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명문학교를 가다](10)영국 차터하우스 스쿨

학비 비싼만큼 학생들에게 미래 보장

비온 후 쌀쌀한 날씨에 학생들이 수업을 받으러 이동하고 있다.

"한국에서 조기 유학 붐이 일고 있다는 말은 최근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5년 전만 해도 영국에는 한국 조기유학생이 많지 않았습니다. 영국 사립학교의 등록금이 미국이나 캐나다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싸기 때문이죠. 하지만 비싼 만큼 학생들에게 미래를 보장해줍니다. 학비는 대부분 학업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학교 시설과 학생들에게 투자하니까요.”

런던에서 1시간가량 차를 타고 가면 도착하는 고달밍(Godalming)에는 유서 깊은 사립 명문학교인 차터하우스 스쿨(Charterhouse School)이 있다. 이 학교의 레브드 존 위더리지 교장은 먼저 “등록금이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받은 만큼 학생들에게 돌려준다”고 강조했다. 위더리지 교장은 “영국의 전통 명문학교는 세계 최고의 전통과 우수한 교사진이 세계를 주도할 미래의 인재를 배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16세기 설립 400년 역사 간직
인터뷰가 진행된 교장실은 33㎡도 채 안 되는 작은 방이었다. 우리나라 학교의 교장실보다 작게 느껴진다. 커피와 과자를 내왔지만 자그만 찻상조차 없었다. 교장선생님이나 취재진도 바닥에 내려놓고 커피를 마셨다. 손님 접대가 어찌 이 모양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지만 교장마저 바닥에 찻잔을 내려놓는 마당이어서 오히려 신선하게 다가왔다. 영국의 청교도정신이 과연 이런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비약일지 모르겠지만 이게 대영제국의 자존심을 지켜가는 보이지 않는 힘으로 느껴졌다.

1611년 설립된 차터하우스 스쿨은 전통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고풍스러운 캠퍼스를 갖고 있다.

차터하우스 스쿨에는 마치 학교 건물 전체가 세계적인 문화재를 연상시킬 정도로 고풍스러운 건물이 즐비하다. 우리 국민은 600년을 이어온 숭례문이 방화로 불타는 모습을 보면서 새삼 전통을 간직한다는 게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지 실감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영국은 런던을 비롯해 전역이 거대한 전통이 살아 숨쉬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영국에는 수백 년 전통을 자랑하는 명문학교도 많다. 1611년 설립된 차터하우스 스쿨도 400년의 역사를 간직한 명문학교로 통한다. 다만 한국 학부모의 입장에서 보면 세계 최고 수준의 비싼 학비(연간 5000만~6000만 원) 탓에 유학을 보내고 싶어도 엄두를 낼 수 없는 곳이다.

학비 연 5000만 원대, 유학 엄두 못내
영국의 사립학교는 대부분 외국인 유학생에게 장학금을 주지 않는다. 영국은 아시아나 아프리카 국가뿐 아니라 영어권 국가에서도 학생들이 유학을 온다. 명문 사립학교에 입학하려면 2년 정도 대기해야 할 만큼 명문학교일수록 ‘수요 초과’ 현상을 빚고 있다. 그 때문에 영국 사립학교들은 굳이 장학금을 주면서까지 유학생을 유치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김준엽군(왼쪽), 민수홍군

그런데 차터하우스 스쿨은 장학금을 외국 유학생에게도 개방하고 있다. 위더리지 교장은 “학비의 4분의 1에서 전액까지 장학금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장학금은 아카데믹 성적뿐 아니라 음악과 미술 등 아트 분야에도 적용된다고 한다. 홍콩 유학생이 대부분 장학금을 타 간다고 위더리지 교장은 전했다. 홍콩 유학생은 다른 아시아권 학생보다 영어 구사력이 앞서기 때문이라고 한다.

