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트렌디 드라마에는 쉽사리 변하지 않는 규칙 아닌 규칙들이 있다. 여자 주인공은 마치 캔디의 현신인 듯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거나, 남녀 주인공들의 관계는 늘 삼각 내지는 사각을 이룬다는 규칙들 말이다. 그다음으로 시종일관 변치 않는 대목을 꼽아보자면 바로 남자 주인공의 직업이 아닐까 싶다. 훤칠한 인물을 가진 남자 주인공들은 늘 그 시절의 가장 ‘있어 보이는’ 직업이나 직책과 함께 등장한다. 그래서 그들은 한때는 실장님으로, 또 다른 한때는 본부장님으로 불렸다. 요새는 아무래도 시대가 시대이다 보니 CEO가 가장 흔하게 등장하는 직업 중 하나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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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처음에는 사장이나 대표라는 말 대신 정확한 뜻도 알 수 없는 이 단어를 쓰는 것이 참 어색했다. 세월이 지난 지금, 이것 하나만큼은 확실해졌다. CEO라는 단어는 이제 성공의 동의어로 여겨진다는 것. 하지만 알고 보면 세상에는 CEO 말고도 C로 시작하는 직업들이 꽤 많다. 판사, 검사, 변호사, 의사 등의 ‘사짜 직업’처럼, 최근에는 ‘C레벨’이라는 표현을 자주 듣게 된다. 여기서 C는 당연히 CEO의 C인 Chief이니, 어느 한 조직의 우두머리라는 이야기일 테다. 한마디로 ‘임원’이라는 뜻이다. ABC의 C라고 어림짐작해서 ‘C급’이라는 의미로 치부했다가는 큰코다친다.
C레벨 중 으뜸이라 할 수 있는 CEO는 Chief Executive Officer, ‘최고 경영 책임자’라는 뜻이다. 조금 더 풀어서 설명하자면 임원을 뜻하는 Executive officer 중에서도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하지만 기업을 직접 소유하는 오너와는 달리 의사회의 선임을 받아야 하고, 정해진 임기가 만료될 즈음에는 성과에 따라 유임 여부가 결정된다. 드라마에서 재벌들끼리 나누는 “전문경영인에게 경영을 맡겼다”라는 대사 속 전문경영인이 바로 CEO라고 봐도 무방하다.
쉽게 CEO라 소개하면 안 되는 이유
그런데 이 CEO라는 단어가 성공의 상징처럼 여겨지다 보니 잘못 쓰이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SNS에 보면 자영업자가 프로필에 본인을 CEO라고 칭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물론 중소기업에는 대주주가 CEO의 역할도 겸하는 ‘오너 CEO’들도 존재한다. 하지만 자영업자가 CEO라는 말을 쓴다면 스스로를 이른바 ‘바지사장’이라고 잘못 설명하게 되는 셈이다.
CEO를 비롯한 C레벨들은 모두 각각의 전문 분야를 가지고 있다. 과거에는 전통적인 직급체계만으로 모든 의사결정이 가능했지만, 점점 시장과 환경이 복잡해지면서 각 분야를 전문적으로 총괄할 책임자가 필요해진 것이다. 덕분에 C레벨도 점점 그 분야가 다양해지고 있다. 또한 회사마다 각기 다른 C레벨의 구성은 그 회사의 방향성을 보여주는 바로미터이기도 하다. 각 직무의 최고책임자를 칭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C레벨들이 포진하고 있는지만 살펴보아도 그 회사가 어떤 분야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C레벨의 세계
우선 일반적인 업무를 담당하는 C레벨부터 알아보자. 최고운영책임자인 COO를 가장 먼저 소개하고 싶다. O는 Operation을 의미하는데, 운영에도 최고책임자가 필요한 걸까 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다. 사실 운영이란 말은 늘 과소평가되는 경향이 있다.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낸다기보다는 존재하는 것을 잘 관리한다는 의미가 강하게 풍겨서일 것이다. 하지만 COO에서 말하는 운영은 단순히 특정 업무나 사업에 대한 운영이 아니라 회사 전체에 대한 운영이다. 때문에 COO는 사장이나 부사장급의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에게 그 역할이 주어지는 경우도 많고, 때로는 CEO가 COO의 역할을 겸하는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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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COO와 함께 C레벨의 트라이앵글을 이룬다고 볼 수 있는 최고재무책임자는 CFO라고 부른다. F는 짐작하듯 Finance이다. 재무와 회계 전반을 담당하는데, 돈을 관리하는 자리이다 보니 기업 전반을 담당하는 CEO나 COO 대비 전문직임에도 그에 못지않은 중요한 포지션으로 인정받는다. 이들을 조선왕조의 삼정승에 비유해보자면, CEO는 영의정이요, COO는 우의정, 곳간을 관리하는 CFO는 좌의정이라고 해도 무방하겠다.
그 외에도 마케팅(Marketing)을 총괄하는 CMO, 기술(Technology)을 총괄하는 CTO, 제품(Product)을 총괄하는 CPO가 존재한다. 그러나 사실 C레벨은 C와 O 사이에 들어가는 단어에 따라 얼마든지 새로운 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 수학공식으로 설명하자면 ‘C + f(x) + O’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C레벨은 그 종류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기업의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새로운 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디지털 역량이 약하다고 판단되면 CDO(Digital)를 신설하고, 제품의 창의성이 절실하다면 CCO(Creative)를 임명한다. 앞서 C레벨의 구성을 보면 그 회사가 어느 분야를 중요시하는지 읽어낼 수 있다고 한 이유이다.
기업의 필요에 따라 새로 만들어진 C레벨들을 살펴보면, 최고성장책임자인 CGO(Growth), 최고고객책임자 CCO(Customer), 최고지식책임자 CKO(Knowledge)부터 최고 비전 제시 책임자 CVO(Vision)까지 그 종류와 범위가 매우 다양하다. 이렇게 계속 새로운 C레벨들이 탄생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는 C레벨을 만날 기회가 있다면 상대의 직함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미리 파악하는 것이 필수가 될 것 같다. CCO만 해도 크리에이티브, 고객, 콘텐츠(Contents), 금융소비자보호(Credit) 등의 여러 의미로 사용되고 있고, CTO도 얼핏 기술담당인가 싶지만 Talent, 즉 인재영입 관련 임원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문득 이처럼 다양한 C레벨 중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 스스로를 CEO에도 COO에도 대입하다 보니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가 기억났다. 회사에서 힘든 일이 있으면 언젠가 임원이 된 미래를 그리며, 나는 훨씬 더 잘 해낼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시절이.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공상이 얼마나 오만한 것이었는지. 그리고 C레벨들이 얼마나 심사숙고 끝에 의사결정을 내리고, 그 결정 하나하나에는 그들의 경험이나 철학이 얼마나 쉽게 반영되는지. 그리하여 그들이 내리는 의사결정 하나에 기업의 명운이 달라지기도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C레벨은 내 생각보다 훨씬 더 무겁고 대단한 자리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나는 C레벨에 대한 꿈보다는 당장 오늘의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하지만 한편으론 자신만만하게 임원을 꿈꾸었던 과거의 내가 그리워지기도 한다.
<장지희 작가·서비스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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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커지는 채 상병 의혹
‘이채양명주’ 의제로 올려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