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칼럼]4차 산업혁명, 과연 실체가 있는가?

지난 9월 4차 산업혁명 위원장에 게임업계, 인터넷업계, 벤처캐피털업계에서 상당한 인지도를 가진 장병규 블루홀 이사회 의장이 위촉돼 주목을 받았다. 최근 국내에서는 정부, 미디어, 대기업을 중심으로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관심이 높으며, 관련 서적도 줄지어 출간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보다 4차 산업혁명 경쟁력이 높은 국가들을 포함해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조차 생소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4차 산업혁명의 대표적인 주창자인 클라우스 슈밥은 “4차 산업혁명의 새로운 기술들로 인해 비약적인 발전이 이뤄지고 있고, 이를 통해 모든 국가의 산업과 사회가 큰 충격에 빠질 정도로 변화하고 있으며, 앞으로 더욱 커다란 변화가 예상된다”고 주장한 바 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이에 동의하는 건 아니다. 일부 전문가들은 과연 4차 산업혁명의 실체가 있는지, 과장된 마케팅 용어가 아닌지 의문을 제기한다. 실제로 4차 산업혁명을 구성하는 핵심 기술과 시기에 대해 논쟁이 있다. 또한 정보혁명, 지식혁명을 의미하는 3차 산업혁명조차 4차 산업혁명이 부각되면서 등장한 용어라서 1차·2차 산업혁명과는 달리 학술적으로 정착된 용어가 아니다.

로봇 페퍼와 함께한 마윈(알리바바), 손정의(소프트뱅크), 궈타이밍(폭콘)./scmp.com

이미 4차 산업혁명이 시작됐다고 주장하는 이가 있는 반면에, 현재는 3차 산업혁명의 연장선상에 있을 뿐 4차 산업혁명은 실체가 없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노스웨스턴대 로버트 고든 석좌교수는 “소위 4차 산업혁명은 3차 산업혁명의 연장선에 있을 뿐이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이라고 하는 인공지능, 로봇은 오래전에 등장한 기술이다. 변화는 매우 느리게 일어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이라 할 만한 새로운 건 없다”고 주장했다.

4차 산업혁명의 실체와 타당성은 학술적으로 정착된 1차·2차 산업혁명의 조건을 기준으로 삼아 검증해볼 수 있다. 기존 산업혁명은 크게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조건을 만족한다. ①산업혁명을 이끄는 새로운 핵심 기술이 존재하는가? ②그러한 기술이 기존 산업에 상당한 변화를 유발하고 궁극적으로 산업구조에 변화를 가져오는가? ③경제적 변화뿐만 아니라 사회·문화적으로도 명백한 변화를 가져오는가?

이를 4차 산업혁명에 대입해보자. 먼저 핵심 기술에 있어서, 4차 산업혁명을 구성하는 수많은 신기술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핵심을 꼽자면 인공지능과 로봇 기술이다. 혹자는 두 기술이 등장한 지 오래된 기술이라 새로울 것이 없다고 주장하지만, 최근 들어 두 기술은 빅데이터 및 강력한 컴퓨팅 파워를 통해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으로 진화하고 있다.

또한 두 기술은 모바일, 의료, 자동차 등을 비롯해 여러 산업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거나 그럴 예정이며, 서로 연결되면서 산업 전반에 연쇄적인 변화가 발생하고 궁극적으로 산업구조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단지 경제 시스템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적으로도 일자리 부족, 로봇세, 기본소득의 도입, 일하는 방법의 변화, 교육 시스템의 변화, 인간과 인공지능·로봇의 공존 등 인류는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이슈와 변화에 대비해야 하는 상황이다.

IT 칼럼 구독

이처럼 4차 산업혁명의 실체는 존재하며 다가올 미래를 부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문제는 용어에 현혹돼 과도한 이미지 소비만 하고 그 본질과 필요한 체질 개선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빠지는 함정이다. 이번에는 다르길 바란다.

<류한석 소장 (류한석기술문화연구소) ryu@peoplewa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