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칼럼]무선 충전이 애플의 ‘간택’을 받다

혁신의 대명사가 된 애플. 선구자라기보다는 세례자에 가깝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애플이 아직 간택하지 않은 기술은 시장에서의 비중 덕에 결국은 주류가 될 수 없다는 잔혹한 현실 탓이다.

애플은 늘 신기술의 도입에서는 진보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보수적인 면을 많이 보였다. 이유는 여러 가지일 것이다. 기술의 완성도가 자신들이 정한 기준에 부합하지 않은 경우도 있겠고, 배급해야 할 물량의 규모가 다른 탓에 부품의 수급을 통제하고 싶은 이유에서일 수도 있다. NFC처럼 자신의 비즈니스 모델을 위해 기술 자체는 어찌 탑재하더라도 다른 앱은 못쓰게 하기도 한다.

결국 애플은 삼성 등 경쟁사의 폰들이 이미 진작에 채택한 많은 기술을 도외시해 왔다. 하지만 지난 12일에 발표된 아이폰 8과 아이폰 X의 경우 몇몇 해금(解禁)이 있었다.

9월 12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의 애플 신사옥에서 열린 행사에서 공개된 애플 아이폰 X과 무선충전장치./애플코리아 제공

아이폰 X(텐)은 OLED를 ‘슈퍼’ 레티나 디스플레이라 칭하며 채택했다. 그들은 OLED의 일반적 장단점을 언급하며, 단점으로 지목되던 색 재현성 등 여러 제약조건이 해소될 수 있었기에 기념작 아이폰 X에 채택되었다고 이야기한다. 그럴 듯한 변명이다.

아이폰 8과 X의 후면이 유리로 바뀌면서 전격 채택된 무선충전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국산 고급기종들엔 당연히 있었던 무선충전이 이제야 아이폰에 적용되었다. 그것도 삼성 등에 이미 몇 년 전부터 채택된 Qi(치) 표준으로.

무선충전 시장은 벌써 흥분 중이다. 사실 Qi의 WPC(무선 전원 컨소시엄)와 경합하던 표준도 있었지만, 아무래도 그 승부는 끝난 듯해 보인다. WPC의 뒤를 쫓던 에어퓨얼 연합(AirFuel Alliance)은 이미 그 자체가 또 다른 연합체가 합쳐진 거대 연합. 하지만 연합의 운명은 위태로워졌다. 9월 12일 에어퓨얼 측은 특별성명을 발표하며, 무선충전의 세계에 애플이 참여한 것을 환영하며 앞으로 에어퓨얼과 같은 대안에도 관심을 기울이기를 촉구했다. 안쓰러운 일이다.

이제 마지막 희망은 인텔과 같은 PC 진영에서 에어퓨얼을 밀어주는 것뿐이지만, 인텔은 표준 전쟁에서는 그리 줄을 잘 서는 편은 아니다. 와이브로나 타이젠 등을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그렇다고 애플이 삼성처럼 Qi도 에어퓨얼도 모두 지원하는 저자세를 취할 리도 없다.

이미 실제로 시중에 풀린 무선충전 장비는 Qi 쪽이 10배는 더 많다고 한다. IKEA의 경우 작년부터 자사의 가구에 무선충전 기능을 본격적으로 밀어넣고 있는데, 모두 Qi다. 훌륭한 베팅이었던 셈이다.

애플의 인정을 받은 무선충전. 이제 본격적으로 시장은 개화될 것이다. 현대, 도요타 등 양산차 업체도 이미 달려들었다. 평면이나 틈이 있는 모든 곳에, 사람들을 잠시 머물게 할 만한 이유가 있는 모든 곳에 무선충전 공간이 파고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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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10년 전 아이폰이 등장하며 블루투스의 손을 꽉 잡자 비실비실하던 블루투스가 활짝 개화되었던 것처럼. 무선충전은 벌떡 일어서기 시작했다.

<김국현 IT칼럼니스트·에디토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