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수의 도시 이미지 읽기]그럼에도 쓸쓸해 보이는 대학로

바람은 쌀쌀하지만 오가는 발자국 소리는 벌써 봄의 교향악을 닮았다. 수많은 공연장이 있어서 연극, 영화, 음악, 뮤지컬, 개그 콘서트 등이 활발하게 펼쳐진다. 그런데 쓸쓸해 보인다. 쌀쌀한 꽃샘바람 때문인지, 화려한 네온사인이 펼쳐진 대학로 일대의 풍경은 그 어떤 ‘과잉’이 ‘결핍’의 다른 말처럼 느껴져서 쓸쓸해 보인다.

나는 이 거리를 알고 있다. 내 몸에 이 거리가 저장되어 있다. 나는 경신중학교를 다녔고, 그래서 이 거리의 시작 지점이 되는 혜화동 로터리를 오랫동안 헤맸으며,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고교를 다녔기 때문에 또 이 거리를 기억하고 있다. 고교 2학년 가을에, 1984년 11월 7일에 이 거리가 지금의 이름을 실질적인 의미로 갖게 되었다.

‘대학로’가 그것이다. 이화동 사거리에서부터 혜화동 로터리까지 이어지는 약 1.5㎞의 거리다. 대학로라는 이름을 가진 거리는 이곳 말고도 부산, 대구, 울산, 안성, 용인, 강릉, 동해, 삼척, 청주, 공주, 금산, 전주, 익산, 무안, 경산, 안동, 진주 등 모두 27개 지역에 있다. 대전에는 두 군데나 있다.

그래도 대학로 하면 우선 서울 혜화동 일대가 먼저 떠오른다. 원래 실개천이 있었다. 20세기 중엽에 이 일대를 캠퍼스로 삼았던 서울대 학생들이 ‘세느강’이라고 불렀다. 1984년 가을에 이 거리를 처음 열었을 때, 주말에는 차가 다니지 않도록 했으나 이제는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면 그런 일은 없다.

2월 24일 저녁시간 서울 대학로의 담벼락. | 정윤수

내 몸속에 저장된 수많은 ‘그 곳’
‘대학로’라는, 지금은 익숙하지만 그 당시에는 어색하고 낯설었던, 그러나 세월이 그 어색함을 지워버린 이 거리의 구석구석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혜화동 로터리에서 창경궁 쪽으로 가다 보면 육교가 하나 있었다.

그 육교의 교각 아래쪽에 ‘바로크 레코드’가 있었다. 중학교 때부터 자주 갔던 곳이다. 고교 때는 이 레코드 가게가 마로니에 공원 맞은편으로 옮기게 되어 또 그곳으로 자주 다녔는데, 그 후 한 번 더 옆으로 옮겼다가, 90년대 중반에 재즈 전문 라이브 공연장 ‘천년동안도’로 완전히 탈바꿈하면서 레코드 가게는 사라졌다.

그 무렵부터 장안의 모든 레코드 가게들이 폐업을 하던 때였다. 그 가게들을 따라 움직이면서 문예회관 대극장, 바탕골소극장, 샘터파랑새극장, 학전, 코미디아트홀 등을 다녔고, 지금은 사라진 ‘달때의 춤’, ‘오감도’ 같은 공간도 이른 나이에 자주 다녔다.

1985년에는 큰 시위가 벌어졌고, 오감도가 있던 건물 위쪽에서 누군가 구호를 몇 마디 외치다가 옥상까지 올라온 체포 전문 경찰대에 붙잡혀 얻어맞던 장면을 나는 반대편 흥사단 건물 앞에서 멍하니 올려다 본 적도 있다. 그 옆의 학림다방? 당연히, 내 몸속에 저장되어 있다.

그 거리를 2월의 쌀쌀한 바람이 부는 밤에 걸어보았다. 바람은 쌀쌀하지만 오가는 발자국 소리는 벌써 봄의 교향악을 닮았다. 수많은 공연장이 있어서 연극, 영화, 음악, 뮤지컬, 개그 콘서트 등이 활발하게 펼쳐진다.

