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수의 도시 이미지 읽기]몸을 콕·콕 찌르는 도시의 암호문들

큰 도시의 화려한 거리를 걷다 보면 예리한 촉각성을 자주 느끼게 된다. 거대 기업의 장밋빛 약속들, 사람보다 훨씬 크게 나붙어 있는 매력적인 글래머들, 말이 없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무슨 말인가를 강력하게 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케 하는 상품들. 서서히 지방선거 열기가 달아오르면서 거리를 채우는 ‘예비’ 입후보자들의 교언(巧言)과 영색(令色). 진짜 독해가 불가능한 것들이다.

청와대 옆에 국군기무사령부가 있었다. 1948년 5월 27일 육군 정보국 정보처 내에 설립된 특별조사과를 시작으로 하여 군인이 국가를 완전히 장악했던 20세기 후반기 내내 한국 사회의 진정한 ‘음지’였다.

청와대라는 최고권력의 바로 곁에서 정보국 방첩대, 육본 직할 특무부대, 방첩부대 같은 이름을 거쳐 그 유명한 보안사령부가 되었다가 1991년 1월에 국군기무사령부로 개칭하였고 2008년 11월에 경기도 과천으로 이전하였다.

그 자리에 공교롭게도 과천에 있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서울관이 건립되어 지난해 11월 13일에 개관하였다.

그 서울관을 세 번이나 가보았다. 지난해 늦가을 개관 직후에 갔었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주마간산이 되었고, 한겨울에 다시 가서 천천히 완상하였고, 개학 하기 전에 아이들과 한 번 더 가서 몇몇 인상 깊은 작품 앞에서만 머물렀다.

지난해 11월 국립현대미술관에 전시된 장영혜 중공업의 작품. | 정윤수

천, 천, 히 돌아보게 되면서 그제야 이 건물이 옛 기무사, 그러니까 ‘보안사’라는 이름으로 더 강력했던 건물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영상 설치미술가 ‘장영혜 중공업’의 작품을 보기 위해서 세 번이나 지하 계단을 따라 내려갔는데, 원래 이 길고 깊은 계단이 어떤 용도로 쓰이는 지하실로 이어지는 길이었는지 알 수 없었으나, 약간 추웠다.

‘장영혜 중공업’은 독해가 불가능한 문자들로 거대한 전시공간을 가득 채웠다. 쉬지 않고 흐르는 영상은 최소한의 내러티브 뼈대조차 없는 문자들과 때로 충돌하거나 때로 교접하면서 온통 암호로 가득찬 공간을 만들어냈다. 음향도 기이했다.

전시장 밖 이미지들이 훨씬 난해해
적어도 방법의 차원에서, 장영혜 중공업의 작업은 1970년대 이래 격렬하게 전개된 제니 홀저, 바바라 크루거 같은 작가들과 잇닿아 있다. 1977년, 제니 홀저는 표면적으로는 무슨 뜻인지 너무나 명확한 문자나 짧은 문장을 뉴욕 소호 거리의 벽에 부착하여 충격을 주었다.

‘남자는 엄마가 되는 것이 어떤 건지 알 수 없다’(A man can’t know what it’s like to be a mother) 같은 문장 또는 ‘자유는 사치이지 필수가 아니다’(Freedom is a luxury not a necessary)와 같이 문장은 페미니즘 정치 미학의 어떤 범주까지 뛰어넘는 것이었다.

90년대 이후에 제니 홀저는 파리, 암스테르담, 베네치아 같은 대도시의 거대한 건물 외벽에 거대한 문자와 문장을 영상으로 투사하는 ‘제논 프로젝션’ 작업을 했다.

바바라 크루거 역시 고급 패션지에서 거칠게 찢어낸 듯한 사진에 ‘당신은 당신 자신이 아니다’(You Are Not Yourself), ‘당신의 몸이 전쟁터다’(Your Body Is A Battleground) 같은 전투 상황 보고서 같은 문장으로 절규했다.

그런 맥락이 다채로운 수로를 거쳐 점선으로 이어진 끝에 ‘장영혜 중공업’은 거대한 영상과 문자와 음향(주로 아트 블래키 식의 하드밥 재즈)이 충돌하는 작업을 하였고, 이는 인터넷이라는 세계와 크로스하여 지금 당장이라도 그 작업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서울 세종로 네거리 버스정류장의 광고판. | 정윤수

그 뜻을 알 수 없는 정치인 발언들
그런데, 그런 작업들의 예술적 평가나 그 문화적 맥락과 무관하게, 나는 그런 작업들을 보고 나서 거리로 나서면 거리의 온갖 이미지들이 훨씬 난해하고 복잡하고, 도저히 해독 불가능한 암호문의 행렬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그 암호문들은 내 몸을 콕, 콕, 찌른다. 언젠가 이 지면에서 잠깐 인용한, 발터 벤야민의 ‘시각적 촉각성’ 말이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고스란히 재현(하려고 욕망)한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앞부분처럼 영화는 우리의 시각을 통해 전율할 듯한 촉각적 체험을 요구한다.

<아바타> 이후 3D 영화들, 그리고 주인공이 얻어맞기라도 하면 최첨단 의자가 관객의 등을 안마하듯이 두들기기도 하는 4D 영화들은 아예 시각이 문턱도 그냥 건너뛰려고 한다.

발터 벤야민은 19세기 파리의 화려한 아케이드, 특히 늘어선 가게들이 저마다 내건 간판을 통해 ‘시각적 촉각성’의 단초를 얻었다. 서로 아무런 연관도 없는 간판의 이미지들이 거리를 가득 채우고, 대도시 파리의 시민들은 그 아래로 소요하는 풍경에서 그는 현대를 발견했다. “내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라고 벤야민은 썼다. 현란한 간판들, 문자들, 이미지들이 사람의 내면을 콕, 콕 찌르기 때문이다.

큰 도시의 화려한 거리를 걷다 보면 이런 예리한 촉각성을 자주 느끼게 된다. 장밋빛 미래를 약속하는 거대 기업의 약속들, 호연지기 넘치는 정치인들의 발언들, 실제 사람보다 훨씬 크게 나붙어 있는 매력적인 글래머들, 아무런 말이 없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무슨 말인가를 강력하게 하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만드는 상품들. 이제 서서히 지방선거 열기가 달아오르면서 거리는 또다시 ‘예비’ 입후보자들의 거대한 얼굴로 가득 채워지고 있다.

그들은 저마다 교언(巧言)의 약속을 던지지만, 나는 정말로 그 말의 뜻을 알 수가 없다. 아니, 저렇게 영색(令色)으로 제 얼굴을 내건 사람들은 자기가 하는 말의 참뜻을 제대로 알고나 있는지, 의심스럽다.

오히려 제니 홀저와 바바라 크루거와 ‘장영혜 중공업’의 메시지는 독해가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이미 예술사의 교과서에 등재되고 있는 작품들이니 친절한 정보도 많고 다양한 해석도 많다.

참조하며 읽으면 이 난해한 작품들의 맥락들을 살필 수 있다. 진짜 독해가 불가능한 것은 이들 작가의 재현된 이미지가 아니라 실제 거리의 이미지들이다.

정윤수의 도시 이미지 읽기

언젠가 세종로 네거리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버스 정류장에는, 아마도 아름다운, 어느 모델 얼굴이 큼직하게 붙어 있었다. 그런데 그것은 뒤집혀 있었다.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이미지 앞에서 한참 서 있었다. 도시는 암호문으로 가득 차 있다.

<정윤수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