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도처유상수]개금장 김두호씨-화가의 꿈 접고 불상과 그릇에 금을 입히다

김두호씨는 요즘 불상에 금을 입히는 일 외에 다른 작업을 시도하고 있다. 그릇이나 촛대에 금을 입히고 옻을 덧칠해 새로운 표현기법을 만드는 일이다. 김씨는 “늘 당대에 맞는 표현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기계의 시대임에도 사람의 눈과 손으로 완성되는 일들이 있다. 옻으로 밑칠을 하고 그 위에 금을 붙이는 개금 작업은 과거는 물론 앞으로도 사람 손으로만 이루어질 일 중 하나이다. 김두호씨는 40년 동안 개금 일을 한 그 분야의 대가로 꼽힌다. 오랜 세월 한 길을 걸었던 탓에 그의 이름 앞엔 개금장이라는 명칭이 붙었다.

그는 자신의 일에 대해 “응용분야는 많다. 그릇에도 옻으로 칠을 입히고 금을 붙일 수 있고, 건물 내부 인테리어 작업도 금을 붙이는 경우가 있다. 그래도 불상에 개금을 가장 많이 한다”고 설명했다. 김씨의 일은 옻을 다루고 금을 만지는 직업이라 까다로운 작업이다. 공도 많이 들여야 하고 일하는 시간도 길다.

김두호씨의 공방은 경기도 끝 가평의 촌마을 깊숙한 곳에 있다. 사방이 포도밭이고 주변에는 농가와 축사들이 있다. 꼬불꼬불한 시골길을 따라 한참을 가야 김씨의 공방이 나타난다. 김두호씨는 13년 전 서울을 떠나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밀리고 밀려나 이곳까지 온 것이다. 처가 인척들이 사는 집성촌인데 아직도 이방인 취급을 받는다. 바깥출입할 일이 별로 없어 조용하고 집중하기에 좋다”고 한다. 40년 동안 한 길을 걷고 실력을 인정받았음에도 그의 세상은 아직 편치 않다.

개금은 불상에 옻칠을 하고 금을 붙이는 작업이다.

옻으로 밑칠하고 금 붙이는 작업 40년

그는 원래 화가가 꿈이었다. 먹고 사는 일에 부딪히자 외국인관광객 판매용 동양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업자의 주문에 따라 그림을 그려 가져다주면 적당히 손질을 해서 오래된 그림처럼 만들어 팔았다고 한다. 솜씨가 좋아 주문은 밀렸는데 주머니는 늘 비어 있었다. 예술은 배고프고 수금은 험난했다. 그림을 그려도 돈이 되지 않았다. “함께 그림 그리던 친구 하나가 탱화 그리는 화실에 먼저 들어갔다. 고생하지 말고 여기 와서 같이하자는 말에 끌려 화실에 들어가게 됐다. 그림 그리는 일이 직업이 된 셈이다”라고 말한다. 1978년부터 시작된 화공 일은 월급을 주는 대신 가혹한 노동을 강요했다. 아침 8시 출근에 밤 9시까지 야근을 할 정도로 일이 많았다. 휴일은 한 달에 딱 하루. 주말과 공휴일 없이 그리고 칠하기를 반복했다.

김두호씨는 당시 일을 “집이 구로동이었고 화실은 우이동에 있었다. 새벽같이 콩나물시루 같은 버스를 타고 출퇴근을 했는데, 하루에 다섯 시간도 못 잤다. 월급 10만원을 받았다. 친구 만날 짬도 없이 그림에 갇혀 살았다”고 회상했다. 2년을 그렇게 일하자 마음이 먼저 지쳐버렸다. 월급을 올려주겠다고 붙잡았지만 화실을 그만두었다.

김씨는 잠시 쉬었다 탱화 하청 일을 시작했다. 그림 그리는 가격은 크기대로 계산했다. 가로세로 한 자를 한 평으로 친다. 한 평에 3만원에 계약한 그림을 그에게 1만원에 하청을 줬다. 열심히 그리면 월급의 몇 배를 벌 수 있다는 셈에 일을 시작했다. 결국 제대로 품값을 받지 못했다. 신용 없는 업자를 만난 탓이다.

1984년 시작된 잠실 롯데월드 공사는 김두호씨의 삶에 큰 전기를 가져다주었다. 고급 객실 내부에 금을 입히는 공사를 했기 때문이다. 김씨가 금박기술자로 일하게 된 시발이 됐다. 그는 “금을 붙이는 인테리어 기술자가 많지 않아 큰 재미를 봤다. 금 붙이는 인테리어 유행도 잠깐 동안 반짝하고 말 것 같았다. 길게 할 수 있는 일을 찾다보니 지금 같은 불상 개금 일에 발을 딛게 됐다”고 한다.

