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명문학교를 가다](15)호주 브리즈번 그래머 스쿨

특별기획

호주 전체에서 ‘톱 5’에 드는 명문

인구 200만 명의 브리즈번은 시드니와 멜버른에 이어 한국 조기 유학생들의 새로운 거점 도시로 자리 잡았다. 140년이 넘은 전통의 명문 남학교인 브리즈번 그래머스쿨의 모습.

시드니에서 멜버른, 브리즈번 그리고 퍼스……
한국 조기 유학생들이 호주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초기에 조기 유학생들은 대부분 시드니로 향했다. 시드니에 조기 유학생이 늘어나자 한국 학생이 적은 곳을 찾아 학부모들은 멜버른으로 발길을 돌렸다. 멜버른이 한국 조기 유학생으로 북적이자 이번에는 퀸즈랜드의 주도(州都)인 브리즈번(Bris bane)으로 한국 학생이 몰려들었다. 시드니나 멜버른, 브리즈번은 호주 내에서 명문학교가 많은 도시들이다. 그리고 최근에는 브리즈번의 정반대로 호주의 서부 지역에 있는 퍼스(Perth)에 한국 조기 유학생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고 한다. 퍼스는 호주에서도 오지나 다름없는 도시다.

시드니·멜버른보다 브리즈번 선호
브리즈번은 인구 200만 명의 도시지만 호주의 다른 도시와 마찬가지로 한적한 느낌을 받는다. 그렇지만 한국이나 일본, 중국 등의 조기 유학생은 중심가 어디를 가도 흔하게 볼 수 있다. 도움교육정보센터 고준원 실장은 “시드니는 브리즈번에 비해 한국 유학생이 너무 많다”면서 “한국 조기 유학생들도 교육 환경이나 시설이 좋은 브리즈번을 선호하고 있다”고 한다. 시드니의 경우 한국 조기 유학생은 연간 2000명 정도, 이 중 300명 정도가 브리즈번으로 온다고 전한다. 호주 전체로는 외국 조기 유학생의 절반가량인 5000명 정도가 한국 조기 유학생이고 이 중 1000명 정도가 브리즈번에서 유학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고준원 실장은 전한다.

브리즈번에서 남학교 가운데 최고의 명문으로 꼽히는 학교가 1860년에 설립된 브리즈번 그래머 스쿨(BGS) 이다. 호주 전체에서도 ‘톱 5’에 드는 명문학교로 알려져 있다. 호주의 대부분 사립학교와 마찬가지로 BGS도 도심에 자리 잡고 있다. 명문 사립학교들이 도심이 아닌 교외에 있는 미국이나 영국, 캐나다 등의 사립학교에 비해 규모는 작은 편에 속한다. BGS의 전체 학생은 1400명이고 6학년에서 12학년까지로 우리나라의 중·고교에 해당한다. 외국인 학생은 100여 명이고 이 중 10명이 한국 조기 유학생이다.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학생은 135명으로 전체 학생의 10%다. 학비는 기숙사비를 포함하면 호주 달러로 연간 2만5000달러에서 3만1000달러 (보딩비 1만3000달러).

위쪽_ 기숙사 앞에서 조동일군과 하우스마스터, 허환군(왼쪽부터). 아래쪽_ 브리즈번 그래머 스쿨 역시 시설이 좋은 운동장과 수영장 등을 갖춘 실내 체육관이 있다.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는 한국 조기 유학생인 조동일군(8학년)은 지난해 9월부터 이 학교에 다니고 있다. 한국에서 초등학교 6학년에 다니다 말레이시아 페낭의 국제 학교로 유학을 갔다 그곳에서 2년 공부했다. 말레이시아에서는 어머니와 함께 생활했지만 호주에는 혼자 기숙사에서 지내고 있다.

조군이 호주로 오게 된 것은 한국 유학생이 말레이시아에도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조군은 “페낭의 국제 학교에는 전체 학생 300명 가운데 80명이 한국 학생이었다”면서 “한국 학생끼리 어울려 다녀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한 반 21명의 학생 가운데 7명이 한국 학생일 정도로 한국 학교 분위기였다는 것. 어머니와 함께 생활해 좋긴 하지만 2년 정도 유학을 해 영어에 자신감이 생겨 호주의 명문학교인 이 학교로 올 수 있었다. 입학 전형 때 학교에 직접 오지 않고 말레이시아에서 전화로 인터뷰를 했는데 조군의 영어 실력이 뛰어나 합격할 수 있었다고 전한다. 지금은 기숙사 생활도 만족하고 학교 공부와 생활에도 잘 적응하고 있다며 밝게 웃었다. 부모님은 9학년 때까지 공부를 잘 하는지 보고 그때 가서 유학을 지속할지 결정하겠다고 약속했는데 조군은 호주 유학을 계속하고 싶다고 한다. 10학년에 다니는 허환군은 한국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기 전 겨울에 호주로 유학을 왔다. 브리즈번의 남학교인 브리즈번 보이스 칼리지(BBC)에서 2년 동안 다니다 8학년부터 이 학교로 옮겼다고 한다. 허군의 누나도 조기 유학을 와 브리즈번의 명문 여학교인 세인트 마거릿 앵글리칸 걸스스쿨을 졸업했다. 허군은 호주에서 대학을 계속 다닐 예정이라고 한다. 나아가 졸업 후에는 부모님까지 호주로 초청 이민으로 모셔와 함께 살고 싶다는 계획도 전했다. 이들 두 학생은 “가능하면 의대에 진학하고 싶다면서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학교 생활을 하겠다”고 말했다.

