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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 ‘40대 역할론’ 지금도 유효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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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6세대에 밀리고 밀리니얼 세대에 치이는 2020년의 40대

“71년 총선거에 신민당이 내세울 대통령 후보 지명전에 나서겠다. 당내 지명절차를 밟아 박정희씨에 대한 도전자로서 평화적 혁명의 기수가 된다면 나의 모든 것을 바쳐 싸우겠다.”

제7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김대중 후보가 1971년 4월 18일 서울 장충단공원에서 연설하고 있다. / 김대중도서관 제공

제7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김대중 후보가 1971년 4월 18일 서울 장충단공원에서 연설하고 있다. / 김대중도서관 제공

1969년 11월 8일 김영삼 신민당 원내총무(당시 만 41세·이하 만 나이)는 기자회견을 열고 대통령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이른바 ‘40대 기수론’을 공식화했다. 당시 경향신문은 김영삼의 출마 선언을 두고 “유진산·정일형·이재형 부총재나 고흥문 사무총장과도 사전협의가 없었던 것”으로 “당 원로급과의 충돌을 각오한 도전”이라고 평가했다.

당시 신민당의 노장들은 “단순히 나이를 따지는 생리적 교체는 무의하다”며 40대 기수론의 의미를 깎아내렸다. 유진산 신민당 총재(64)는 “정치적 미성년”이나 “구상유취”라며 견제했다. 하지만 김대중(45)과 이철승(48) 등이 연달아 신민당 대통령 후보 지명대회 출마를 선언하면서 40대 기수론은 대세가 됐고, 2차에 걸친 후보 지명전에서 김대중 의원이 대통령 후보로 선출됐다. 60대 이상이 잡고 있던 당의 주도권은 스무 살이나 젊은 정치인들에게 넘어갔다. 야당의 세대교체가 이뤄진 것이다.

김대중 후보는 47세인 1971년 대선에 나섰다. 1961년 5·16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박정희 전 대통령은 44세인 1962년 3월 23일 대통령 권한대행에 취임했다. 전직 두 대통령인 전두환이 1979년 12월 12일 군사반란으로 권력을 잡을 당시 나이는 48세, 쿠데타에 동참했던 노태우는 47세였다. 비정상적이고 부정한 방법이긴 했으나 이들은 상당히 젊은 나이에 쿠데타를 일으킬 만한 힘을 손에 쥐고 있었다.

김대중 의원과 김영삼 의원이 1970년 9월 1일 신민당 대통령 후보 지명 임시 전당대회에 참석하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김대중 의원과 김영삼 의원이 1970년 9월 1일 신민당 대통령 후보 지명 임시 전당대회에 참석하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1980년대는 산업화 세대로 불리는 1940년대생이 40대에 진입한 시기이다. 이들은 4·19혁명의 주역이자 고도성장을 주도했던 세대이다. 80년대를 오롯이 40대로 보낸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대표적이다. 1990년대에는 ‘반공세대’이자 베이비부머로 불리는 1950년대생이 40대에 들어섰다. 문재인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 홍준표 의원 등이 대표주자라고 할 수 있다. 2000년대는 ‘386’세대가 사회 주도세력으로 변모하던 시기이다.

2020년판 ‘40대 기수론’ 힘 받을 수 있을까

2010년 이후 1970년대생이 40대에 들어섰지만 과거의 선배 ‘40대’와 달리 정치·경제에서 주도권을 발휘하지는 못하는 모양새이다. 지금의 40대는 위로는 ‘586’이 된 386세대에 밀리고, 아래로는 밀레니얼 세대에게 치이는 낀세대로 평가받는다. 대선 후보는커녕 40대 국회의원도 소수에 불과하다. 올해 출범한 21대 국회의원의 평균 연령은 54.9세이다. 55.5세였던 20대 국회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평균 연령이 높다. 40대 국회의원의 수는 300명 중 38명이고, 30대 이하는 13명에 불과하다.

정치나 경제적 측면에서 현 40대가 차지하는 영향력은 과거 세대에 비해 떨어진다. 평균 기대수명이 증가한 것이 주요 원인으로 분석된다. 1960년 55.4세에 불과했던 한국의 기대수명은 2017년 82.6세로 늘었다. 평균 초혼 연령은 1960년 25.4세(남자 기준)에서 2019년 33.3세로 늦춰졌다. 결혼만 비교하면 지금의 30대가 1960년대의 20대의 경험을 하는 셈이다.

