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도처유상수]조각도 제작자 김상수씨-꼭 필요한 물건, 누군가는 만들어야

동방이기제작소의 이기(利器)는 날카로운 연장을 이르는 말이다. 또한 사람에게 이로운 도구를 뜻하기도 한다. “내가 물건을 만드는 이유는 다른 사람들의 어려움을 해결해주기 위해서다. 이기라는 것이 그런 물건이다.”

‘목수는 연장을 탓하지 않는다’지만 연장을 몹시 가린다. 일에는 연장이 반몫을 하기 때문이다. 국내 내로라 하는 목수들이 묻지 않고 쓰는 조각도와 끌이 있다. 무형문화재이며 장인으로 불리는 고수들이 찾는 물건이니 그것을 만든 이 또한 경지를 이룬 사람임에 틀림없다. 동방이기제작소의 김상수 대표는 40년 가까이 뾰족한 날붙이들을 만들고 있다.

처음 시작은 무심코 뱉은 한마디 말 때문이었다. 공대에 진학하기 위해 재수하던 시절 그의 형은 대패를 만들어 파는 일을 하고 있었다. 대장간에서 대팻날을 사와 나무틀을 만들어 조립해 완제품을 생산하는 일이다. 날을 사오는 비용이 비쌌기 때문에 일하는 품보다 수입은 적었다. 그는 형에게 “우리가 대팻날을 직접 만들면 더 낫지 않겠어?”라고 물었다. 그의 운명을 바꾼 질문이 된 셈이다.

학생 김상수는 시험공부를 그만두고 대팻날 만드는 철공소에 취직해 공원으로 여섯 달을 일했다. 쉽게 배울 수 있는 기술이 아니라는 것만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쇠는 열처리가 가장 중요하다. 모든 연장은 열처리를 통해서 날이 무르지 않고 강한 연장으로 태어난다. 열처리 기술이야말로 업계 최고 비밀인 셈이다”라고 말했다. 결국 세 형제는 철공소에서 기술자를 불러와 사업을 시작했다. 서대문 인근에서 연장 만드는 공장을 시작했다. 형제가 한 가지 일에 매달리자 어머니는 집을 팔아 자금을 댔다. 가족의 생계와 미래가 달린 일이니 그야말로 대충할 수 없는 사업이 되고 말았다.

제품의 규격이 모두 달라 자동화가 불가능한 공정이 대부분이다. /김천

일본 조각도 대체한 천비조각도

그는 기계를 만지고 다루는 일이 핏속에 숨어 있었다고 말한다. 어린 시절 동무들과 시내 나들이를 가면 그는 꼭 뒤처져 따로 돌아왔다. 기계가 돌아가는 곳이면 발걸음을 멈추고 구경을 했다. 기다리던 친구들이 다른 곳으로 가버려도 그는 저물도록 공장 구경이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그러다가 쇠를 깎고 담금질하는 일을 하게 됐으니 운명을 좇은 것이라 여기게 됐다.

그의 회사 이름은 동방이기제작소지만 세상에는 천비조각도라는 상표이름으로 더 잘 알려졌다. “처음에는 대패와 목공용 끌을 만들었지만 수요와 판매의 한계가 있었다. 당시 가장 수요가 큰 연장이 조각도였는데 거의 일본제였다. 국산은 없던 시절이었다.” 1980년대 국내 목공예시장은 폭발적인 호황이 닥쳐왔다. 일본에서 집안에 모시는 불단 제작을 국내 업체에 맡기기 시작했다. 복잡하고 세심한 조각이 필요한 일인데 한국의 소목장과 조각가들의 솜씨가 인정받은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일본에 비해 값싼 노동력이 더할 나위 없는 매력이었다. 시중에는 조각도가 없어서 못팔 지경이 됐다.

임시방편으로 쇠를 갈아 만들어 쓰는 이도 있었지만, 다양한 조각도의 종류를 다 만들어 쓸 수는 없었다. 그 중에서 삼각도는 만들어 쓸 수도, 국산을 구할 수도 없었다.

“조각칼은 무른 쇠와 강한 쇠를 붙여서 만든다. 삼각도는 정확히 60도 각도를 이루어야 하는데 열처리를 거치면서 쇠가 갈라지거나 단단한 힘을 잃는다. 쉽게 만들 수 없었다.”

