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도처유상수]성철스님 제자 원영스님 “하남 정심사에 와서 성철스님 만나보세요”

“노년에 성철 스님이 건강검진 때문에 서울에 들를 일이 있었는데 조계종 종정 신분으로 다른 거처에 머물기가 곤란하자 신도들이 거처를 마련하려고 뜻을 모았던 것이 정심사의 근거가 됐다”

경기도 하남에 검단산이 있고 그 산자락에 깃든 절 정심사에 독특한 건물이 들어섰다. 국내에서는 볼 수 없었던 독창적인 형태의 사리탑과 사리탑을 위한 전각이다. 현대사에 종교인으로 큰 자취를 남겼던 인물 성철 스님(1912~1993)의 사리탑이다. 성철 스님의 제자 원영 스님은 “여기 와서 성철 스님을 다시 만나보자”고 이야기한다.

산중의 수행승으로 아는 사람에게만 이름이 전하던 성철 스님이 세상에 드러난 것은 조계종 종정이 된 1981년, 그 유명한 ‘산은 산, 물은 물’이라는 법어 때문이었다. 짧은 말 한마디의 위력은 컸다. 세상은 다시 군부정권이 들어서고 혼란 속에 갈피를 잡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그 혼돈 속에 선사의 말 한마디가 미묘한 파문을 일으켰다.

원영 스님은 그 한 해 전 성철 스님을 찾아 백련암에서 출가했다. 서울대학교에서 생물학을 전공한 후, 이런 저런 세상사를 거친 뒤에 불쑥 새로운 길을 찾아나섰다고 한다. 왜 하필 백련암이었을까 하는 질문에 “아는 절이라곤 백련암밖에 없고, 스님이라고는 성철 스님밖에 몰랐다. 그래서 백련암을 찾아갔다”고 답했다.

성철 스님 사리 앞에 선 원영스님.

해인사 외에 정심사에도 성철 사리탑

성철 스님의 제자 중에 <성철스님 시봉이야기>로 대중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원택 스님은 원영 스님의 사형이다. 원택 스님이나 다른 이들에게 성철 스님은 꾸중 많이 했던 엄한 스님으로 알려졌다. 원영 스님은 “나는 야단맞은 적이 없다. 우선 경상도 사투리가 심한 성철 스님의 말을 잘 알아들었다. 말귀를 알아들었으니까 꾸중 들을 일이 별로 없었다”고 한다. 한 예로 성철 스님이 “수굼포 가져오라”고 하면 수굼포가 경상도 사투리로 삽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들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꾸중 들을 조건이 없었다고 자랑했다.

일반적인 이야기를 해도 그 속에 특별한 가르침이 있을 것이라는 지레짐작도 판단을 흐리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원영 스님은 종교적 가르침 또한 일상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보편적인 것이 대부분일 텐데, 특별한 것을 기대하는 심사도 제대로 된 이해를 가릴 수 있다는 점을 빗대어 설명했다. 세상의 혼돈 또한 말의 뜻이 제대로 소통되지 못하기 때문에 빚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성철 스님이 입적한 후 해인사에 사리탑이 세워졌다. 성철 스님 사리탑은 건립 당시부터 전통적 형태의 사리탑과는 많이 다른 모습으로 관심을 끌었다. 정심사에 세워진 사리탑전과 사리탑 또한 과거의 사리탑들과는 전혀 다른 형태다. 원영 스님은 “우선 사리탑을 전각 안에 배치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이제까지 세워진 모든 사리탑은 사리를 탑 안에 보존해서 볼 수 없었지만, 정심사 사리탑은 눈 밝은 이는 누구라도 사리를 친견할 수 있도록 고안했다. 전통은 늘 새롭게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사리탑은 삼층 구조로 맨 아래 성철 스님의 가르침을 새겼고, 중간에 동으로 조성한 좌상이 있다. 그리고 가장 상단에 사리를 두었다. 탑의 형태도 색다르지만 사리를 겉에서 볼 수 있도록 한 점도 특이하다. 전통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답습은 쉬우나 새로운 길을 만들기 위해서는 수많은 편견과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사리탑을 왜 그런 형태로 만들었냐고 묻자 원영 스님은 종교의 본질에 대한 답변을 했다. “종교라는 말의 문자적인 의미는 뛰어난 가르침을 뜻한다. 앞서 진리를 향해 나아갔던 누군가의 가르침을 새기고 의지한다는 의미일 텐데,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깊이 생각하고 따라가려는 이들이 종교인이라 생각한다. 종교적 조형물이 그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만드는 것이라면 성철 스님을 직접 만나볼 수 있도록 하자는 의미에서 이제껏 없던 사리탑을 조성했다”고 설명했다. 파격적이고 현대적인 모습이지만 전통적인 의미와 상징을 담았다는 것이다.

