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수의 도시 이미지 읽기]욕망이 유료로 거래되는 방·방·방

길을 걷다가 ‘귀청소방’이라는 간판이나 전단지를 보면 많은 생각이 떠오른다. 그 곳은 과연 귀를 청소하는 곳일까? 하루가 멀다 하고 생겨나는 수많은 방들은 사법 처리 대상 여부를 떠나서,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과 정서가 모조리 ‘유료’ 상품으로 전시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소설가 황석영의 회고에 따르면 <선생과 황태자>로 유명한 소설가 송영은 온갖 기행과 위악과 객기가 넘쳐나던 1970년대의 문학판에서 독특한 아우라를 풍긴 작가였다. 우아한 유머, 기품 있는 행동, 그리고 물질적으로 가난하고 문화적으로 빈곤하던 시절에 문단을 통틀어 가장 수준 높은 클래식 애호가의 경지에 올랐던 인물이 송영이다.

1987년에 그의 문학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격렬한 시대로부터 한 발짝 물러선 듯한 한가로운 말처럼 들렸으나 특유의 말투에서 풍겨나오는 유머에는 날카로운 풍자와 비범한 성찰이 배어 있었다. 송영은 ‘오디오 환자들’ 사이에서 아날로그 정신을 수호하는 현자로 통하는데, 나 역시 여태 이 병을 고치지 못하여 현자 송영의 음악에 관한 글을 읽어왔다.

온갖 상상을 하게 하는 ‘귀청소방’
그 한 에피소드. 송영은 어떻게 클래식의 현자가 되었고, 고독한 산책자의 불안한 내면을 그린 소설가가 되었는가. 귀지 때문이었다.

을지로의 한 귀청소방 간판.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 생겨나는 수많은 방들은 이 시대의 감정과 욕망과 성 풍속의 단면을 보여준다.

검정고시를 거쳐 어렵사리 대학을 마친 젊은 날의 송영은 장교로 군 입대를 하려고 신체검사를 치렀는데, 그만 청각장애 판정을 받게 된다. 순간 송영은 절망에 빠진다. 장교의 꿈도 허망하게 좌절되었지만, 아! 앞으로 베토벤이며 슈만이며 시벨리우스를 어떻게 듣는단 말인가.

영영 음악을 듣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해결하기 위해 송영은 곧장 이비인후과를 찾았고, 의사는 그의 귀에서 완두콩만한 귀지를 꺼냈다. 천만다행으로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되었고 장교의 꿈도 되찾게 된 송영은 다시 신체검사를 받고 입대하였다가, 스스로 선택한 고행에 의하여 도망자가 되었다가, 체포되었다가, 좌절의 나락에 떨어진 자가 되었다가, 마침내 소설을 써서 스스로를 구원했다.

아무튼 문제는 귀지였다. 이토록 극단적인 경우에 이르기 전에 귀지를 파내야 한다. 2013년 6월에 보도된 일본 ‘아사히신문’ 기사에 따르면, 귀지 제거가 치매증상 개선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일본 국립장수의료연구센터가 치매환자 30명을 선정해 귀지 제거 전후의 인지능력 검사를 했더니, 귀지를 제거하자 청력이 나아지고 따라서 인지능력이나 소통능력도 개선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습관적으로 자주 파낼 필요는 없다. 과다 분비되면 자연스러운 신체활동 과정에서 저절로 빠져나간다.

그러나 우리는 귀지를 파낸다. 우리가 귀지를 파는 이유는 이런 의학적 소견과는 조금 거리가 먼 선택이다. 특히 누군가 귀지를 대신 파주게 되면 머리를 감거나, 손톱을 깎거나, 콧속을 후비는 일과는 전혀 다른 감정마저 생긴다. 사랑하는 사람의 무릎에 누워 짐짓 무섭다는 듯 손을 그러모으면, 아늑해진다. 엄마나 아내나 여자친구 혹은 남편이나 남자친구가 그렇게 해주면 손톱을 깎거나 콧속을 후비는 일과는 전혀 다른 안온함을 느끼게 된다.