대패와 끌을 공급받던 업체들에서 조각도, 그 중에서 삼각도를 만들어 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쇠를 붙여 삼각도 모양을 만드는 일에는 성공했다. 그러나 열처리를 하면 쇠가 변했다. 무른 쪽과 강한 쪽이 서로 다르게 반응하는 것이다. 겨우 열처리에 성공하면 또 어느 한 쪽이 무뎌져 있었다.

“그 상태로 쓸 수는 있다. 갈아서 사용하면 되지만 새것을 샀는데 다시 연마한다는 것은 상품으로서 가치가 없다는 이야기다.”

삼각도를 시장에 내놓자 상황이 달라졌다. 더 이상 비싼 일본제 조각도를 쓸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일자칼이며 둥근칼도 만들어 달라는 요청이 빗발쳤다. 목수들 사이에서도 천비조각도의 소문이 퍼졌다. 조각도를 만드는 업체들도 곳곳에서 문을 열었다. 그러나 삼각도는 역시 만들 수 있는 곳을 찾기가 어려웠다.

동방이기제작소를 대표하는 조각도.

가죽칼·구두칼 시장도 흽쓸어

“조각도는 종류가 많다. 기본이 열 가지에서 열다섯 가지 남짓 되지만 거기서 또 크기가 조금씩 커진다. 그러다 보니 공장에서는 대략 300에서 600가지 정도를 만든다.” 조각도를 만드는 데 성공하자 김상수씨는 다른 칼에 눈을 돌렸다. 목조각 시장이 갑작스럽게 열렸다면 신발과 가죽가공 업체는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이는 업종이었다. 구두를 비롯한 가죽제품들은 국내 시장도 컸지만 늘 수출의 효자상품이 됐다. 가죽을 다루려면 반드시 가죽칼이 있어야 한다.

“자다가도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가 있다. 그러면 반드시 해봐야 한다. 생각하고 만들어 내는 데까지 시간은 많이 걸리지만 어찌됐든 마음먹은 것은 반드시 해내야 직성이 풀린다.”

가죽칼과 구두칼도 시장을 휩쓸었다. 그런데 한 가지 해결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 불량률이다.

“어느 날 포장하려고 둔 구두칼 다섯 개를 들어서 보니 그 중 세 개가 불량이었다. 다음 다섯 개를 또 들어보니 두 개가 불량이었다. 기술자를 불러 살펴보라고 했더니 불량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냥 넘길 수 있는 작은 흠이었을 수도 있고, 다른 이의 눈에는 띄지 않는 티끌을 보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기술자들을 모두 불러, 만들어 놓은 1000개의 제품을 폐기해버렸다. 화를 내는 이도 있었고 이를 악무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 사건이 하나의 계기가 됐다. 그때부터 불량률이 뚝 떨어진 것이다. 불량품이 거의 나오지 않자 그들이 만드는 제품에 대한 신뢰도는 더 높아졌다.

동방이기제작소 공장 기술자들은 대부분 10년 이상, 20년 넘게 일한 이들이다. 자기 기술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한 편이다. 넘길 수 있는 작은 흠조차 불량으로 지적받는 일은 기술자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는 일이었다.

“대부분 고향인 전북 군산의 같은 동네 사람들이 기술자로 일하고 있다. 때문에 서로에 대한 믿음도 그만큼 깊다”는 것이 김상수 대표의 생각이다. 서로가 자기 기술이 더 낫다는 분발심도 있고, 경쟁하는 분위기도 기술력을 높이는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IMF 구제금융 사태가 닥치고 국내 조각업체들이 중국으로 근거지를 옮기기 시작할 무렵 조금씩 위기가 닥쳤다. 그 무렵 형들이 사업에서 손을 떼고 회사는 막내인 김상수 대표가 책임져야 했다. 경제위기의 거대한 파도는 그의 회사를 살짝 비켜 지나갔다. 공장은 중국으로 옮겨갔지만 연장은 국내의 것을 가져다 써야 했기 때문이다. 중국산 공구의 수준이 아직 높지 않아 국산 조각칼이 아니면 일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국내의 일감은 서서히 줄어들고 시장의 수요도 변하고 있었다.

