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규의 미스터리 산책]추리소설의 트릭·반전도 표절의 대상

추리소설가 황세연이 1998년 발표한 단편 <떠도는 시체>는 누군가의 시신이 본의(?) 아니게 떠돌아다닌다는 블랙코미디 작품이다. 그런데 일본 작가 시라누이 교스케의 <온천 잠입>은 역시 시신이 본의 아니게 떠돌아다닌다는 흔치 않은 플롯의 블랙코미디라는 점에서 대단히 흡사하다고 볼 수밖에 없는 작품이다.

최근 유명 작가의 표절 사건으로 떠들썩하다. 특별한 문학적 지식이 없는 사람이라도 충분히 판단이 가능한 만큼 표절 여부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의견을 덧붙일 필요는 없겠지만, 어쨌든 굉장히 뒷맛이 씁쓸한 일임에는 틀림없다.

표절 의혹 사례를 열거하자면 문학뿐만 아니라 영화, 드라마, 만화, 그림, 학술논문 등 이른바 ‘창작물’로 분류되는 모든 것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추리소설이라고 해서 표절의 청정지역은 아니지만, 어떤 면에서는 엄격하고 다른 면으로는 융통성이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추리소설은 대개 ‘범죄 발생→탐정의 추리→사건 해결’이라는 일반적 공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구성 자체는 비슷할 수밖에 없지만, 이것을 표절로 여기지는 않는다. 반면 반드시 필요한 것이 트릭이나 반전의 독창성인데, 이 독창성이 남의 작품과 비슷하다면 의심을 받게 된다. 또한 독창성 역시 누구나 알 만큼 유명해지면 표절의 의심에서 벗어나는 대신 진부하다는 혹평을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롭게 쓰려는 시도는 늘 있다. 밀실 범죄나 알리바이 트릭은 너무 많이 나왔지만 추리소설가라면 도전해보고 싶은 소재이다.

표절은 요즘에만 있는 일은 아니어서, 1930년대 동아일보에서는 <문단탐조등(文壇探照燈)>이라는 투고 코너를 마련할 정도였다.

김내성 <무마>, 위기섭 <어떤 탐정소설가의 봉변>

1930년대 외국 소설을 조선 무대로 번안
“최근 여러 신문 학예면의 확장과 두셋 신잡지의 창간으로 학계와 문단이 일견 활기를 정(呈)하고 있는 듯하나 일면 원고 수요의 격증을 기화로 문명(文名)을 얻기에 급급하여 타인의 작(作)을 표절 혹은 초역(抄譯)하여 가지고 염연(恬然)히 자기의 창작인 체 발표하는 후안무치한 도배(徒輩)가 도량(跳梁)함은 다만 빈축만 할 일이 아니오, 마땅히 준엄하게 응징하여야 할 일입니다…(중략)…문단 양심의 위미(萎靡)를 우려하는 인사는 소호(小毫)도 가차 없이 표절, 오역 또는 사실 상위(相違)를 적발하여 주십시오.”(동아일보 1930년 2월 21일)

일제강점기 시절에는 추리소설에서 몇 개의 표절작품을 발견할 수 있다. 가령 최유범이 <별건곤>에 발표한 <약혼녀의 악마성(惡魔性)>(1934)은 일본의 유명 작가 에도가와 란포의 <악귀>(1931)를 번안한 것이며, 윤백남이 <야담>에 발표한 <흑묘이변(黑猫異變)>(1934)은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에드거 앨런 포의 <검은 고양이>를 당시의 조선을 무대로 번안한 작품이다. 모두 외국 작품을 번안한 것으로, 이들이 표절에 대해 현대인들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한국전쟁이 끝난 1950년대 중반 이후, 한국의 대중잡지에는 많은 추리소설이 실렸다. 그런데 ‘원고 수요의 급증’ 탓이었는지, 표절이라고 볼 만한 작품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는 일본 작가 유키 쇼지의 스파이소설 <고메스의 이름은 고메스>를 <이중간첩>이라는 제목으로 번안(월남전이 배경이라 일본 이름을 모두 한국 이름으로 바꾸었다)하는 등 외국 작품임을 숨기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위기섭(魏奇涉)의 단편 <어떤 탐정소설가의 봉변>(1960)처럼 국내 작가의 작품을 표절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 작품은 김내성의 <무마(霧魔)>(1939) 내용을 좀 더 괴기스러운 결말로 바꾸었을 뿐 플롯을 그대로 쓰다시피 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삽화마저 흡사하게 보인다.