해인사 외에 정심사에 사리탑을 세운 이유는 정심사와 성철 스님의 인연 때문이라고 들려줬다. “노년에 성철 스님이 건강검진 때문에 서울에 들를 일이 있었는데 조계종 종정 신분으로 다른 거처에 머물기가 곤란하자 신도들이 거처를 마련하려고 뜻을 모았던 것이 정심사의 근거가 됐다”고 한다. 그래도 스님이 계신 곳인데 법당이 있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고 한다. 처음 서른 평 건물에 성철 스님이 머물 방 한 칸과 시자 방 하나가 들어선 2층집에서 지금은 큰법당과 사리탑전까지 갖춘 큰 절이 됐다. 처음 집이 들어선 지 30여년이 지난 후의 일이다.

사리탑을 전각 안에 세우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사리를 겉에서 볼 수 있도록 만들어

“성철 스님 입적 후에 사리가 수습됐다. 제자들이 모두 모여 의논할 때 정심사에도 사리탑을 세우겠다고 결정했다. 그런 후 사리탑을 세우기까지 오랜 세월이 흘렀다. 사람들에게 성철 스님의 가르침이 잊혀져가고 있지만, 다시 한 번 그 가르침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 원영 스님의 바람이다.

시간은 사람들에게 망각을 선물한다. 괴로웠던 기억도 잊게 하지만, 마음속에 간직하려 했던 보석도 잊어버릴 수 있다. 이미 세기가 바뀌어버린 지금 성철 스님의 가르침 중 무엇을 기억해야겠느냐고 물었다. 원영 스님은 “누구나 세상에서 가장 귀한 존재이다. 그러므로 귀한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 성철 스님의 가르침이다. 내가 귀하므로 다른 이를 귀하게 대할 수 있다면 세상의 고난도 옅어지지 않겠는가” 하고 답했다. 신은 인간을 사랑하고, 모든 생명 속에 고귀한 성질이 담겨 있다는 주장이 대부분 종교의 가르침이므로 그 본질을 기억하자는 것이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 남을 위해 기도합시다. 남 모르게 남을 도웁시다”라는 것이 성철 스님의 일관된 가르침이고, 종교 여부를 떠나 누구나 따를 수 있는 보편적이고 합리적인 교훈이라는 설명이다.

사찰과 같은 종교건물은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기도 하지만 동시에 닫혀 있기도 하다. 문이 없어 누구나 들어갈 수 있다지만 타종교인이나 일반인에겐 낯선 공간이다. “우리는 누구나 문제를 안고 살아간다.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면 다행이나 어떤 때는 풀 수 없는 숙제도 있지 않겠는가. 어떤 종교라도 어렵고 힘든 이들에게 열려 있다. 그냥 찾아와서 아무것도 하지 않더라도 힘든 마음을 잠시라도 내려놓고 쉴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원영 스님의 지론이다. 무엇인가를 해도 되고 찾아와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정심사는 몇 가지 독특한 행사들을 진행한다. “주말에는 절에 머물면서 명상과 참선, 기도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준비돼 있다. 그리고 성철 스님 생전부터 백련암에서 줄곧 하던 아비라 기도라는 출가기도를 1년에 네 차례 진행한다”고 이야기했다. 아비라 기도는 4박5일 동안 절에 와서 묵으며 기도하는 행사이므로 누구나 출가의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시간 동안 세상일을 완전히 잊고 오직 자신의 본모습을 찾을 수 있도록 해보자는 취지라고 했다.