초등학생 때 와서 2년 공부 후 귀국
BGS은 브리즈번이 속해 있는 퀸즈랜드 주에서도 단연 명문학교로 통한다. 이 학교 홍보 담당자인 캐서린 맥마흔은 “퀸즈랜드 주뿐 아니라 오스트레일리아 전체에서도 상위권에 들 정도로 아카데믹 결과가 우수하다”고 말했다. 호주는 전체 학교를 대상으로 1등급에서 25등급(A~E)으로 학생들의 등급을 매겨 졸업 성적을 평가한다. 학생들에게 부여된 등급에서 상위 등급(1~7)이 몇 명 되는지 비교해 그 학교가 상위 학교에 드는지 그 척도로 삼는다고 한다. BGS는 2006년 기준으로 전체 학생 가운데 1~7등급은 68.3%로 나타났다. 1~7등급의 주 평균인 25.4%에 비해 월등했다. 이 학교 졸업생 240명 중 49명이 1등급을 받았다.

(왼쪽) 브리즈번 그래머 스쿨의 홍보 담당관 캐서린 맥마흔은 호주 전체에서도 톱 5에 들 정도로 졸업생들의 대학 입학 결과가 좋다고 강조한다. (오른쪽) 브리즈번 그래머 스쿨은 전체 학생 가운데 10% 정도를 수용하는 기숙사를 운영하고 있다. 호주에는 기숙사를 갖춘 사립학교가 많지 않아 조기 유학을 보내려고 할 때는 반드시 기숙사 유무를 고려해야 한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지만 호주에 오는 한국 조기 유학생은 점점 더 어리고 유학 기간이 짧아지는 추세라고 현지 유학 관계자들은 전했다. 초등학생 때 와서 2년 정도 공부하다 귀국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는데 이는 한국에서 특목고 진학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앞서 조군과 허군의 경우처럼 호주의 교육 환경과 시설에 만족하고 대학까지 졸업하고 나아가 졸업 후에도 호주에서 미래를 설계하는 조기 유학생도 늘어나고 있다.

호주 사립학교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기숙사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사립학교들이 교외가 아닌 도심에 자리 잡고 있어 굳이 기숙사가 필요하지 않다고 한다. 대부분 한적한 교외에 있어 기숙사 시스템을 잘 갖춘 영국이나 미국, 캐나다 등과는 교육 환경이나 시설에서 크게 차이가 난다. BGS 등 일부 학교에서만 전체 학생 가운데 10%가 생활할 수 있는 기숙사를 운영하고 있다. 자녀를 호주로 조기 유학을 보내 기숙사 생활을 하게 하려면 기숙사 유무를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브리즈번 보이스 칼리지는

BGS과 함께 브리즈번에서 전통 있는 명문학교로 꼽히는 또 다른 남학교로는 브리즈번 보이스 칼리지(BBC)가 꼽힌다. BGS보다 늦은 1902년에 설립된 BBC는 이 지역에서 손꼽히는 남학교로, 4학년에서 12학년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주니어 스쿨(4~6), 미들스쿨(7~9), 시니어스쿨(10~12)로 우리나라의 초·중·고교에 해당한다.

브리즈번 중심지 바로 옆 킹스톤에 자리한 BBC에는 현재 한국과 중국에서 온 학생 각각 20명이 공부하고 있다. 일본 학생은 거의 없다. 우리나라 학생은 3년 전부터 늘어나기 시작했다. 시드니나 멜버른에 한국 학생이 증가하자 브리즈번을 대안으로 선택해 한국 학생이 몰려오기 시작한 시기와 거의 일치한다. BBC에는 전체 학생이 1500명인데 이 중 10%인 150명이 기숙사에서 생활한다. BBC의 학비는 연간 3만5000달러(보딩비 1만5000달러 포함)

호주 조기 유학생 에피소드

브리즈번에서 한 조기 유학생의 에피소드가 인상적이었다. 호주에 유학올 때 한 학생이 화물선을 타고 왔다는 것이다. 호주에 유학을 보내기로 한 학생의 부친은 유학 생활을 제대로 하려면 먼저 고생을 해봐야 한다면서 비행기가 아닌 화물선에 아들을 태워 보냈다고 한다. 서울에서 부산으로 가서 화물선을 탔고 홍콩을 경유해 호주에 도착했는 데 1개월 넘게 걸렸다고 한다. 학생의 아버지는 “공부를 하려면 어려움을 겪어봐야 하고 이를 이겨내지 못하면 더 큰 어려움도 이겨낼 수 없다”면서 막무가내로 화물선에 아들을 태워 보냈다는 것. 그런데 그 학생이 호주에 도착할 때 기진맥진해 있을 것이라는 생각과 달리 한 달 동안 아주 씩씩한 학생이 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호주 유학 생활도 아주 잘 적응하고 있다고 한다.