외국이라고 표절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일본의 중견 추리소설가 시마다 소지의 데뷔작 <점성술 살인사건>의 트릭을 만화 <소년탐정 김전일>에서 허락 없이 사용한 것은 꽤 유명한 사건이다. 자신이 고안한 트릭에 대해 대단히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던 시마다 소지는 소송 등 법적인 문제까지 제기하지는 않았지만 유감을 표명했다. 결국 <김전일>시리즈의 이 에피소드는 원작만화로는 볼 수 있지만 TV 드라마로 제작된 것은 비디오 등에서 모두 삭제되고 말았다. 이 사례는 표절이라기보다 저작권 문제에 더 가까운 사례였다. 일본에서 <점성술 살인사건>의 트릭은 독창성으로 잘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만화나 드라마 제작 때 시마다 소지의 허락을 당연히 받은 것으로 알고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이 별로 없었다는, 믿기 어려운 소문도 있다.

애거서 크리스티 <애크로이드 살인사건>, 아우구스트 두제 <스미르노 박사의 일기>,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의 아이디어를 제공한 마운트배튼 백작.

표절을 소재로 삼은 뛰어난 작품도
위에 언급했던 작품들은 표절이 확실하다고 볼 수 있는 경우이지만, 때로는 우연으로 인해 어쩌다 비슷한 작품이 나오는 경우도 있다. 추리소설의 여왕 애거서 크리스티의 <애크로이드 살인사건>(1926)은 예상을 뒤엎는 트릭으로 작가로서의 명성을 한층 높여준 작품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보다 9년 전 스웨덴 작가 아우구스트 두제가 <스미르노 박사의 일기>(1917)를 통해 비슷한 트릭을 사용한 것이었다. 그런데 크리스티는 이 작품이 다른 사람-형부와 영국 정치가 루이스 마운트배튼 백작-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되었음을 자서전을 통해 밝히고 있다. 두제의 작품을 크리스티 본인은 못 읽었더라도 혹시 그 두 사람, 혹은 그들의 친지 중 누군가가 읽고 힌트를 주었을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2000년대 들어와서는 일본의 작품이 우리나라의 작품과 비슷한 플롯으로 전개되는 경우도 발견할 수 있었다. 추리소설가 황세연이 1998년 발표한 단편 <떠도는 시체>(EBS 제작 드라마를 유튜브에서 볼 수 있다)는 제목 그대로 누군가의 시신이 본의(?) 아니게 떠돌아다닌다는 블랙코미디 작품이다. 그런데 일본 작가 시라누이 교스케의 <온천 잠입>은 배경이 다르긴 해도 역시 시신이 본의 아니게 떠돌아다닌다는 흔치 않은 플롯의 블랙코미디라는 점에서 대단히 흡사하다고 볼 수밖에 없는 작품이다. 이 역시 누군가가 오해를 받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시라누이 교스케가 2003년 신인상을 받으며 데뷔했다는 점에서 한국 작가가 일본 작품을 표절했다는 의심에서는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우연하게 비슷한 작품이 나올 수도 있고, 남의 작품을 베낄 수도 있고, 오래 전에 읽거나 전해 들었던 이야기가 잠재의식 속에서 고의성 없이 자신의 창작으로 착각되는 경우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장 자크 피슈테르의 <편집된 죽음>은 이러한 표절을 소재로 삼은 뛰어난 작품이다).

박광규의 미스터리 산책

표절 방지는 기본적으로 작가의 양심에 맡길 수밖에 없다. 미국 추리소설의 거장 엘러리 퀸을 본받을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는 서구 전래동요 <마더 구즈> 중에서 ‘10명의 인디언’을 제재로 삼아 <인디언 클럽 미스터리>라는 제목의 작품을 구상하고 있었다. 그런데 애거서 크리스티가 같은 소재가 나오는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발표하자 내용과는 상관없이 미련 없이 중단하고 말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역시 ‘거장’이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은 행보이다.

<박광규 추리소설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