7∼8년 전 회사는 휘청거렸다. 일부 토목업을 제외하고 산업 전반이 침체의 동굴로 걸어 들어갔고, 그의 회사와 같이 작은 규모의 공장은 줄줄이 문을 닫고 있었다.

“구조조정의 여파가 닥쳤다. 당장 회사 문을 닫지 않으려면 사람을 잘라야 했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모두 함께 기술을 세우고 회사를 일으킨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임금을 깎는 대신 노동시간을 줄이는 것으로 합의했다. 목요일까지 주 4일만 근무했다. 다행히 회사 문을 닫는 일은 피할 수 있었다. 다시 회복하기까지 어려운 시간을 지내야 했다.

필요한 기계를 직접 만들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단지 몇 사람을 위한 공구 만들기도

동방이기제작소의 이기(利器)는 날카로운 연장을 이르는 말이다. 또한 사람에게 이로운 도구라는 뜻이기도 한다. 이기 중에 칼은 양날을 가진 도구다. 때로는 흉기가 돼 해로운 도구가 될 수 있다.

천비 제품들은 대부분 일반 소비자와는 거리가 먼 물건들이다. 특수한 직업이나 일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유용하지만 일반 가정에서 쓸 일은 그다지 많지 않다. 그러니 좁은 국내 시장에서 성과를 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내가 물건을 만드는 이유는 다른 사람들의 어려움을 해결해주기 위해서다. 이기라는 것이 그런 물건이다”라고 그는 말한다. 때문에 더러는 돈이 되지 않고 성가신 일이라도, 청을 들어 만드는 제품도 있다. 대형 조각상을 만들 때 쓰는 조각도는 몇몇 조각가에겐 절실한 도구지만 시장을 생각하면 만들지 말아야 할 물건이다. 그는 “친구가 어렵게 조각하는 것을 보고 만들어 줬다”고 한다. 결국 다른 이들의 요청으로 몇 사람만을 위한 공구를 만들어줬다. 돈 안 되는 일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한 일이기 때문에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그러다보니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어 신제품을 만들 수도 있었다고 한다. 조각과 서각을 하는 그의 아내를 위해 초보자도 쉽게 쓸 수 있는 조각도를 만들었다. 친구들과 함께 경기 파주 봉일천에서 얼음낚시를 하기 위해 얼음 뚫는 파쇄기를 만들었다. “한 300개 팔았는데 지구 온난화 탓인지 하천에 얼음이 안 얼고 있다. 게다가 너무 튼튼해서 대를 이어 쓸 수 있어 한 번 팔면 더 이상 팔 수가 없다고 한다.” 얼음 아래 수초를 제거할 수 있는 수초제거기도 만들었다. 기발하지만 시장은 좁은 물건들이다. 그래도 그는 필요한 것은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 팔리는 물건을 만들던 그가 요즘 관심을 가진 것은 작두와 휴대용 낫. 낫은 날 부분을 분리해 휴대하거나 교체할 수 있고 예전 제품과 달리 양방향으로 날이 있어서 밀거나 쳐내도 자를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제껏 시장에 나와 있는 제품들보다 견고하고 가벼우며 휴대하기 편한 물건이다. 그는 등산이나 캠핑에 필수품이라고 강조한다. 작두는 특수 베어링을 사용해 힘을 가해도 날이 밀리지 않는다. 제품에 맞는 특허도 출원했다. 낫은 벌써부터 소문을 들은 업자들에게 팔려나가기 시작했다.

인생도처유상수

“일하는 데 기술보다 더 중요한 것이 정신이다. 어떤 벽도 넘을 수 있다는 의지를 세우고 결코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그는 전쟁통에 태어나 어려움이란 어려움은 다 겪으며 배운 것이라고 강조했다. 처음 대하는 일과 사물을 찬찬히 살펴보면 해결의 실마리는 분명히 있으니 그것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첫걸음을 내딛어 시작하고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부딪혀 극복하지 않으면 결코 얻을 수 없는 고수의 길은 결국 꺾이지 않는 마음에서부터 시작된다고 그는 말한다.

<김천 자유기고가 mindtempl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