이런 ‘늘어짐’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최성수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전반적으로 우리뿐 아니라 모든 사회가 수명연장에 따른 노령화로 청년기가 길어지고, 노동시장 진입과 정치에 입문하는 시기가 늦어지고 있다”면서 “30대 초반이 매우 어려 보이는 것이 느낌만 그런 것이 아니라 문화·제도적으로 그렇게 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사회 행위 자체가 지연되면서 취업·결혼·양육이라는 성인기의 지표들이 과거와 달리 30~40대에 본격적으로 나타난다.

최 교수는 “학계에서도 80년대 학번은 30대에 교수가 돼서 40대엔 상당한 위상을 가졌는데 90년대 학번인 경우 아직도 소장파 대우를 받는다”고 말했다. 그는 “인구학적 변동과 역사적 맥락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라 누굴 탓할 순 없지만, 사회가 지나치게 노화하지 않도록 젊은 세대가 열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판을 깔아주고 그들에게 책임질 만한 일을 맡겨 경험을 쌓게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금의 정치 시스템이 차세대 지도자를 키우는 데 우호적이지 않다는 비판도 있다. 손호철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는 “40대 기수론을 주창한 김대중·김영삼씨가 본인들은 70대까지 하고 밑에서 나오는 새로운 리더십의 성장을 오히려 눌러왔다”며 “유진산씨를 비판적으로 보지만 결국 40대 기수론을 받아들여 뛰어난 정치인이 성장할 토대를 마련한 긍정적인 면이 있다”고 말했다. 손 교수는 “586만 해도 정치권에 들어온 지 20년에 접어들었는데 후배들에게 길을 내주고 젊은 정치인을 키우려고 노력하는가에 대해서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세력화 실패한 40대, 문화에선 활약

민경배 경희사이버대학교 미디어영상홍보학과 교수는 지금의 40대가 윗세대인 586보다 오히려 20·30세대와 더 비슷한 성향을 띤다고 봤다. 민 교수는 “개성이나 자아의 실현 욕구가 강하고, 소비문화를 주도하고 그러면서 동시에 사회에 진출할 때는 IMF 사태로 취업난을 맞았다는 점에서 지금의 밀레니얼 세대와 유사하다”면서 “386세대가 이념에 경도됐다면 다원주의에 기반을 둔 가치를 추구한 세대라는 점에서도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념이 아니라 복지·주택 정책 등 경제적 이해관계에 따라 지지를 옮긴다는 점에서 합리적 선택을 하는 유권자, 소비자로서의 유권자라는 특징이 있다고도 지적했다. 그러면서 지금의 40대가 정치적 세력화에 실패한 첫 세대라고 평가했다. 민 교수는 “X세대로 불린 40대는 20대 초반엔 개성과 개인주의에 경도됐고, IMF를 맞으면서는 각자도생의 길을 걷게 되면서 386세대와 달리 세대가 세력화할 수 있는 연대의 경험을 갖지 못했다”고 말했다.

IT 분야도 마찬가지다. 50대 이재웅·이해진은 인터넷 초창기에 다음·네이버 등을 일구며 1세대 창업가가 됐다. 20~30대는 본격적인 모바일 전환기에 사회에 진출하며 스타트업 문화를 주도하고 있다. 40대는 전문경영인 혹은 중간관리자 역할에 그치고 있다. 다만 주요 엔터테인먼트 기업의 수장들이 40대라는 점에서 대중문화 영역에선 영향력이 크다고 볼 수 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책·경제 분야에서 40대 역할론을 강조했다. 386세대가 민주화엔 기여했으나 상대적으로 사회현상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결과를 예측하는 능력을 쌓는 데는 소홀했다고 지적했다. 현 정부 정책을 주도하는 인물들이 정책의 예상되는 효과를 면밀히 검토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그러면서 “이젠 지금의 40대가 움직여야 할 때이고, 사회의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손호철 교수는 “40대 정치인이 몇명 되지 않는다. 스스로 싸워나가면서 결국 젊은 정치인으로서 자기 의제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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