이 시대의 욕망과 성 풍속의 단면
그래서일까, 혼잡한 대도시를 걷다가 ‘귀청소방’이라는 간판이나 전단지를 보면, 순간 멈칫하게 된다. 동시에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우선, 귀를 ‘청소’한다는 말의 낯설음이다. ‘귀지를 파내주는 방’이라고 길게 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청소’한다는 표현은 아무래도 낯설다. 귀지를 파내는 일과 ‘귀청소방’은 거리가 멀다.

다음으로 문득 드는 생각은 ‘과연 귀를 청소하는 곳일까?’ 하는 의문이다. 인터넷을 통하여 몇 군데 ‘귀청소방’ 홈페이지를 살펴보니 ‘어머니의 따뜻한 손길, 연인의 포근함’을 제공한다고 한다. ‘20대의 젊고 아름다운 매니저와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다고 한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다만 그것뿐일까 하는 생각이 더불어 생긴다.

영등포의 한 귀청소방 간판.

여러 홈페이지의 화면들은 울긋불긋한 색깔로 꾸며져 있고, ‘20대의 젊고 아름다운’ 여자들 이미지가 펼쳐져 있다. 엄격히 법으로 처벌받는 ‘유사 성행위’가 아닐지라도, 그러니까 기본적인 상식과 일차적인 감각의 수준으로 봐도 ‘멋지게 차려입은 아가씨의 무릎에 누워 귀지를 파내는 일’은 온갖 상상을 동시다발적으로 떠오르게 한다.

지난 9월 24일, 충북지방경찰청은 청주시 흥덕구 복대동의 ‘귀청소방’을 ‘성매매 알선 등 행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단속하였고, 업주는 물론 대전지역 공무원을 포함한 수십명의 이용자 명단을 조사하였다. 앞서 7월 1일, 대구 중부경찰서는 대구시 중구 주택가의 한 ‘테마방’을 단속했는데 그곳은 ‘지하철 2호선 방’, ‘교실방’, ‘병원방’ 등 다양한 ‘테마’로 방을 꾸민 성매매업소였다. 겉은 명품 안경점인데 속은 ‘레이싱걸방’, ‘여학생방’으로 성매매 영업을 하다가 단속된 곳도 있다.

급변하는 세태와 행정지침에 맞춰서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 생겨나는 수많은 방들은 이 시대의 감정과 욕망과 성 풍속의 단면을 보여준다. 사법처리 대상 여부를 떠나서, 인간의 거의 모든 행위가 밀실에서 유료로 거래되는 상품이 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키스방’이나 ‘귀청소방’만이 아니다. 노래방도 그러하고 찜질방도 그러하다.

아이들은 또 어떤가. 굳이 들판이나 숲속에서 놀던 마을 공동체의 옛 시절이 아니라 가까운 과거만 해도 동네 골목이나 공터가 모조리 아이들 놀이터였다. 그런데 지금은 비좁은 주차난을 해결하기 위해 놀이터를 주차장으로 바꾸는 시절이다. 아이들은 학원을 빙빙 돌고 있기 때문에 놀이터는 텅 비어 있다. 그러다가 외식이라도 하게 되면 대형 쇼핑몰이나 음식점의 ‘놀이방’에서 놀아야 한다.

정윤수의 도시 이미지 읽기

지난 2004년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건축전 한국관’의 주제는 ‘방의 도시’였다. 정기용, 김광수 같은 건축가들이 사적인 행위가 공적인 공간으로 번져나가는 우리의 ‘방 문화’를 다뤘다. 그로부터 10년 가까이 흘렀다. 노래방, 찜질방, 피씨방 등이 넘쳐났고 그 사이로 키스방, 테마방, 귀청소방이 파고들었다. 인간의 기본적인 행동과 관계와 욕망과 정서가 모조리 ‘유료’로 전환되어 상품으로 전시되는 시대에 귀지를 파는 일도 그렇게 되었다. 물론 귀지를 파는 일, 곧 귀를 청소해준다는 안내 문구는 아마도 알리바이겠지만 말이다.

정윤수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