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권자는 어떻게 진영을 배신하는가

진영싸움으로 가면 승부 뻔해… 지지 바꾸는 유권자 최대한 끌어모아야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깃들어야 날개를 편다.” 헤겔의 <법철학 서문>에 나오는 유명한 문구다. ‘미네르바의 부엉이’, 즉 철학 또는 이성은 미래의 결과를 예측하는 도구가 아니다. 이미 이뤄진 역사 속에서 그 의미가 분명해진다는 뜻이다. 대한민국은 4년마다 총선을, 5년마다 대선을 치른다. 선거 결과 보도를 보면 거의 대부분 예측은 빗나간다. 2012년 대선 전에는 “투표율이 높으면 야권 문재인 후보가 유리할 것”이라는 진단에 대부분 동의했다. 투표율은 75.8%로 높았다. 결과는 예상에서 빗나갔다. 그래서 “정치는 살아있는 생물”이라는 오랜 경구가 다시 회자됐다.

“현재까지 보고 들은 정보를 종합하면, 2017년 대선은 여권이 내세운 반기문과 야권의 박원순 후보의 싸움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6대 4로 반기문이 이긴다.” 고성국 정치평론가(정치학 박사)는 기자와의 인터뷰(<주간경향> 1141호)에서 이렇게 예측했다. 앞의 헤겔의 경구와 다르게 고 박사는 정치평론의 핵심은 예측이라고 주장했다. 예측 결과가 맞았느냐 틀렸느냐가 정치평론의 평가기준이 돼야 한다는 것이 고 박사의 지론이다. 19대 대선은 2017년 12월 20일 수요일에 치러진다. 햇수로만 만 2년이 넘게 남았다. 현재 시점에서 대선 결과에 대한 ‘예측’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변수가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측이 가능한 부분은 있다. 일단 유권자 수. 1998년 12월 21일생을 포함해 만 19세 이상의 대한민국 국민은 선거권을 갖고 있다. 2015년 현재, 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청소년도 유권자가 된다. 18대 대선에 비하면 1994년 12월 20일생부터 1998년생까지 약 340만명이 새로 유권자가 된다. 이 숫자는 거의 고정적이다. 반면 빠지는 유권자들이 있다. 사망자들이다. 이들의 절대다수는 고연령 층이다. 사망자의 80%가 60대 이상이며, 10% 정도가 50대다. 아직 도래하지 않은 일이지만, 사망자 수는 통계학적 추론이 가능하다. 약 170만명이다.

지난 대선 당시 야권은 2030세대의 투표참여율을 높이는 ‘세대동원전략’을 썼는데, 대선 결과는 그게 오류였고 5060대 장년층의 표심이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이 드러났다는 평가가 나왔었다. 한국 사회의 인구구성 변화와 ‘기울어진 운동장론’이 결합돼 나온 이 주장은 야권 집권은 앞으로 더 힘들어진다는 비관적 전망으로 이어진다. 2012년 12월 12일, 문재인 후보와 후보를 사퇴한 안철수가 대전에서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하고 있다. / 강윤중 기자

기울어진 운동장론, 틀렸다
‘기울어진 운동장’. 지난 대선 이전부터 정치평론에서 한국 정치지형에 대해 즐겨 사용된 비유다. 애당초 야권에 불리한 게임의 조건 때문에 야권이 총력으로 힘을 기울여도 이기는 것은 쉽지 않다는 함의가 있다. 역대 대선 결과를 보면 김대중은 2위를 기록했던 이회창에게 39만557표차로 당선됐고, 노무현은 57만980표 차로 이겼다. 반면 최근 두 보수정권을 보면 이명박은 531만7708표, 박근혜는 108만496표 차로 이겼다. 2012년 대선에서 2위를 차지한 문재인 후보의 득표수는 1469만2632표로, 직전 대선의 이명박 후보보다 320만243표를 더 많이 받았지만 결과는 패배였다. 선거 당사자인 문재인 후보도 1년 후에 낸 <12·19 끝이 시작이다> 책에서 이 ‘기울어진 운동장론’을 인용했다.

