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직업생활](8)PM, 프로젝트 총괄 실무 책임자

얼마 전 유튜브에서 “남 일 같지 않다”는 댓글이 달린 영상을 보았다. 일본 드라마의 한 장면이었는데, 광고회사에서 개사료 CF를 만드는 과정이 담겨 있었다. 감독은 인기 여배우를 섭외해서 깔끔한 광고를 만들어내지만, 고객은 “인기 연예인을 썼으니, ‘그녀에게 이런 모습이 있다니’ 싶은 내용을 넣어달라”고 주문한다. 엔터테인먼트적 요소도 가미해달라며. 덕분에 수정된 광고 속에서 청순한 이미지의 여배우는 망사스타킹에 요란한 옷을 입고서 강아지와 산책을 하고, 사료를 주면서 백댄서들과 춤을 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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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배경음악은 엔카로 해달라”라는 임원부터 “배우가 돋보이지 않는다”는 배우의 소속사까지. 관계자들의 요구가 끊임없이 쏟아진다. 그것을 하나씩 수용하다 보니, 결국 완성된 광고에는 구성진 엔카가 흐르는 바닷가에서 뛰노는 여배우와 ‘소고기와 참치로 만들었다’는 대문짝만한 자막만 등장한다. 정작 강아지나 사료는 코빼기도 비치지 않는다. 말 그대로 배가 산으로 간 것이다.

개사료 광고임에도 강아지와 사료는 등장하지 않고 여배우와 엔카, 괴상한 자막만 남은 광고. 이 광고가 산으로 가는 데 가장 크게 기여한 한 사람은 누구일까? 나는 황당한 요구사항을 늘어놓은 사람들보다 이를 거절하지 않은 감독이 제일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는 수용하되 본질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합의를 하거나, 혹은 과감히 거절했어야 할 요구를 여과 없이 모두 받아들였다. 광고 제작 전반을 이끄는 수장임에도 불구하고 갓 입사한 신입사원처럼 모든 의견을 날것 그대로 수용한 것이다.

실무를 이끄는 CEO

이만큼 극단적이지 않더라도, 비슷한 상황은 실무에서 꽤 자주 일어난다. 프로젝트를 둘러싼 여러 조직과 담당자의 이해관계는 늘 엇갈리게 마련이니까. 프로젝트팀으로 쏟아지는 일명 ‘내부 클라이언트’들의 요구사항과 피드백은 언제나 끝이 없다. 때문에 거기에 휘둘리기 시작하면 프로젝트는 당초의 목표와 취지를 잃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 영상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았던 것도 그 반증이지 않을까. 결국 제대로 프로젝트를 마치기 위해서는 감독, 즉 실무 책임자가 중심을 잘 잡아야 한다.

프로젝트의 진행을 총괄하는 실무 책임자, 그들은 Project Manager의 줄임말인 PM이라 불린다. 프로젝트팀의 업무 전체를 이끄는 사람으로, 말 그대로 프로젝트의 수장이라는 의미이다. 때문에 이들은 직급을 초월한 권한을 가진다. 일반적인 업무 상황에서는 직급을 따라야 하지만, 주어진 업무를 기간 내에 해내야 하는 프로젝트라는 특정한 상황에서는 PM이 나보다 직급이 낮거나 나이가 어리더라도 그 지시를 따라야 한다. 그래서 PM은 ‘미니 CEO’ 혹은 ‘실무의 CEO’라고도 불린다.

프로젝트에서 PM이 가장 중요하게 관리하는 것은 바로 ‘범위’와 ‘일정’ 그리고 ‘이슈’이다. 일상적인 업무에서도 단연코 중요한 요소들이지만, 한정된 기간 동안 집중적으로 업무를 진행해야 하는 프로젝트에서는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프로젝트에서 수행할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명확하게 정의하고, 계획한 일정대로 업무가 진행되는지 모니터링하며, 진행 도중 발생하는 문제점을 해결하는 것이 PM 업무의 삼위일체라고 생각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이슈관리일 것이다. 드라마 속 광고 제작처럼 여러 이해관계자가 제기하는 이슈도 있지만, 작업 도중 발생하는 돌발상황이 더 풀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IT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보면 분석이나 설계단계에서는 가능하다고 판단되었던 기능이 막상 작업 도중 발생하는 변수로 인해 개발 불가 판정을 받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이럴 때 PM의 역할은 정확히 어떤 문제인지 ‘제때’ 파악하여 해결책이나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다. 문제점을 알고서도 마냥 손에 쥐고만 있으면, 당장은 별것 아닌 작은 문제도 프로젝트 말미에 가면 ‘폭탄’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슈관리는 자연스럽게 일정으로도 연결된다. 사실 이슈와 일정은 두개의 머리를 가진 한 몸이라고 봐도 무리가 없다. 이슈 사항은 일정에 영향을 주고, 현실적이지 못하거나 제대로 지켜지지 못한 일정은 문제점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이 둘을 균형 있게 관리하는 것이 프로젝트 관리의 핵심이다.

그 외에도 PM이 챙겨야 할 사항들은 많다. 비록 프로젝트팀이라 해도 구성원 관리도 해야 하고, 프로젝트의 성격에 따라 인건비나 원가를 관리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괜히 PM을 미니 CEO라 부르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PM은 ‘모든 일을 다 하는 사람’이면서도 ‘그 어떤 일도 하지 않는 사람’처럼 보이는 경우가 많다. 이 또한 CEO와 비슷한 면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양한 실무경험이 무엇보다 중요

때문에 PM이 되려면 무엇보다 실무에서의 경험을 잘 쌓아야 한다. 모든 업무과정을 직접 경험해볼 수는 없겠지만, 전체 프로세스가 어떻게 진행되고 각 업무에서 무엇을 챙겨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의사소통 스킬이나 리더십도 물론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최근 3년차, 5년차 PM을 찾는 구인공고를 종종 보게 된다. 더러는 1년차 이상부터 지원 가능한 경우도 본 적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진심으로 잘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다. ‘라떼는’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최소 10년 이상은 실무자로서 여러 프로젝트를 경험한 후에 PM을 맡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프로젝트의 규모에 따라 필요한 경험치가 다르겠지만, 문제점의 본질을 파악해내고 올바른 의사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각 업무단계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나 역시 서비스 기획자로 일한 지 10여년이 지나서야 사내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의 PM을 맡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힘들어서 프로젝트 기간 내내 ‘이놈의 PM 다시는 하나 봐라’ 다짐을 했던 것이 기억난다.

프로젝트는 모두가 함께 일하는 것이기 때문에 누구 하나가 특출나게 일을 잘한다고 해서 성공을 하고, 누군가가 엄청난 실수를 한다 해서 실패하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그 대상이 PM이 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만큼 PM은 프로젝트에 있어 중요한 존재이다.

지금까지 8가지의 직업에 대해 살펴보았다. 고작 8가지 직업을 가지고 ‘슬기로운 직업생활’이라는 거창한 제목을 붙인 것이 다소 민망하다. 하지만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직업도 많고 나의 편리함 뒤에는 내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는 아주 사소한 부분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실행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 시간이 되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그리하여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는 익숙한 문장을 새삼 실감하고, 우리 모두 서로 알게 모르게 돕고 도우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기억하게 된다면 좋겠다.

슬기로운 직업생활

※이번 호를 끝으로 시리즈 연재를 마칩니다.

<장지희 작가·서비스 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