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치스크린]‘정치적 불공정’ 없앤 킹콩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목 콩: 스컬 아일랜드

원제 Kong: Skull Island

감독 조던 보트-로버츠

주연 톰 히들스턴, 브리 라슨, 사무엘 L 잭슨, 존 굿맨, 토비 켑벨

상영시간 118분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개봉 2017년 3월 9일

아는 사람들은 알지만 킹콩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거대한 유인원의 이름은 킹콩이 아니라 콩이다. 킹(king)은 말 그대로 왕이다. 인류가 도달하지 못한 미지의 세계 해골섬의 진짜 왕. 1933년에 만들어진 오리지널 작품은 <슬픈 열대> 이전의 문화인류학 또는 민속지 연구의 오리엔탈리즘적 시각이 가득한 영화였다.

<로키호러픽쳐쇼>의 오프닝 주제가 가사로도 유명한 주연 페이 레이(영화상 캐릭터는 앤 대로우)는 영화 속에서 뉴욕 밤거리에서 길거리 캐스팅된 싸구려 배우였다. 해골섬 원주민들은 이 낯선 이방인들에게 무례하게도 앤을 내놓으라고 하고, 납치까지 한다. 오리지널 킹콩에서 서열은 백인남자-백인여자-등외의 원주민이다. 그리고 야수, 즉 콩은 자신의 신부(라고 쓰고 희생양으로 읽는다)로 명명된 백인 블론디 미녀의 가치를 알아차려 결국 그녀를 살리고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에서 떨어져 최후를 맞이한다. 끝. 넘어설 수 없는 서열을 넘어 사랑을 품었기에 괴물은 제거(죽음)당해야 한다.

2017년판 리메이크는 어떻게 다를까. <콩: 스컬 아일랜드>의 시대적 배경은 1973년이다. 베트남전에서 패배한 미군이 철수하면서 그때까지 미지의 섬으로 남아 있던 ‘해골섬’ 탐사임무를 맞게 된다. 오리지널 킹콩의 정치적 불공정함은 철저하게 교정된다. 콩의 파트너인 백인여성 위버(브리 라슨 분)는 더 이상 싸구려 밤거리의 여인이 아니다. 종군 사진기자, 정확히 말하면 반전의 사상을 품고 시사주간 <타임> 커버사진을 찍어온 특종기자다. 낯선 이방세계에서 온 사람들을 맞이하는 원주민들은 한마디 말도 하지 않지만 더 이상 야만인이나 식인 관습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득도한 도인들처럼 보인다. ‘콩’도 그냥 괴수가 아니다. 영화는 21세기에는 공상과학스토리에서도 추방된 ‘지구공동설’을 배경 세계관으로 끌어들이는데, 지구의 지배자는 인간이 아니라 거대괴수들이었고, 지구 안에 거주하는 최상위 포식자(apex predator)인 ‘스컬 크로울러’들에 맞서 세상을 지키는 수호자였던 것이다.

오리지널 영화의 주제의식인 세상 끝까지 뻗쳐 스펙타클을 추구하는 인간 탐욕에 대한 풍자와 고발은 베트남 전쟁에서의 패배에 대한 수치를 다시 콩과 스컬섬의 괴물들을 몰살시켜 만회하려는 패커드 중령(사무엘 잭슨 분)의 광기로 정확하게 치환된다. 흥미로운 것은 영화가 참조·인용하고 있는 20세기의 위대한 영화들이다. 이를테면 패커드 중령의 헬기부대가 폭탄과 네이팜탄을 해골섬에 뿌리는 시퀀스는 <지옥의 묵시록>(1979)의 그 유명한 바그너-발퀴레의 기행 장면을 오마주했다. 바그너 대신 이들이 ‘도발’에 사용한 음악은 블랙 사바스의 <파라노이드(paranoid)>였다! 말 그대로 정신분열병적 광기를 담은 미친 짓이었으니 이 경우가 더 직설적이다.

터치스크린

인상적이었던 것은 워너브라더스, 레겐더리 픽처스의 로고 다음 뜨던 텐센트 유한공사의 로고다. 중국 자본이 투자됐으니 중국 시장에서의 흥행을 염두에 두는 배역이 있어야 한다. 영화의 보도자료에도 나와 있지 않은데, 징텐이라는 중국 여배우가 영화에서 ‘사실상 아무런 중요한 역할도 하지 않는’ 조연으로 나온다. 엔딩 자막에서 <고지라>(1956)를 필두로 일본에서 성행했던 괴수물 캐릭터에 대한 언급이 나와 의외였는데, 자막이 다 올라간 뒤 보너스 영상에서 그 의문이 풀리게 되니 자막 올라간다고 섣불리 일어서진 말자. 후속작 제작에 대한 정보는 아직 확인되지 않는데, 어쨌든 이후에 나올 시리즈가 과연 어떻게 전개될지 기대된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