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의 눈] 돌 머리 하나에 새 머리가 일곱](https://img.khan.co.kr/news/2009/12/14/20090929001466_r.jpg)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이 지난 12월 10일 “내년까지 4대강 공정의 60%를 끝내겠다”고 발언한 데에 이어 이튿날 “2011년 장마가 시작되기 전까지 모든 공사를 끝내겠다”고 밝혔다. MB(이명박)의 임기 내에 끝내겠다고 하더니 거기서 다시 공기를 무려 1년 반이나 더 단축하겠다는 얘기다. 이 일을 충분히 저지르고도 남을 사람들이다. 포크레인으로 강바닥 헤집어 놓는 게 뭐 그리 기술적으로 어려운 일은 아니잖은가. 그저 포크레인의 날카로운 발톱에 수난을 당할 4대강이 불쌍할 뿐이다.
한국과 같이 근대화에 뒤처졌던 나라에서는 급속히 세계의 흐름을 따라잡아야 했다. 속도전에 대한 MB 정권의 집착은 초기산업화의 후유증이다. 이 증세는 꽤 먹고 살 만해진 지금까지도 한국인들의 신체에 ‘빨리 빨리’ 증후군으로 남아 있다. 흥미로운 것은 남한과 북한의 속도전 양상을 비교해 보는 것이다. 북한의 속도전이 100%, 200%, 300%같이 목표량의 초과 달성을 강조한다면 남한의 속도전은 3개월, 6개월, 12개월같이 공기의 단축을 강조한다.
원래 발전은 끊임없는 가속의 과정이기도 하다. 산업화와 더불어 자연적 속도는 기계적 속도로 변화했다. 신체의 속도전에 대한 취향은 이 정권의 마인드가 딱 이 시기에 고착됐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종의 심리적 퇴행 현상이다.
정보화와 더불어 기계적 속도는 전기적 속도로 진화한다. 즉 속도 관념이 신체를 가속화하는 ‘외연적 속도’에서 정신을 가속화하는 ‘내포적 속도’로 바뀐다는 얘기다. 이런 맥락에서 빌 게이츠가 낸 책의 제목은 얼마나 시사적인가. ‘생각의 속도.’
외연적 속도는 눈에 보이지만 내포적 속도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예를 들어 한 청년이 컴퓨터 앞에서 뭔가 구상하고 있다고 하자. 우리 각하의 눈에는 그가 그저 놀고 있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반면에 한 청년이 강가에 나가 삽질한다고 하자. 우리 각하는 그가 땀 흘려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말할 것이다. 언젠가 각하는 “요즘 젊은이들이 에어컨 바람 나오는 곳에서만 일하려고 하지 밖에 나가 땀을 흘리려 하지 않는다”고 질타한 적이 있다. 그의 말 속엔 이런 깊은(?) 뜻이 있다.
“IT는 고용 창출을 못한다.” 각하의 굳은 신념 덕분에 지난 정권에서 세계 3위까지 올랐던 한국의 IT 경쟁력은 지난해에 8위로 떨어지더니 올해에는 드디어 16위로 추락했다. 대신에 창출된 고용은 6개월짜리 인턴 자리와 4대강에 투입될 건설일용직. 21세기에 한국은 머리 대신 다시 신체를 쓰는 사회, 도대체 생각이라는 게 필요 없는 사회가 됐다.
4대강이 죽어간다고? “국가별 수질 지수는 우리나라가 122개 국가 가운데 8위를 차지해 수질은 상대적으로 양호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토해양부 자료다. 물이 부족하다고? ‘하루에 1인당 450리터’를 쓴다고 전제하면 아마존강을 통째로 옮겨 놔도 물이 부족하겠다. 보를 건설해 수질을 개선하겠다고? 고인 물은 썩는다는 상식조차 무시하는 이 농담은 그냥 지나가는 개들의 웃음거리로 던져 주자. 홍수를 방지하겠다고? 2008년 4대강의 홍수 피해는 전체 피해 가운데 0.5%에 불과하다.
4대강 사업은 대체 왜 해야 하는가. 그 이유를 합리적으로 설명해 주는 ‘머리’는 없다. 존재하는 것은 그저 그렇잖아도 설계와 시공을 함께해야 하는 공기를 1년 반이나 더 단축할 준비가 되어 있는 빠릿빠릿한 ‘몸’들 뿐이다. 국토해양부 장관은 이런 4대강 사업을 “1석 7조”로 불렀다고 한다. 이 기사를 읽는데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돌 머리 하나에 새 머리가 일곱. 아, 1석 7조는 이 정권의 국무회의 이름이런가?
<시사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