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 이야기]‘포스트 86세대’ 40대에도 기회가 올까

윗세대의 기회 독점으로 정치·사회 주도권 잡기 쉽지 않아

“예전부터 궁금했던 문제다. 40대 포스트 86세대의 진보성은 모든 데이터에서 일관되게 나온다. 굳이 가설을 세운다면 2010년 전후가 인터넷의 진보성이 두드러지던 시기였다. 그때 이 사람들이 대체로 30대 전반에 있던 사람들이고, 그걸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고 생각할 수는 있다. 하지만 한 세대 전체가 데이터마다 두드러지게 나타날 정도로 그 영향이 컸냐고 생각하면 그 부분이 잘 설명되진 않는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의 말이다. 각종 데이터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되는 ‘40대의 진보성’을 설명할 가설이 딱히 없다는 것이다.

2017년 5월 3일, 경남 진주시 촉석로 차없는 거리에서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지지자들의 환호에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 권호욱 기자

장기 386시대. 지난 2012년 무렵부터 주간경향 지면을 통해 제기한 가설이다. 한국사회의 인구구조 압력과 네트워크 기회구조상, 정치·경제, 사회·문화의 각 영역에서 활약하고 있는 86그룹이 기득권 그룹에 일단 올라서게 되면 세대지배가 장기화될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긍정적인 미래전망이 아니다. 87년 6월 항쟁과 노동자 대투쟁의 경험을 통해 형성된 이들 세대네트워크의 기회독점이 생물학적인 은퇴 시점을 넘어서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기 때문이다. 즉 거시적인 국가권력의 최상층부부터 경제활동이나 미시적인 생활영역까지 제론토크라시(노인지배 현상)가 이들이 70대나 80대가 될 2030년대나 40년대까지 계속 갈 것이라는 예측이었다. 촛불혁명이 있었고, 새로 탄생한 정권의 핵심부는 학생운동 경험이 있는 86그룹이 등용됐다. 예측대로라면 이것이 끝이 아니라 이제 막 장기 386시대의 서막이 열린 참이다.

이제 막 서막이 열린 ‘장기 386시대’

지난해 조국 대전 국면에서 주목받은 것은 이철승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가 펴낸 책 <불평등의 세대>였다. 장기 386시대에 접어든 것은 정치권력만이 아니었다. 경제권력과 노동시장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문제였다. 이 교수는 보다 근원적으로 ‘벼농사 시스템’으로 상징될 수 있는 동아시아적 생산-축적 시스템의 결과로 이 세대 간의 착취 내지는 불평등이 재생산된다고 주장했다. 사회의 전 영역에서 86그룹의 세대 지배 현상은 어떻게 가능할까. 다른 세대, 구체적으로 바로 밑의 포스트 86세대(1970년대생)와밀레니얼 세대(1980년대생)의 용인이 필요하다. 말하자면 86 주도의 세대동맹에 아랫세대들의 지지와 동의가 전제되어야 한다. 이런 시각에 비춰본다면 현재 여러 데이터를 통해 확인되는 40대의 진보성은 역설적이다. 사회에 진출할 시기에 터진 “IMF 외환위기로 도전기회도 적었고, 주도권 역시 제대로 행사해본 적 없을 뿐 아니라 윗세대의 기회독점으로 뒤집을 가능성도 상대적으로 많지 않은 세대”(전병유 한신대 교양과정 교수·경제학)이기 때문이다. 86그룹이 퇴진한다고 하더라도 시기적 주도권은 그 아랫세대들, 우석훈 교수 등이 명명한 ‘88만원 세대’의 엘리트 그룹에 돌아갈 가능성이 많다.

“내가 386 담론을 비판한 이유는 현재의 50대에서 저 담론이 지칭하는 진보적 지향을 갖는 정치엘리트는 실제 연령대 내의 작은 섬에 불과한 존재들일 뿐이기 때문이다. 나머지 50대 다수는 60대에 비해서는 분명히 진보적인 것은 맞는데, 밑의 30·40대나 20대에 비해 정치성향이나 가치지향이 특별히 진보적이라고 볼 수 없고, 민주당 지지 역시 상황에 따라 굴곡이 나타난다.”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의 말이다. 지난해 말 발표한 논문에서 그는 조국국면에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언론의 각광받았던 386 기득권 담론은 386 코호트에 대한 분석이라기보다는 고도로 정치화되고 이념화된 암시적 담론정치의 무기가 되었다고 비판했다. 신 교수의 말이다. “조사를 해보면 현재 정치성향에서 진보성향이 가장 강한 것은 30대다. 그런데 지금의 30대가 20대 시절 들었던 이야기가 20대가 투표에 참여하지 않아서 보수 정권이 탄생했다는 ‘20대 개새끼론’이었다.” 어떤 시점에 나타난 특징이 그 연령대에 일반적인 특성인지, 지속적인 세대특성인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다.