그러나 최근 지난 대선을 복기하는 과정에서 이 ‘기울어진 운동장론은 틀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안철수 캠프의 핵심 인사로 참여했던 금태섭 변호사는 최근에 낸 책 <이기는 야당을 갖고 싶다>에서 이렇게 말했다. “기울어진 운동장론의 근본 오류는 문제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는다는 데 있다. 야당이 매번 지는 이유는 야당에 있다.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이 심각하게 헤매서 사람들이 염증을 느낄 때도 표는 야당으로 오지 않는다. 한마디로 야당이 집권 후 여당보다 더 잘할 것이라는 신뢰를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기울어진 운동장론’은 야권의 입장에서는 더 암담한 전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 ‘기울어진 운동장’이 한국 사회 인구구조 변화와 맞물려 더 기울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는 2018년 본격적인 고령사회로 진입하게 된다. 지난 대선 당시 야권은 2030세대의 투표참여율을 높이는 ‘세대동원전략’을 썼다. 대선 결과는 그게 오류였고, 5060대 장년층의 표심이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추세는 앞으로 더욱 강화되는데, 고령화 때문에 인구구조의 중심층이 보수화되는 장년-노년층으로 기울게 된다는 것이다. 일찍이 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에서처럼 자민당의 장기집권과 비슷한 결과로 귀결될 것이라는 게 이 주장의 핵심이다. 그럴까.

앞서의 유권자 구성 변화 계산에서 19대 대선에서도 18대와 동일한 투표율과 지지성향이 나타나는 것으로 시뮬레이션을 했을 때 새로 진입하는 유권자 340만 중 투표율 70%를 적용해 240만 유권자가 투표에 나선다고 가정했을 때 현 야권은 157만표를 새로 가져가고 여권은 80만표를 가져가게 된다. 반대로 사망자로 유권자 명부에서 사라지게 되는 사람들의 성향을 시뮬레이션하면 58만표를 현 여권이 잃게 된다. 도합 130만표가 현 여권이 뒤지게 된다. 이 시뮬레이션 결과는 김장수 제3정치연구소 소장이 최근에 낸 책 <하드볼게임>에서 제시한 것이다. (인터뷰 참조)

“중요한 것은 덧셈 뺄셈의 정치가 아니라 곱셈의 정치를 하는 것이다.” 정치싱크탱크 더좋은미래의 홍일표 사무처장의 말이다. 선거공학적으로 표 계산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를 제시하고 세력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홍 처장의 설명이다. “상황은 역동적일 수 있기 때문에 ‘동학’을 봐야 한다. 투표율과 참여의사, 실제 지지도와 이념성향 등을 모두 곱해가면서 봐야 한다. 준비되지 않은 선거 승리는 설사 정권교체를 이룬다고 하더라도 재앙이 될 수 있다. 선거전략은 집권 후 어떻게 할 것이냐 등 노선과 관련이 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정체성을 명확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공학적 단순 연산’만으로도 드러나는 결과가 있다. 진보나 보수에서 보수나 진보로 갈아탄 유권자들이다. 가장 드라마틱했던 것은 2007년 선거였다. 앞의 책에서 김 소장은 2002년 노무현에서 2007년 이명박으로 갈아탄 유권자가 최소 651만명으로 추정했다. 이 숫자에는 2002년 대선 때 ‘진보’를 지지했다가 기권한 숫자도 포함된다. 반면 2007년 이명박을 찍었다가 2012년 대선 때 문재인으로 선회한 유권자는 485만이다.(앞의 책 134~135쪽)

“진영 넘나드는 유권자 최소 651만명”
정치학에서는 이 유권자들을 스윙보터(swing voter)라고 부른다. 이런 스윙보터들의 투표 행태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MB의 뉴타운 공약에 혹한 당시 40·50대 민주화 세대들의 배신인가? 문재인 대신 ‘박근혜 정권교체’(민주정책연구원 이진복 연구위원)를 선택한 사람들은 ‘이명박근혜’의 본질을 간파하지 못하고 속아 넘어간 것인가? 김장수 소장은 그런 시각이 전형적인 ‘정치적 엘리트주의’라고 비판했다.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똑똑하고 우리가 맞는데, 유권자들이 바보라서 속았다는 논리로, 왜 패배했는지에 대한 반성이 없는 전형적인 주장이다.”