꼼꼼한 성격에 세심한 손길은 개금 일에 안성맞춤이었다. 김씨는 개금에 대해 “옻칠은 일종의 접착제 역할을 한다. 옻칠을 통해 거친 면을 매끈하게 만들 수 있다. 한 번 칠해서 끝나지 않고 아홉 번까지 거듭 칠을 하고 말리기를 반복해야 금색도 잘 나오고 불상 전체가 오래도록 빛을 잃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옻이 다 마른 후 금을 붙이면 곱고 아름다우나 금박이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옻이 채 마르기 전에 작업을 하면 금은 잘 붙어 있지만 빛이 곱지 못했다. 그 중간을 찾는 중도의 도는 경험을 쌓아야만 터득할 수 있는 경지이다. 김씨는 그림을 그렸던 터라 불상의 섬세한 선을 이해할 수 있었고, 탱화를 그렸던지라 종교미술의 특색을 잘 표현할 수 있었다. 일을 맡으면 끝날 때까지 한눈 팔지 않고 옻과 금에 매달렸다. 덕분에 김씨의 손길을 거친 일은 평이 높았다.

그에게는 일을 가르쳐주는 스승이 따로 없었다. 직접 해보고 찾아다니면서 물어 배우고 어깨너머 눈으로 기술을 주워가며 일을 터득해야 했다. 김씨는 기술을 익힌 과정에 대해 “정말 연구 많이 했다. 지금 기술은 몸으로 배우고 익힌 것이다. 남과 같아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고 말한다.

새로운 양식을 만드는 것도 당대의 몫이다고 말한다.

법주사 금동미륵불 개금불사가 새 전기

김두호씨는 “입장에 따라 일을 보는 관점이 다르다. 일을 맡기는 쪽에서는 예산부터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일을 하는 처지에서는 어떻게 잘할까를 고심한다. 그러다보니 그 둘이 충돌할 때도 있다. 하지만 맡은 일을 어떻게 가격에 맞춰 대충 할 수 있겠는가” 하고 반문한다. 게다가 그가 금을 입히는 대상은 세상사람들의 마음을 달래는 신앙의 대상이기도 했다. 그러니 옻칠 하나에도 손이 더 갈 수밖에 없었다. 금박 하나도 흠이 날까 신경 써서 붙여 나갔다. 김씨에게 일보다 어려운 것은 세상과의 관계이고, 영업이고 수금이었다.

김씨의 솜씨가 소문이 나자 일은 밀려왔다. 공방을 크게 열고 함께 일하는 제자와 직원들도 늘었다. “40년 동안 내게 일을 배워 나간 제자가 200명이 넘는다. 2~3년 배우고 나간 이들은 대부분 실패하고 10년 가까이 배워나간 이는 대부분 자리를 잡았다. 일이란 것이 자기는 다 알 것 같아도 몸에 배고 스며들어야 자기 것이 된다. 결국 실력도 시간이 만드는 것이다”라는 것이 김씨의 생각이다.

우리나라 중장년층 대부분은 IMF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운명이 갈렸다. 누군가는 더 큰 성공을 하게 되고 어떤 이들은 세상의 냉혹함을 맛볼 수 있었다. 성공은 극소수의 몫이었고 대부분은 자기가 이룬 모든 것이 신기루가 되어 사라지는 시간을 겪었다. 김두호씨도 그때까지의 성공이 얼마나 무상한 것인지를 경험했다. 그는 “갑자기 일이 뚝 끊겼다. 돈도 받을 수 없었다. 일을 시킨 인건비며 재료비는 모두 빚이 됐다. 순식간에 빚더미에 올랐다”고 회상한다.

마침 미국 사찰에서 개금을 위해 초청한 것이 복잡한 인연들을 비켜가는 계기가 됐다. 김씨는 “몸 하나 달랑 미국으로 가서 작업을 했다. 미국에도 한국 사찰들이 수십 개 있었는데 개금을 하려고 해도 미국에서 기술자를 찾을 길이 없었다. 내가 가서 작업을 하니 소문을 듣고 여기저기서 연락이 왔다. 품삯도 여기보다 넉넉히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6개월짜리 비자로 미국에 가서 작업을 하고 한국으로 잠깐 돌아왔다가 다시 가기를 반복하며 2년을 보냈다. 그동안 업계에서는 그가 망해서 도망갔다는 소문이 무성했다고 한다. 김씨는 미국을 오가며 일한 덕에 빚을 다 갚을 수 있었다.

