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후]‘미명이’가 사라지는 그날을 기다리며

공식적인 이름도, 성도 없는 아이들을 기사에서 어떻게 칭해야 할지 많이 고민했습니다. 태어난 이후 출생신고가 제때 되지 않아 행정과 제도의 밖에 사는 출생미등록 아동의 이야기입니다. 한 보육원 선생님이 출생미등록 아동은 행정 문서에서 ‘이름 없음’, ‘미명’, ‘성명 미상’, ‘가명’으로 처리된다고 말씀해주셨던 게 떠올라 이들을 ‘미명이’로 불러봤습니다. 기사를 통해 이 아이들의 신원이 밝혀져선 안 되기에, 익명 혹은 가명으로 두루뭉술하게 서술할 수밖에 없던 상황에서 ‘미명이’는 출생미등록 아동을 통칭할 대안으로 괜찮아 보였습니다. 찾아보니 사전에는 등록되지 않은 단어입니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출생신고 시기를 지나쳐버린 아이들의 사연은 제각각이었지만, 크게 보면 동일했습니다. 모두 어른들 때문이었습니다. 혼외자든 미혼모의 아이든 간에 어른들이 조금만 신경을 더 썼다면 이 땅에서 이름도 없이 살아가는 아이들의 불행은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요. 세상에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사람이 없듯이 출생신고에서 누락되고 싶어 누락된 아동은 없습니다. 부모의 손에만 출생신고를 맡기지 말고 국가가 적극 개입한다면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는 아동이 지금도 있습니다.

기사를 마감하던 지난해 12월 30일에도 또 다른 ‘미명이’ 자매가 제주도에서 발견됐습니다. 보도를 보니 “이들이 출생신고되지는 않았지만 학대를 당한 정황도 없다”는 경찰 관계자의 언급이 실렸더군요. 당장 보이는 멍이나 상처가 없다는 뜻에서 한 말이었겠지요. ‘육체적 학대’가 없었다고 출생신고조차 하지 않은 어른들의 행태가 용서받을 수 있는 걸까요. 이는 명백한 ‘제도적 학대’입니다. 주민등록번호가 없는 삶, 친구들이 다 수학여행에 갈 때 보험가입이 안 된다는 이유로 가지 못하는 삶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쉽습니다. 행정상 ‘없는 존재’라서 장애인으로 등록하지 못하는 삶, 남들 다 받는 재난지원금 신청조차 할 수 없는 삶은 또 어떤가요.

출생미등록은 법과 제도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각종 복지에서 소외되는 건 물론이고 ‘나는 누구인가’라는 근원적 질문과 맞닥뜨려야 합니다. 살아 있는데, 없다고 치부되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의료기관에서 지자체에 출생 사실을 통보하게끔 하는 ‘출생통보제’ 법안을 국회가 논의 중입니다. 법안 통과로 아동인권이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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