영국의 학생들은 만 16세가 되면 아카데믹 코스와 직업교육 코스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 2년을 다니는 아카데믹 코스는 ‘식스폼’(Sixth Form)이라고 불리는데 대학 입학시험 준비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수능에 해당하는 ‘A 레벨’을 봐서 대학(University)에 들어가고자 하는 학생이 이 과정을 택한다. 한국 조기 유학생들은 대부분 이 과정을 밟아 대학에 진학한다. 차터하우스 스쿨은 영국과 미국, 캐나다 글로벌 명문대 진학률이 20%에 이른다. 명문대 진학률(2005년 기준)은 영국의 웨스트민스터 스쿨이 졸업생 두 명 가운데 한 명꼴로 세계적인 명문대에 진학해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튼 칼리지가 29%, 해루스쿨이 17%로 나타났다. 세계 명문학교 글로벌 랭킹 50위권에 들기 위해서는 통상 졸업생 10% 정도가 명문대에 진학해야 한다.

차터하우스 스쿨의 레브드 존 위더리지 교장.

위더리지 교장은 차터하우스 스쿨이 지닌 매력으로 먼저 “학생들이 높은 목표를 지니고 아카데믹 결과를 성취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을 꼽았다. 차터하우스를 다니면 학생 대부분이 영국에서 누구나 선망하는 대학교에 진학할 수 있다고 한다. 두 번째로는 보딩 스쿨의 특성상 학생들이 학교에서 음악과 아트, 스포츠 등 모든 면에서 다양성을 추구하며 자신의 재능을 계발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세 번째는 크리스천 스쿨이어서 도덕적이고 인성을 갖추기 위한 다양한 사회봉사 활동과 로컬 커뮤니티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영국의 공교육이 붕괴되었다고 아우성이지만 차터하우스 스쿨에서는 결코 교실 붕괴는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종교학 과목은 필수로 공부해야 하고 채플은 1주일에 5일 동안 참가해 설교를 들어야 한다. 위더리지 교장은 “학생들이 올바르게 행동할 수 있도록 독려하고 항상 자긍심을 키워주는 교육을 한다”고 말했다. 자신이 ‘최고’라는 의식을 갖도록 하되 이기적인 엘리트주의에 빠지지 않도록 인성교육을 철저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른바 ‘엘리트’와 ‘엘리트주의’는 다르다면서 최고의 엘리트를 육성하되 우월감에 빠지지 않도록 엘리트주의는 철저하게 경계하는 교육을 한다”고 말했다.

지식과 함께 도덕성과 인성을 갖춘 최고의 엘리트를 배출하기 위해 이 학교에서는 무엇보다 엄격하게 교칙을 적용한다. 대부분 세계적인 명문학교는 교칙을 엄격히 적용하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차터하우스 스쿨도 예외는 아니다. 보딩 스쿨의 경우 학생들이 대부분 시간을 학교에서 보내기 때문에 엄격한 교칙을 적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학생들을 제대로 통제할 수 없다.

엘리트 배출 위해 교칙 엄격 적용
위더리지 교장에 따르면 교칙의 적용은 크게 3단계로 구분한다. 가벼운 교칙 위반의 경우 토요일에 집에 가지 못하게 하고 잔디깎기 등 노동을 해야 한다. 중간 정도의 교칙 위반, 예컨대 동료를 ‘왕따’할 경우와 같은 교칙 위반은 1주일 정도 집으로 돌려보내 자택에서 근신하도록 해야 한다. 가장 심각한 교칙 위반은 퇴학 처분을 받는다. 학교에서 마약을 하는 경우 등이 이에 해당한다. 1년에 평균 한두 명이 퇴학을 당한다고 위더리지 교장은 귀띔한다.

지난해 9월부터 차터하우스 스쿨에 다니고 있는 김준엽군은 한국에서 고교 1학년 1학기를 다니다 유학을 왔다. 이 학교에 오기에 앞서 1년 동안 베드포드 스쿨에 다니면서 영국 적응 기간을 거쳤다. 이어 그 학교보다 더 명문으로 통하는 차터하우스 스쿨로 전학했다. 김군은 어린 시절 2년 동안 미국에서 산 것도 도움이 됐다고 한다.

런던유학닷컴 서동성 대표는 “영국에 유학갈 경우 처음부터 명문학교를 지원하기보다 입학 경쟁이 덜한 학교에서 1~2년 동안 영어 수업 적응기간을 거치는 게 바람직하다”고 강조한다. 이는 미국이나 호주, 캐나다 등의 조기 유학도 마찬가지다. 김군의 경우는 바로 단계적인 유학 적응 코스를 거친 셈이다. 그는 “차터하우스 스쿨에 온 지 두 달도 안 됐지만 공부나 운동 등에 적극적으로 임해 별 어려움이 없다”고 말했다.

