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치스크린]킹콩에게 멱살 잡힌 일본의 자존심

/ (주)미디어캐슬

제목 신 고질라

제작연도 2016년

제작국 일본

러닝타임 120분

장르 SF, 액션, 코미디

감독 안노 히데아키, 히구치 신지

출연 하세가와 히로키, 다케노우치 유타카, 이시하라 사토미

개봉 2017년 3월 9일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이번 주 개봉작 중에는 거대 괴수물 2편이 단연 눈에 띈다. 지난주 소개된 <콩: 스컬 아일랜드>와 오늘 소개하는 <신 고질라>가 그것이다. ‘킹콩’과 ‘고질라’는 단순히 공상과학물이나 괴수물이라는 특정장르를 넘어 영화역사 자체의 변화와 발전을 고스란히 반영하며 진화한 캐릭터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각각 미국과 일본을 대표하는 두 괴수가 매력적으로 관객들의 눈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당대의 선구적이고 실험적인 첨단 특수효과의 덕이 컸다. 하지만 이와 동반해 작품 저변에 적극적으로 담아낸 사회상과 주제의식은 거대한 허구의 생명체가 단순한 판타지나 상업주의 이상의 가치를 인정받게 만든 더 큰 가치이자 미덕이었다. 새롭게 제작된 두 편은 각자 자국에서도 개봉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리즈의 최신작이다. 동시에 점점 관습적인 복제로 함몰돼가던 속편들과의 연결고리를 과감히 잘라내고 전혀 새로운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는 공통점도 지니고 있어 이번 대결을 더욱 흥미롭게 만든다.

<신 고질라>는 이제껏 만들어진 -미국 자본으로 재편집되거나 새롭게 만들어진 영어권 작품들까지 포함한- 이전의 어떤 <고질라> 작품보다 이질적이다. 당연히 부각돼야만 했던 괴수는 주인공 자리에서 밀려나 파괴와 재앙을 몰고 오는 지저분한 혐오의 대상으로만 철저히 재규정된다. 대신 카메라는 정부 관료들과 서방의 정치적·경제적 혼돈을 잡아내는 데 집중한다. 그래서 <신 고질라>는 괴수영화라기보다 차라리 냉소적 현실풍자가 가득 찬 재난영화라 규정하는 것이 옳다. 애초 총감독을 맡은 <에반게리온>의 ‘안노 히데아키’란 이름에서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결과지만 작품의 완성도를 떠나 고질라 자체의 존재감 상실은 치명적이라 아니할 수 없다.

킹콩과 고질라가 진짜 맞붙어 싸운다면 누가 이길까? 한 화면 안에서 만난 두 괴수의 왕좌 쟁탈전은 이미 1964년에 치러졌다. 공식 <고질라> 시리즈의 세 번째 속편으로 만들어진 <킹콩 대 고질라>에서 제약회사 홍보를 위해 일본으로 수송된 킹콩이 때마침 빙산에 갇혀 있다 깨어나 고향으로 돌아온 고질라와 대결한다.

미니어처를 배경으로 슬랩스틱에 가까운 몸싸움은 펼치던 둘은 함께 바다 속으로 추락하는데, 홀로 물 위에 떠오른 킹콩은 고향 섬을 향해 헤엄쳐 멀어지며 영화는 끝이 난다. 굳이 승패를 따지자면 킹콩의 손을 들어줘도 무방할 결말이다. 점차 희미해지나 싶던 두 괴물의 생명력에 최근 맞불을 지핀 것은 미국 영화사 ‘레전더리 픽처스’다. 비교적 호의적인 평가를 이끌어낸 미국판 <고질라>(가렛 에드워즈 감독, 2014년)를 되살린 레전더리는 여세를 몰아 이번 <콩: 스컬 아일랜드>까지 화려하게 컴백시키는 데도 성공했다.

터치스크린

애초 그들의 목적은 최근 영화계에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멀티 유니버스, 또는 통합세계관 안에서 더욱 막강하게 부활시킨 두 괴물을 맞붙이는 것이었다. <콩: 스컬 아일랜드>의 마지막 쿠키 영상에는 이 둘뿐 아니라 원조 고질라 시리즈에 등장했던 다른 괴수들의 등장까지 노골적으로 예고한다. 일본영화의 한 줄기로 뚜렷한 개성이자 자긍심이었던 특촬물과 괴수물의 역사는 할리우드에 흡혈돼 더욱 거대하고 막강한 이종교배 괴물로 재탄생하고 있는 것이다. 현실에서도 킹콩의 승리가 분명해 보인다.

<최원균 무비가이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