양자 대결 선거는 투표 참여자 중 최소 50%를 차지하기 위한 싸움이다. 이쪽 편에서 이탈하는 사람을 최소화하는 한편, 상대방으로부터 최대한 끌어오기 위한 싸움이다. 박성민 민컨설팅 대표는 지난 8월 26일 ‘더 좋은 미래’ 주최 토론회에서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 측이 이 전략을 잘 썼다고 주장했다. “지난 대선의 이슈는 경제민주화, 복지 확대, 정치혁신이었다. 안철수 현상은 이런 국민들의 요구를 대변해 나온 것이었다. 집권당 후보로서의 전략은 왼쪽으로 이동해 이 이슈들을 무력화하는 것이었다. 김종인, 안대희, 한광옥을 내세워 이 쟁점들이 이슈가 되지 않도록 하는 전략이었다.”

흔히 ‘집토끼냐 아니면 산토끼냐’로 요약되는 노선전략 논쟁은 어디에 방점을 찍을 것인가를 두고 벌어진다. 논쟁의 결론은 쉽게 나기 어렵다. 과거 전략을 복기하더라도 현재 가지고 있는 프레임에 따라 평가지점이 다 달라지기 때문이다. 확실한 것은 ‘신뢰’다. 특히 대선은 과거에 대한 회고적 평가보다는 전망투표에 가깝다. 이진복 연구위원은 이렇게 말했다. “한국 사회의 보수는 진보의 집권에 대해 공포심을 갖고 있다. 진보가 들어오면 깽판치는 것이 아니냐, 진보는 시끄러운 소수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 집권에 성공할 수 있었던 김대중의 전략이 ‘준비된 대통령’론이었고, 노무현의 메시지가 심판이 아니라 ‘미래의 희망’에 맞춰져 있었던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야권의 고정지지층 중 진보라는 이념이나 가치에 동의해서 지지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전체를 놓고 볼 때는 일부”라며 “대부분은 ‘상대방을 이길 수 있는 후보’라는 점에서 동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2002년 대선 당시 이른바 노풍(盧風)과 2012년 대선 때 안철수 현상이 호남에서 시작된 것은 호남 유권자가 진보라서가 아니라 현 집권세력을 이길 수 있을 것으로 봤기 때문에 호남지역 유권자들의 ‘전략적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유권자는 신뢰받는 후보에 투표한다
‘집토끼 산토끼 논쟁’은 평행선을 달리고 있지만 합의가 가능한 지점이 있다. 선거국면에서도 진영싸움으로 가면 현재의 야권은 필패, 여권은 필승이라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자기 진영의 결집만으로는 51%의 국민 지지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전략을 세워야 할까. 앞의 토론회에 참석한 박성민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핵심은 지금은 국민들이 봤을 때 대한민국의 운영을 맡겼을 때 보수가 더 잘한다고 본다는 것이다. 양극화 현실에 분노하고 있는 것은 맞다. 하지만 야당에 맡겼을 때 잘 풀어나갈 것이라고 신뢰하는 사람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연구위원은 이렇게 덧붙였다. “현재 새누리당 지지율은 40%대를 보여주고 있다. 과거에 없던 현상이다. 이건 바꿔 말하면 누가 집권여당의 후보로 나서더라도 쉽게 당선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결론은 명확하다. 새누리당 지지자를 뺏어오지 않고서는 야권의 집권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다. 박근혜 정권이 못한다고 진영논리로 대처하게 되면 야권을 불신하는 부동층에게 새누리당을 지지하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다. 이것은 악순환으로 이어지게 된다. 부동층이 넘어가면 ‘이기는 정당’을 원하는 고정층도 빠지게 된다.” 홍일표 더미래 사무처장은 “쉽게 결론 나지는 않겠지만,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하더라도 논의를 할 수 있는 분위기 자체가 안 됐다”며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라도 논쟁을 통해 방침을 정해야 2016년 총선이나 이후 대선에서 일관된 대응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 진보는 구한말 위정척사파와 비슷”