호주에서도 다른 나라에서처럼 일부 조기 유학생의 우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한 학생은 조기 유학을 적응하지 못해 이 학교 저 학교를 떠돌고 있는데 또다시 학교에서 내쫓길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그 학교에서 내쫓기면 더 이상 갈 학교도 없다고 한다. 영어식 수업을 따라가지 못할 뿐 아니라 술과 담배를 피우다 적발돼 교칙 위반으로 수없이 걸렸기 때문이다. “그럼 한국으로 돌아가면 되지 않느냐”는 말에 가이드는 고개를 저었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아버지가 가만히 놔두지 않을 것이라면서 무슨 일이 있어도 호주에서 학교를 다녀야 한다”면서 그 학생의 어머니가 읍소를 하더라는 것이다. 가이드의 말을 들으면 그 학생은 이미 더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유학 생활이 망가져 있는 상황이다. 귀국하는 방법 이외는 달리 대안이 없다는 것. 그런데도 그 학생의 아버지는 조기 유학의 실패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아들의 귀국을 결코 허락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는 아버지의 이기심이 자녀를 수렁 속으로 빠지게 하는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자녀의 의사를 고려하지 않거나 아무런 준비 없이 유학을 보내는 것은 아이를 사지(死地)로 내모는 것과 다름없다. 조기 유학생들의 시행착오를 보면서 어쩌면 가장 변하지 않은 사람은 다름 아닌 한국의 학부모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호주에서 역이민한 부모 이야기

호주 등 교육 선진국에서는 학부모가 신경 쓸 게 별로 없다. 수업 준비물은 거의 필요 없다. 스포츠는 학교에서 필수과목이어서 따로 수영 등을 배우지 않아도 된다. 스포츠는 서로 경쟁하면서도 단체를 위해 자신을 버리는 정신을 배울 수 있어 명문 학교일수록 이를 중시한다. 종목도 럭비나 크리켓, 하키, 수구, 조정 경기 등 다양하다. 우리나라 학생들은 체육시간에 축구나 농구, 달리기를 하는 게 고작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학부모가 할 일이 너무 많다. 아이의 수업 준비물을 챙겨야 할 뿐 아니라 학원이나 과외, 진학 정보를 꿰차고 있어야 한다. 체육시간에 운동을 시키지 않아 따로 태권도 도장이나 수영장 등에 아이를 보내야 한다. 피아노학원에다 미술학원에도 보내야 한다. 더욱이 해외 영어 연수나 조기 유학을 보내지 않으면 자녀교육에 열의가 없는 학부모로 몰리기 십상이다.

IMF 외환 위기 때 호주 시드니로 이민을 간 가족이 있다. 지난해 역이민을 온 이 가족은 최근 두 아들의 학업 문제로 다시 고민에 빠졌다. 이민갈 당시 7살, 2살이던 아이들은 중2, 초등 3년생이 됐다. 며칠 전 큰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와 어머니에게 잔뜩 부아가 난 얼굴로 말했다. “스포츠는 시키지도 않으면서 머리는 왜 스포츠머리로 깎게 해요? 또 체육시간에는 목 돌리기나 시키고 이상한 체조만 해요.”

아이는 학교 생활이 너무 실망스럽다면서 울먹였다. 초등 3년생인 작은아들도 형에 뒤질세라 학교에서 겪었던 일화를 이야기했다. “수업 준비물인 피리를 가져오지 않았다며 한 시간 동안 걸상을 들고 벌을 섰어요.” 그 말을 하면서 아이는 눈물을 훔쳤다. 어머니는 준비물을 제대로 챙겨주지 못한 게 미안했지만 하도 기가 차 말문이 막혔다고 한다.

이명박 정부가 이런저런 교육 개혁을 내놓고 있지만 학부모에게 오히려 부담만 가중시키고 있다. 영어공교육을 들고 나오자 오히려 영어 사교육이 더 극성을 부린다. 정부에서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것으로 충분하다며 더 이상 학원에 보내지 않아도 된다고 강조해도 이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세계의 명문학교를 가다

조기 유학 수요가 줄어들지 않는 이유는 다름 아닌 교육 시설과 교육 환경의 차이도 한몫한다. 등록금이 좀 비싸도 학교에 보내는 것으로 학부모의 역할이 끝나는 교육 선진국과 달리 우리나라 학부모들은 하나에서 열까지 아이를 뒷바라지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는 이런저런 교육 시스템을 재정비하자면 시일이 많이 걸리겠지만 지금이라도 하나씩 제도적으로 보완해 선진교육 시스템을 따라잡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교육 환경이 좋은 외국으로의 조기 유학은 그치지 않을 것이고 조기 유학 붐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이다.

브리즈번(호주)ㅣ최효찬〈객원기자·자녀경영연구소장〉 romai@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