대부분 명문학교에서는 아시아권에서 유학온 학생들이 국가별로 무리를 지어다니는 것을 우려해 입학 인원을 제한하고 있다. 차터하우스 스쿨은 중·고등학교(남녀공학)로 90%가 영국 학생들이고 나머지 10%가 유학생들이다. 위더리지 교장은 되도록 10~20%를 유지하려는 게 학교 방침이라고 말했다. 영국 학부모들이 유학생 비율이 많은 것을 원치 않는다고 한다. 현재 유학생은 140명 정도. 이 학교의 전체 학생 수는 750명이고 이중 대학 진학반인 식스 포머들은 350명(100명가량은 여학생) 정도. 교사와 학생 비율은 1대 8이고 등록금은 기숙사비를 포함해 연간 5500만 원 선이다.

차터하우스 스쿨에 진학하는 학생들은 대부분 초등학교인 프렙스쿨(Prep Schoold, 정식 명칭은 Preparatory School)을 거친다. 프렙스쿨은 영국과 미국에서 의미가 다르다. 영국에서는 13세 미만이 다니는 초등학교를 프렙스쿨이라고 한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차터하우스 스쿨과 같이 일반 사립학교와는 격이 다른 명문 사립학교를 지칭한다.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집중 수업을 한다는 의미에서 프렙스쿨이라고도 불린다.

차터하우스 스쿨에는 아시아 유학생 가운데 홍콩 유학생이 45명으로 가장 많아 학교 측에서도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들이 무리를 지어다녀 ‘홍콩 소사이어티’라는 말이 회자될 정도라고 한다. 반면 한국 학생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위더리지 교장은 “한국 학생은 대개 영어 능력이 부족해 20명 정도 지원하면 한두 명이 합격할 정도”라고 귀띔했다.

영국 유학 ‘파운데이션 코스’ 이용하라
국내에서 고교를 졸업하고 영국 대학으로 유학을 희망할 경우 이른바 ‘파운데이션(Foundation) 코스’를 이용해볼 만하다. 조기 유학은 등록금 부담이 커 웬만한 중산층 가정도 엄두를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파운데이션 과정은 대학을 입학하기 위한 예비과정으로 대학 부설로 운영한다. 학교에 따라서 엑세스 코스(Access Course), 브릿징 코스(Bridging Course)라고 한다. 이는 영국 대학의 교육을 영국인이 아닌 외국 학생들이 영국 대학에서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목적이다. 본격적인 직업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공립칼리지(further education)와 일반 사설학교 그리고 일부 대학에서 각 대학의 파운데이션 과정을 두고 있다. 입학 자격은 고등학교 졸업 이상 학력이고 영어 성적은 IELTS가 5.0~5.5 이상이다. 학비는 연 8000~9000파운드 정도.

파운데이션 과정은 기본적으로 1년 과정이며, 대부분 9월에 시작해서 이듬해 6월에 끝난다. 단기 코스(1월부터 6월)도 있다. 대학 입학은 파운데이션 과정의 성적과 IELTS 점수로 결정한다.

우리나라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할 경우, 전공부터 시작하는 영국의 대학 과정(총 3년)에 바로 입학할 수 없고 의무적으로 파운데이션 과정을 거치도록 되어 있다. 파운데이션 과정은 자신이 원하는 대학(들)과 연계되어 있어 그 학교들에 대한 입학률이 좋은지 등을 확인해야 한다. 특히 랭킹이 높은 명문대에 진학하기 위해서는 높은 수준의 파운데이션 과정을 제공하는 학교에 입학해 코스를 마친 후에야 지원할 수 있다. 그러나 파운데이션을 통해서 옥스퍼드대나 케임브리지대 그리고 의대, 치대, 약대 등은 거의 입학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영국 명문 사립학교의 역사와 전통
1861년 영국에서는 중등교육 현황을 총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한 의회 조사위원회로 클래던위원회가 구성됐다. 이 클래던위원회는 당시 대표적인 영국의 사립학교로 이튼, 해로, 윈체스터, 차터하우스, 럭비, 류루즈버리, 웨스트민스터, 세인트 폴스, 머천트테일러스 9개 학교를 들었다. 이때부터 이 학교들은 영국의 엘리트 사립학교를 상징하는 명문학교가 됐다. 이 가운데 가장 귀족적인 학교로 이튼 칼리지가 꼽혔다. 1830년 이래 이튼 졸업생 가운데 10명의 총리가 배출되었다.

