중단하지 않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협박하듯 이야기했던 것. 자세한 이유를 설명하지 않고 “당장 이 일을 중단하라”는 말부터 했단다. 하지만 컴플라이언스 담당자의 역할은 발생 가능한 문제를 사전에 진단해내는 것은 물론, 실무자들과 함께 대안을 찾아내는 것까지이다. 겉으로 보면 그저 감시하고 잔소리하는 역할인 것 같지만, 실제로는 안전한 비즈니스의 안내자 역할도 겸하는 것이다.

넓고 다양한 컴플라이언스의 세계

그렇다면 금융 이외 어떤 분야에서 컴플라이언스 담당자들이 활약하고 있을까. 사실 특정 분야에만 필요한 직무는 아니지만, 제약이나 건설, IT 분야에서 컴플라이언스의 활약이 두드러지는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 규제나 법률을 예민하게 따져야 하는 분야들이다.

제약·바이오 분야 컴플라이언스는 타 분야 대비 영업적 측면을 가장 크게 고려해야 하는 분야일 것이다. 신약의 개발 특허 기간이 만료되면 동일한 성분의 약을 다른 회사에서도 판매할 수 있게 되는데, 때문에 수없이 많은 ‘이름만 다른’ 또 다른 나와 경쟁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영업이 가장 중요해질 수밖에 없고, 업계의 특성상 의료법, 약사법, 의료기기법 등의 복잡한 이해관계를 모두 고려해야 한다. 그와 동시에 고질적인 문제로 손꼽히는 리베이트를 근절하는 업무 또한 담당해야 한다.

IT 분야의 컴플라이언스는 무슨 일을 할까. 단순하게 생각하면 IT 분야에 컴플라이언스가 왜 굳이 필요할까 싶은 생각이 들지만, 최근 기업의 업무환경이 IT 기반으로 바뀌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겠구나 싶다. 과거에는 회계장부나 품의서가 모두 종이로 작성되었지만, 최근에는 대부분 전자문서화되고 있다. 때문에 이러한 전자문서들을 작성하고 관리하는 데 대한 관련법이나 규제가 생겨나고 있다.

하지만 IT 분야 컴플라이언스가 기업의 내부 살림살이에만 관여하는 것은 아니다. ‘빅데이터’가 보편화된 세상에서 고객의 개인정보를 어떻게 수집하고 관리할 것이냐는 상당히 중요한 문제이다. 특히 고객의 정보가 막대한 돈이 되는 세상이다 보니 해킹 등의 사고를 막기 위한 각별한 노력이 필요하다. 때문에 IT 컴플라이언스 담당자들은 법률적인 문제는 물론, 이를 관리할 수 있는 기술적 측면에 대해서도 깊이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이처럼 컴플라이언스가 법률적인 문제만 보는 것은 아니다. 법률은 물론이고, 감독규정, 프로세스 개선, 리스크 관리 등 그야말로 다양한 측면에서 다각도로 업무를 검토한다. 옳은 방향으로 일하면서도 회사에 이익이 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비즈니스를 망치러 온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비즈니스를 구하러 온 구원자라고 할 수 있겠다.

슬기로운 직업생활

문득 인생에도 컴플라이언스를 적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개인사에 법적인 문제가 자주 발생하지는 않겠지만, 내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내 인생의 리스크나 프로세스를 찾아내고 개선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주는 사람이 있다면 좋겠다. 그런데 어쩌면 나에게는 엄마가 컴플라이언스 담당자였구나 싶다. 늘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잔소리를 제공해주셨으니. 결국 컴플라이언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실행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장지희 작가·서비스 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