김장수 제3정치연구소 소장이 내놓는 정치분석은 SNS 상에서 상당한 주목을 받아왔다. 그가 책을 냈다. <하드볼게임>이라는 제목이다. 최근의 남북관계처럼 강대 강, 다시말해 진영 대 진영의 대립구도로 한국 정치가 흘러가는 상황에 대한 우려를 담았다. 김 소장의 비판은 특히 진영 결집에 집착하는 야권으로 향한다. 좌파 기득권에 집착해서는 2016년 총선이나 2017년 대선에서 필패할 것이라고 그는 전망한다. 서울 마포에 있는 개인사무실에서 그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책에서는 다음 대선에서 야권이 유리할 것으로 봤다. 흔히 야권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비관적인 전망이 많이 나오는 편인데.
“미국에서 공부할 때 선거와 유권자 투표를 공부했다. 야권에서 흔히 이야기하는 기울어진 운동장론은 틀렸다. ‘나이가 들면 보수화된다’는 연령효과를 흔히 이야기하는데, 이른바 연령효과는 증명되지 않았다. 미국 선거에서도 마찬가지다. 반면 정치적 감수성이 민감한 특정 시기, 젊었을 때 정치적 선택이 지속된다는 ‘코호트 효과’는 많이 거론된다. 야권에서 진보 결집을 통한 확장을 이야기하는데, 나는 그것이 나라를 망치는 길이라고 본다. 선거 공학적으로만 생각하면 지금 전략이 맞을 수 있다. 좌파 기득권을 세게 결집시키는 것이다. 공무원이나 대기업 등 좌파 기득권 표가 500만표는 된다. 선거는 이길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나라는 망치는 길이다.”

독특한 시각이다. 좌파 기득권이라는 말을 썼는데, 야권이 대기업 정규직 노조 등의 표를 의식해 그들을 비호한다는 말인가.
“새누리당이 재벌개혁을 의제로 내건다면 야권은 노동개혁을 이야기해야 한다. 그런데 눈치만 본다. 국민들의 삶과 상관없는 정치 이야기만 한다. 경제영역에 들어가면 자신들도 기득권을 대변하고 있기 때문에 이쪽(노동개혁) 이슈에 발을 안 담그려 한다. 나는 국민들이 현명하기 때문에 야당이 질 것으로 본다. 야당이 이기려면 노동개혁을 받아야 한다.”

박 대통령이 임기 후반 중요 과제로 설정한 노동개혁은 청년 일자리 등 현안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물론 대안이 나와야 한다. 나는 좌파 기득권에는 적어도 세 가지가 있다고 본다. 연금과 세금, 정규직이다. 적어도 공공부문에서는 신규채용 인력은 계약직으로 뽑아야 한다. 농담처럼 이야기하곤 하는데, 지금의 대한민국 사회는 ‘신분제 사회’다. 일단 시험에 붙으면 그 뒤에는 모든 게 가능하다. 이런 사회문화가 ‘진보’와 맞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MB정권 공기업에서 ‘낙하산 감사’를 하면서 그 실태를 목격했다. 최소한 일 안 하고 노는 사람을 자를 수는 있어야 한다. 남한 사람들이 북한 핑계를 대듯, 자기들만의 태평천국을 만들어놨다. 성과급제도 완전히 무용지물이 됐다. 돌아가면서 서로에게 1등급을 주는 형태로 변질된 것이다. 나는 이런 것들을 좌파 기득권의 실례로 부른다. 자기들이 쌓아놓은 성채와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나라를 말아먹는 것이다.”

지금의 구도를 타파하기 위해서 진영논리를 벗어나야 한다는 주장에는 공감한다.
“어디 책에도 썼지만, 나는 지금의 진보가 구한말의 위정척사파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무엇에 대한 부정이다. 전체적으로 세계관 자체가 수구적으로 바뀌어 있다. 2017년 대선은 여기에서 승부가 날 것으로 본다. 현재의 진보가 노동개혁을 받으면 이기고, 안 받으면 진다. 원래대로 하면 야권이 이길 판인데, 질 것이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꼴통들’을 원하지 않는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