차터하우스 스쿨은 1861년 영국의 대표적인 사립학교 9곳 가운데 하나로 선정된 학교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영국에서는 사립학교를 ‘퍼블릭 스쿨’(public school)이라고 표기한다. ‘퍼블릭’의 의미를 담은 사립학교는 수백 년 전인 설립 초기에는 성직자뿐 아니라 대중(the public)에게도 교육을 제공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었다. 학비를 내기 어려운 가난한 학생들도 사립학교에서 부잣집 학생들과 공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가장 긴 역사를 자랑하는 윈체스터 스쿨은 1378년 윈체스터의 주교가 설립했는데, 최초의 학생 구성을 보면 학비를 부담하는 학생이 10명이었고 가난한 학생들은 70명에 달했다. 19세기에 이르러 이런 학생 비율은 뒤바뀌었다. 가난한 학생은 10명이고 부잣집 학생이 70명에 이른 것이다. 19세기 이후 영국 사립학교는 최고의 부유층 자녀들만 들어갈 수 있는 ‘그들만의 리그’로 변해 상류층이 독점하다시피 했다.

귀족과 상류층의 전유물이 사립학교였다면 상인과 자영농의 아들은 주로 ‘문법학교’(grammar school)에 진학했다. 문법학교 역시 사립학교 못지않은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문법학교는 19세기 들어 쇠퇴의 길에 들어섰다 다시 부활하고 있다. 엘리트 자제들은 이전에도 6~8세 때 프렙스쿨에 입학해 다니다 12세가 되면 사립학교로 진학했다. 지금도 이런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

영국에서 사립학교가 발달한 것은 산업혁명으로 다른 나라보다 앞선 철도가 한몫했다. 철도의 발달은 전국에 있는 상류층 자녀들을 사립학교로 모여들게 한 결정적 계기였다.

세계의 명문학교를 가다

그런데 영국의 보딩 스쿨은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기대에 부응한 교육을 제공하지 못했다고 한다. 학생들을 기숙사에 몰아넣고 거의 수도원 같은 환경에서 살게 만드는 기괴한 기관으로 비춰지기도 했다. 1500년에 영국을 방문한 이탈리아인은 사립학교를 자녀들에게 애정이 없는 부모들이 보내는 곳으로 보었다. 이튼 칼리지의 기숙사는 52명이 사용하는 긴 방으로 유명했다. 그곳은 난로조차 없는 헛간 같은 방이었다고 한다. 20세기 초에 사립학교를 다녔던 소설가 조지 오웰은 한창 자랄 시기의 소년들이 늘 굶주렸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가장 귀족적이라는 이튼 칼리지에서도 학생들은 오후 식사 이후에는 굶어야 했다. 가끔 저녁 늦게 튀긴 생선이 급식으로 제공됐는데 이는 가장 가난한 노동자들이 즐겨 먹는 음식이었다. 8살에 입학한 조지 오웰은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침대에 오줌을 지리기도 해 교장에게 매를 맞았고 모욕까지 당했다고 한다.

영국 사립학교의 명성은 이러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새로운 제도화와 시스템으로 개혁하면서 세계적인 명문학교로 위상을 갖추게 되었다. 현재 영국의 공교육은 말이 아니다. 공교육 붕괴와 함께 교육의 부익부 빈익빈 문제가 심각하다. 사립학교들이 다양한 장학금 제도를 두고 있지만 여전히 ‘귀족학교’라는 사회적인 인식이 퍼져 있고 진입 장벽도 높다. 이는 영국이 풀어야 할 문제지만 우리나라가 당면한 교육문제기도 하다.

고달밍(영국)ㅣ최효찬〈객원기자·자녀경영연구소장〉 romai@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