성철 스님은 신도들에게 삼천배를 권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진리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는 스스로 만든 환상을 깨고 절실한 마음을 가져야 하며 그 방편으로 삼천배를 해보라고 했다. 지금도 백련암에는 삼천배를 하려는 이들이 모여든다. 원영 스님은 그것이 자기를 돌아보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삼천배가 어려운 것 같지만 절 한 번은 쉽게 할 수 있지 않겠나. 절을 한 번씩 하다 보면 천배가 되고, 천배를 하고 나면 삼천배가 된다. 진실로 무엇인가를 구하려 한다면 절실히 노력해야 할 것이고 종교의 영역에서는 기도가 그 방법이다. 삼천배도 하나하나 기도해가는 방법이다”라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세간에는 삼천배를 해야 성철 스님을 만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졌었다. 그 때문에 발길을 돌렸다는 이도 있었다. 어떤 이는 비난하는 경우도 있었다. 백련암에 기도하러 가는 이나 정심사에서 기도로 밤을 새는 이들에게 삼천배는 그다지 어렵지 않아 보였다. 왜 그리 간절한가 묻자 돌아오는 것은 대부분 “해보면 안다”는 대답이다. 진리를 향해 나아가는 특별한 문이 없다고 하지만, 종교에 입문하는 이와 그렇지 못한 이들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문턱이 있고 삼천배도 그 문턱 중에 하나일 것이다.

조계종 종정 성철스님의 서울행을 위해 마련했던 집은 정심사의 기초가 됐다.

아비라 기도, 1년에 네 차례 진행

이성이 발달하면 종교의 힘이 약해질 것이라는 주장도 있고, 종교를 파괴하려는 역사적인 시도도 무수히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종교는 힘이 세다. 힘이 셀뿐더러 세상에 물의를 일으키는 일도 잦아졌다. 최근에는 종교계의 적폐를 청산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종교인들이 스스로 생각하는 기준과 사회에서 요구하는 수준이 다를 때가 있다. 스님들은 육식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사회의 통념인데 실제 식당에 가보면 채식이 준비된 곳은 찾기 어렵다. 세상도 변해가고 종교도 변화하는 과정에서 견해의 충돌이 있다고 본다”는 것이 원영 스님의 생각이다. 세상이 요구하는 도덕적 수준에 맞추려는 노력도 있어야겠지만 종교인을 대하는 시선도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하여튼 세상이 종교를 걱정해야 하는 시절이 된 것은 슬픈 일이다.

성철 스님의 서울행을 돕기 위해 마련된 작은 처소에서 출발하여 사람들의 마음이 모인 지 30여년이 지났다. 곧 사리탑이 완성되면 한 세대의 역사는 마무리되는 셈이다. 원영 스님은 “3월 말이면 사리탑이 완성된다. 이제 집 짓는 일은 그만할 때가 됐다. 앞으로는 이 공간이 누구나 잠시 마음을 내려놓고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곳이 되기를 바란다. 스스로 해결하기 힘든 짐이 있다면 찾아와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정심사뿐 아니라 어느 교회나 성당이라도 본래의 목적은 세상의 고난 속에서 힘을 얻을 수 있는 장소라는 것이다. 사람은 어떤 이름을 갖더라도 본래 귀한 존재이듯, 종교는 어떤 옷을 입고 있더라도 세상을 위한 터전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종교적 가르침은 별과 같은 것이어서 아득히 먼 곳에서 길을 찾는 실마리를 준다. 세상이 밝을 때는 힘이 되지 못하나, 모두가 어둠 속에 파묻힐 때 그 빛은 길잡이로 드러난다. 그럼에도 오직 고개 들어 길을 찾는 이들에게만 빛을 보일 뿐이다. 원영 스님은 그의 스승 성철 스님의 가르침이 별과 같다고 말한다. 만약 지금도 살아계시다면 자신에게 “너 지금 뭐하나?” 하고 물어볼 것이라고 했다. 누구나 잠시라도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물어보았으면 좋겠다는 것이 원영 스님이 전해주는 성철 스님의 가르침이다.

인생도처유상수

‘인생도처유상수’는 이번호 연재를 끝으로 마무리됩니다.

<김천 자유기고가 mindtempl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