개금은 불상뿐 아니라 찻잔과 촛대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된다.

하지만 그 공백기 동안 일하던 거래처들이 다 떨어져나갔다. 이 바닥에서 그의 자리는 사라져버렸다. 김씨에게 새로운 전기가 된 것은 2000년에 시작된 법주사 금동미륵불 개금불사이다. 그의 손으로 높이 33m에 이르는 대규모 금동불에 금을 입히는 작업을 시작했다. 김씨는 “개금한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갔다. 사찰에서 요구하는 조건이 워낙 까다로웠다. 과학적으로 기술을 검증하라고 했는데 열 번 넘게 찾아가며 자료를 제시했다. 워낙 대규모 작업이라 경쟁률도 높았다. 그래도 꾸준히 기술을 입증해서 내 손으로 할 수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늘 당대에 맞는 표현이 있어야 한다”

금을 붙이는 일반적인 개금과 달리 법주사에서는 도금으로 금을 입히는 작업을 요구했다. 대규모 불상에 도금작업을 하는 예가 없었으므로 방법을 찾아내는 일은 그의 몫이었다. 김두호씨는 “지금 생각해보면 칠을 하거나 붙이는 등 다른 방식이 더 유리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요구사항이 너무 강해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도금을 하려면 바탕면이 균일해야 한다. 불상은 주물로 완성해서 표면이 거칠고 두께 또한 고르지가 못했다. 면을 메워가며 도금작업을 했는데 정말 쉽지 않았다”고 회상한다.

오직 그 작업에만 2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공방도 시골로 옮기고 일의 규모도 줄였다. “세월을 겪다보니 주변을 조심스럽게 정리하게 된다. 크게 벌이기보다는 혼자서라도 완성도 있게 일을 진행하려 한다. 생각도 많이 하고 새로운 기법도 개발하고 있다. 언제나 시대에 맞는 기술과 형식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 김씨의 입장이다.

김씨는 간혹 지난 시간을 돌아본다. “개금 일을 택한 것도 먹고 살 길을 찾느라 급급해서였다. 그때 그림을 계속 그렸다면 어땠을까 생각한다. 개금은 일이 적다. 아무래도 그림 그리는 일이 시장이 더 크다. 그때 화실을 나오지 않았다면 그 길로 성공하지 않았을까 생각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해도 시간은 돌이킬 수 없고 되돌아가기에 그는 너무 멀리 와 버렸다.

금을 붙인 후 옻칠을 해서 화려한 무늬를 나타내는 새로운 기법.

그래도 어려운 길을 걷겠다는 젊은이들에게 김두호씨가 해주는 이야기가 있다. “자기를 증명하는 길은 실력밖에 없다. 최고가 되면 어떤 어려움도 장애가 되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 최고가 되기 전에 세상에 무릎을 꿇고 가던 길을 돌아가는 것이 현실이다. 최고의 자리에 선다 해도 넉넉해진다는 보장 또한 없을 것이다. 그래도 길을 나선 이는 반드시 최고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 김씨의 주장이다.

김두호씨는 요즘 불상에 금을 입히는 일 외에 다른 작업을 시도하고 있다. 그릇이나 촛대에 금을 입히고 옻을 덧칠해 새로운 표현기법을 만드는 일이다. 김씨는 “늘 당대에 맞는 표현이 있어야 한다. 고려청자가 어느 순간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닐 것이다. 새롭게 시도하고 도전하지 않으면 옛것에 머물러 낡아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새롭게 만든 그의 작품들이 세상의 극찬을 받는 일은 생기지 않았다. 사람들은 여전히 낯익은 것을 찾고 익숙한 제품에 손을 내밀지만 김두호씨는 앞으로도 새로운 시도를 그치지 않겠다고 이야기한다.

인생도처유상수

개금은 특수한 작업이다. 일상에서는 찾거나 시도할 일이 결코 없는 분야이다. 낡은 불상의 옛 칠을 벗기고 새로 옻을 바르고 금을 붙이면 다시 백 년을 새롭게 지낼 수 있다. 우리가 보는 문화재나 불상들은 모두 그런 과정을 겪으며 생명을 유지해간다. 어렵지만 자기 길을 버리지 않는 김두호씨와 같은 사람을 통해 세상의 보이지 않는 구석들은 다시 태어나고 지속해가는 것이다.

<김천 자유기고가 mindtempl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