그럼에도 쓸쓸해 보인다. 쌀쌀한 꽃샘바람 때문인지, 화려한 네온사인이 펼쳐진 대학로 일대의 풍경은 그 어떤 ‘과잉’이 ‘결핍’의 다른 말처럼 느껴져서 쓸쓸해 보인다.

서울 대학로 학림다방 앞에 남녀 커플이 서 있다. | 정윤수

최근 들어 속물과 잉여라는 말이 자주 들리고 있다. 백욱인이 엮은 <속물과 잉여>가 그 증거이거니와 대략 40대 전후 세대가 ‘중산층 문화’의 자산을 넓혀가고 있고, 그 아랫세대가 되는 20대 젊은 층은 사회·경제적으로는 ‘잉여’가 되고 문화적으로는 ‘덕후’가 되고 있다는 게 대략의 스케치다.

심보선과 김홍중은 이를 좀 더 정밀하게 살폈다. 함께 쓴 글 ‘87년 이후 스노비즘의 계보학’(문학동네 2008년 봄)에서 그들은 우리 사회의 불균등한 분배는 “평등한 존엄의 원칙”을 허상으로 만들어버렸고 이로써 “필연적으로 경쟁심리 및 인정 투쟁”이 발생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속물’이 탄생했다고 분석한다.

“강박적으로 문화적 기호들을 축적하고, 이 과정에 지나친, 엄밀하게 말하자면 과시적인 엄숙함과 의미를 부여”하는 경향 말이다. 대학로, 홍대앞, 청담동 등을 순회하여 보면 “인문학적 교양과 속류지식, 예술과 대중문화를 넘나들며 ‘자기다운’ 라이프스타일의 자양분을 흡수”하고자 하는 경향이 밤 풍경을 지배한다.

이런 양상은 가히 김수영이 1967년에 쓴 “이 거룩한 속물들”의 한 장면, 즉 “유명이 유명을 먹고, 더 유명한 것이 덜 유명한 것을 먹고, 덜 유명한 것이 더 유명한 것을 잡아누르려고 기를 쓴다. 이쯤 되면 지옥이다. 이 지옥 속의 레슬러들이 속물이다.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다 속물”이 되는 상황이다.

전복 가능성을 허락하지 않는 속물성
그러나 이 사회는 속물성이 한 줌이라도 내장하고 있는 문화적 전복의 가능성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 문화 소비의 과잉된 즙에서 새로운 삶에 대한 열망을 꿈꿀 수 있을까. 아직은 희미하다. 자신의 감수성을 치장하고 헛헛한 정서를 위로하는 정도에 그친다. 문화가 내장한 전복의 가능성이 사회적 힘으로 확연히 드러나는 일은, 아직 무망해 보인다.

젊은 세대 역시 마찬가지다. 청춘의 열정은 경쟁사회라는 환전소에서 가혹한 노동으로 손쉽게 교환된다. 청춘의 문제에 책임도 있고 권한도 있고 자원도 갖고 있는 정부와 기업과 기관들은 하나같이 ‘열정’을 노래한다.

편의점이나 커피전문점의 알바에서 온갖 형태의 비정규직 상황들, 그러니까 IT산업, 연예산업, 서비스산업, 프로게이머, 시나리오 작가, 소프트웨어 개발자, NGO 활동가 등에 이르기까지 ‘열정’, ‘꿈’, ‘미래 가치’, ‘상상력’ 등이 흘러넘치는데, 실은 젊은이들의 이 열정을 저렴한 값으로 구매하고자 하는 달콤한 마케팅 용어에 불과하다.

결코 청춘들의 ‘만렙의 잉여력’을 허락하지 않는다. 문화산업이 그어놓은 경계를 뛰어넘는, 전복의 가능성이 불투명해 보인다.

정윤수의 도시 이미지 읽기

그래서일까, 대학로의 밤 풍경은 더없이 쌀쌀하다. 꼭 꽃샘추위 때문만은 아닐 거라는 생각을 일부러 떨쳐버리고자 나는 네온사인이 작렬하는 대학로 한복판으로 오히려 더 빠른 걸음으로 스며들었다.

<정윤수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