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후]대머리는 웃음거리가 아닙니다

모발이식 수술을 받은 지인의 두피를 본 적이 있습니다. 머리 뒷부분에서 모낭을 채취해 탈모를 시작한 이마와의 경계선을 메꿨더군요. 수술한 지 얼마 안 됐을 때는 두피에 상처처럼 남은 흔적이 보였지만 다 아물고 나니 감쪽같았습니다. 수술 전부터 가발을 맞추는 게 더 나을지 고민하던 지인은 잃었던 모발을 다시 찾은 느낌이어서 만족스럽다고 했습니다. 물론 수술 이후에도 탈모가 계속될 수 있으니 예방 차원에서 꾸준히 탈모약을 복용해야 했습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탈모약에도 건강보험을 적용해 탈모인들의 아픔을 덜겠다고 나선 한 대선후보의 공약이 화제를 뿌렸습니다. 건보 재정을 투입하는 것이 옳은지, 그른지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실제 탈모인들의 삶을 알아야 사안의 중심을 잡을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서울 종로5가에 있는 약국과 의원 주변에서 무작정 탈모인들을 만났습니다. 알음알음 취재 과정에서 접촉한 탈모인 중에는 언뜻 봐서는 탈모가 눈에 띄지 않는 이들도 많았습니다. 탈모 조짐을 보이자 발 빠르게 약을 먹기 시작해 추가 진행을 막으려는 이도 있었고, 아예 수술을 받은 이도 있었습니다. 탈모약 복용이 부담스러워 가발을 쓰고 다니는 60대 남성도 있었습니다. 기사 흐름과는 조금 어긋나 그의 이야기를 쓰지는 못했지만, 여름에도 가발을 맞춰 쓰고 다녀야 하는 고충만큼은 생생히 들을 수 있는 값진 경험이었습니다.

내심 부끄러워졌습니다. 남의 탈모를 놀린 적이 있어서입니다. ‘대머리’를 웃음거리로 삼는 일은 지금도 흔합니다. ‘외모로 남을 평가해선 안 된다’는 목소리가 갈수록 늘고는 있지만 유독 탈모를 조롱하고 비하하는 움직임은 여전합니다. 왜 그럴까 곰곰 생각해봤습니다. 대부분의 탈모가 중년 이상의 남성에게 나타난다는 인식이 있었고, 이들이 대체로 연령으로든 성별로든 약자의 위치에 놓여 있지 않기 때문에 그랬던 것 아닐까 싶습니다. 달라져야죠. 노년이든 청년이든, 남성이든 여성이든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라도 외모로 차별을 해선 안 되니까요.

탈모약 공약도 외모로 불이익을 받아선 안 된다는 인식의 연장선상에서 나왔다고 봅니다. 건보 재정의 한계로 더 심각한 질병을 우선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반대 논리 역시 타당합니다. 결국 해결책을 찾으려면 사회구성원들이 함께 머리를 맞댈 수밖에 없습니다. 당장 탈모인과 비탈모인의 경계를 허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요.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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