신 교수도 현재의 30·40대의 경우 최근 10년 이상 정치성향이나 가치·이념성향에서는 상당히 일관되게 강한 진보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한다. 왜일까. 신 교수에 따르면 세 가지 원인이 있다. 첫째, 이 세대는 민주화 이후 정치적 사회화를 겪은 첫 세대다. 현재 40대의 제일 위에 있는 사람들이 90년에 성인이 된 인구층이다. 정치의식과 지향이 형성되는 가장 중요한 생애단계를 민주화 이후에 겪은 첫 세대다. X세대, 신세대, 서태지 세대 등의 이름이 붙은 이 세대는 세대적 가치문화 특성이 정치적으로 진보성향이다. 둘째, 이 세대는 1990년대부터 시작된 정보화의 첫 세대이기도 하다. 사실 그 측면에서는 현재의 30대가 진정으로 첫 세대인데, 지금의 40대는 뭔가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기운을 느끼며 성공한 세대다. 현재의 40대는 성인이 되자마자 고도화된 정보사회의 여러 매체를 통해 정치에 관한 지식이 방대하게 축적된 세대다. 셋째, 참여경험이다. 2002년부터 시작된 촛불집회에 개인적이거나 온·오프 커뮤니티 단위에서 참여하면서 ‘우리가 미니까 이뤄진다’는 것을 경험한, 정치적 효능감을 경험한 세대라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내가 만든 정권’”

가치와 정치지식과 담론, 참여경험과 효능감. 여기에 덧붙여 국면적 상황이 있다. 신 교수의 말이다. “집권 초부터 집권 후반기인 4년차까지 안정된 지지를 지킨 대통령은 이때까지 없었다. 45% 내외의 지지율을 뒷받침하는 것이 30·40대인데, 그렇다고 이들의 지지가 맹목적인 것은 아니었다.” 신 교수가 제시하는 증거는 지지율이 흔들렸던 두 번의 짧은 국면이었다. 첫째는 올해 2월의 신천지 사태가 터지기 직전 미래통합당 창당 다음 주의 1~2주 간이었고, 또 하나는 부동산이 이슈가 되었던 8월이었다. “집권당이 정치 과잉화된 반면 보수 야권이 민생문제를 적극 제기하는 시기였다. 모두 코로나 사태가 커지면서 덮어졌다.” 중요한 것은 이 두 사건의 함의다. “386이 주도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이들에게 선택되어진 것이다. 현재의 30·40대가 주 참여자였던 촛불집회에서 6개월 동원이 없었으면 정권교체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상당히 일관되게 보이는 70·80년대생들의 가치와 이념성향은 현재의 민주당이 친화성을 가지고 있다. 이들을 X세대, 서태지 세대라고 했는데 DNA부터 개인주의화된 세대인데 이들이 뼛속의 문화를 가지고 386의 정치엘리트를 흠모하고 따르느냐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 논리적으로 일관되게 생각하면 이 사람들이 문재인 정부를 추종하거나 권위를 인정한다기보다 ‘내가 만든 정권’이라는 의식이다. 그런데 이 ‘친화성의 고리’를 흔들어놓을 정도의 보수 정당의 자기혁신이 없다.” 이것이 현재의 30·40대가 문재인 정부에 실망하더라도 보수 야권에 대한 지지로 이어지지 않는 비밀이라는 것이 신 교수의 설명이다.

386세대 진보성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오세제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위원은 이렇게 덧붙였다. “86세대에 대한 연구보다 포스트 86에 주목하는 연구가 미개척지인 것은 사실이다. 정치적 리더십도 마찬가지다. 40대가 자기의 리더십, 자기 정치를 못 했다는 것은 비극이다. 본인들의 노력 부족이라기보다 정치적 기회를 위에서 부여해주지 않았기 때문인 것은 사실이다. 지금 대로라면 그 세대를 건너뛰고 류호정·장혜영 의원 같은 다음 세대의 상징적인 인사들이 86세대의 배턴을 이어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직 속단하기는 이르다. 81학번이면서 이번에 초선에 당선된 사람도 있지 않나. 만약 86세대가 한국사회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끈다면 이것은 특정 세대의 실패가 아니라 한국 민주주의의 실패가 될 걸로 본다. 86세대도 과거에서는 거리에서 몸으로 싸우는 역할을 한다면 이제는 스스로 성찰하고 후배들과 청년들을 생각하면서 배포 있는 사회적 연대를 이뤄낼 수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닐까.”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