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치스크린]‘샤말란 표 어벤져스’의 신호탄

제목 23 아이덴티티(Split)

제작연도 2016년

제작국 미국

러닝타임 117분

장르 스릴러, 판타지

감독 M. 나이트 샤말란

출연 제임스 맥어보이, 안야 테일러 조이, 헤일리 루 리차드슨, 베티 버클리

개봉 2017년 2월 22일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이번 소개는 어쩔 수 없이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으니 관람을 계획 중인 독자께서는 고려해 읽어주시길 바란다. 감독 M. 나이트 샤말란을 스타덤에 올린 작품은 아직까지도 반전(反轉) 영화의 대표로 언급되는 데뷔작 <식스 센스>(1999)다. 그러나 첫 작품이 안긴 기대 이상의 성공은 하늘이 선물한 축복인 동시에 이후 작품들의 개별적 평가를 방해하는 저주가 됐다.

꾸준히 개성 있는 작품들을 내놓았지만 관객들은 늘 기대에 못 미친다는 불만을 토로했고, <라스트 에어밴더>(2000), <애프터 어스>(2013) 같은 액션 대작들은 빈약한 완성도로 연이어 실패해 그의 연출 생명력은 다한 것처럼 보였다. 다행히 2015년 심기일전해 내놓은 <더 비지트>는 그가 과거 자신의 장기였던 소규모 미스터리로 회귀해 재기에 성공했다는 긍정적 평가를 이끌어냈다. 연장선상에서 발표한 신작 <23 아이덴티티> 역시 평단과 관객 모두가 호의적이다.

3명의 10대 소녀가 납치돼 밀실에서 깨어난다. 절친한 사이인 클레어(헤일리 루 리차드슨 분)와 마샤(제시카 술라 분)는 납치범을 제압해 탈출할 계획을 서두르지만 평소 학급에서 왕따 취급받던 케이시(안야 테일러 조이 분)는 좀 더 냉정히 행동해야 한다며 둘의 계획에 찬물을 끼얹는다. 한편 저명한 여류 심리학자 플레처 박사(베티 버클리 분)는 소녀 실종 뉴스와 늦은 시간 다급히 발송된 한 환자의 메일을 접하고 불길한 기운을 느낀다.

그녀는 다중인격, 즉 해리성 정체 장애가 정신적 혼란뿐 아니라 육체적 변화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이론을 완성해가고 있는데, 환자 중 한 명인 배리(제임스 맥어보이 분)가 최근 보이고 있는 미심쩍은 행동들은 그녀의 믿음과 두려움을 더욱 확고하게 만든다.

원제 <스플릿>을 버리고 선택된 한국형 제목 <23 아이덴티티>가 암시하듯, 주연배우 제임스 맥어보이는 한 몸에 23개의 인격을 가진 케빈을 연기한다. 다행히 극중 보여지는 인격은 그 중 8개뿐이지만 남녀노소를 넘나드는 쉽지 않은 인물을 노련하게 소화해낸 그의 재능은 자칫 산만해질 수 있었던 이야기가 일관성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몫을 차지한다. 범죄 스릴러처럼 시작해 점차 의외의 방향으로 흐르던 영화는 예상 밖의 장르 변이를 거쳐 마무리된다. 하지만 뚜렷한 반전이라고 말하기도 애매하고 그리 명쾌한 감흥으로 전환되지도 않는데, 마지막 에필로그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답이 나온다. 평범한 식당 안 TV에서 도주한 납치범에 대한 뉴스가 흘러나오고 사람들 속에 ‘던(Dunn)’이라는 이름표를 단 작업복을 입고 있는 브루스 윌리스의 얼굴이 비춰진다.

터치스크린

‘데이비드 던’이란 인물은 M. 나이트 샤말란이 2000년 연출했던 <언브레이커블>에서 브루스 윌리스가 연기한 주인공이다. 과연 던의 등장은 이 영화와 무슨 관련이 있을까? 이는 작품의 정체성을 표명하는 결정적 키워드이자 ‘샤말란 표 어벤져스’를 예고하는 힌트이다. <언브레이커블>이 샤말란 식의 슈퍼영웅의 탄생기였다면 <23 아이덴티티>는 평행선상에서 연장된 슈퍼 악당 탄생기다. 그의 작품성향과 개별의 이야기를 하나의 세계 안에서 충돌시키는 요즘 영화계의 유행을 상기할 때 충분히 가능한 추론이다. 실제 샤말란은 최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속편을 암시하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결국 이 작품이 던진 반전이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세속적’ 속편에 대한 암시다.

<최원균 무비가이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