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의 책갈피]무신론자의 ‘변심’

“반세기가 넘도록 무신론의 대표적인 옹호자로 활동했던 영국의 철학 교수가 마음을 바꾸었다. 신을 믿게 됐다.”(2004년 12월 9일 AP통신). 무신론 사상가들은 경악했다. 충격을 가라앉힌 후 그들은 주로 고령을 원인으로 주목했다. 죽을 때가 다가오니 천국에 가고 싶은가 보다 하는 비아냥거림도 있었다.

<존재하는 신 : 신의 부재는 입증되지 않는다> 앤터니 플루 지음·홍종락 옮김·청림출판 펴냄

젊은 시절 무신론자 앤터니 플루는 ‘어디건 증거가 있다는 곳으로 따라간다’는 소크라테스의 원리를 충실히 따랐다. 1950년 그는 ‘신학과 위증성’이란 논문을 통해 현대 무신론의 방향을 결정지었다. 이는 훗날 그가 ‘젊은 날의 고집’이라 이름 붙인 두 가지 주장에 기반해 있다. 악의 문제는 전능하고 완전히 선한 신의 존재에 대한 결정적인 방증이며, ‘자유의지 변론’은 세상의 명백한 불행에 대한 창조주의 책임을 면제해주지 않는다는 것. 이후 그는 신에 대한 증거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무신론을 전제해야 한다는 ‘무신론 추정’을 주장해 명성을 쌓았다.

그의 ‘회심’(무신론자들에게는 ‘변심’)은 무신론자들을 재무장시켰다. 2006년은 ‘새로운 무신론’의 해가 됐다(<와이어드 Wired>). 그 해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부터 루이스 월퍼트의 <믿음의 엔진>, 샘 해리스의 <종교의 종말>에 이르기까지 호전적인 무신론 옹호서가 쏟아져나왔다.

2007년 그는 ‘마지막 유언이자 증언’이라 할 만한 <존재하는 신>을 내놓았다. “제목이 말해주다시피 이제 나는 신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원서의 부제는 더욱 강렬하다. ‘세계에서 가장 악명 높은 무신론자는 어떻게 마음을 바꾸었나.’

저자의 답변이다. 현대 과학으로 드러난 세계상이 곧 신의 존재를 증명한다. “과학은 신을 가리키는 자연의 세 가지 차원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춘다. 첫째는 자연이 법칙을 따른다는 사실. 둘째는 생명의 차원이다. 생명, 즉 행위의 주체가 되고 목적에 따라 움직이는 존재들이 물질에서 생겨났다는 사실이다. 셋째는 자연의 존재 자체다.” 이렇게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던 저자는 출간 3년 뒤인 2010년 4월 생을 마감했다. 그는 지난한 여정의 종점에서 신을 만날 수 있었을까?

“나는 누구인가? / 이것이 나인가? 저것이 나인가? / 오늘은 이 사람이고 내일은 저 사람인가? / 둘 다인가?/ 사람들 앞에서는 허세를 부리고 / 자신 앞에선 천박하게 우는 소리 잘하는 겁쟁이인가? / 내 속에 남아 있는 것은 / 이미 거둔 승리 앞에서 꽁무니를 빼는 패잔병 같은가? / 나는 누구인가? / 고독하게 던지는 물음이 나를 조롱합니다. / 내가 누구인지, 당신은 아시오니, 나는 당신의 것입니다, 오, 하나님!”

<디트리히 본회퍼 : 목사, 순교자, 예언자, 스파이> 에릭 메택시스 지음·김순현 옮김·포이에마 펴냄

역사의 암흑기에 행함이 없는 믿음을 설파하는 ‘싸구려 은혜’를 거부한 정통 그리스도인 디트리히 본회퍼. 히틀러 암살모의에 가담한 혐의로 수감 중이던 1944년, 테겔 감옥에서 쓴 시 ‘나는 누구인가?’의 마지막 부분이다.

14살이 되던 1920년 본회퍼는 신학자가 되기로 결심했다는 걸 가족들에게 알렸다. 아버지는 견해가 달랐지만 아들의 결심을 존중했다. 이미 훌륭한 과학자로 이름 높았던 형 카를 프리드리히는 동생의 결심에 냉소적이었다. 형은 동생이 과학으로 입증 가능한 사실을 버리고 안개 같은 형이상학 속으로 달아나고 있다고 느꼈다.

이 문제를 두고 여러 번 논쟁하면서 본회퍼는 이렇게 말했다. “내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하나님은 여전히 계셔.” 에릭 메택시스의 <디트리히 본회퍼>는 출생부터 1945년 4월 9일 처형까지 본회퍼의 생애를 소설적 기법으로 재구성했다.

“‘본회퍼 죄수, 우리와 함께 가게 준비하시오.’ ‘우리와 함께 가게’라는 말은 모든 죄수에게 한 가지만을 의미했다. 바로 교수형이었다. 우리는 그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그가 나를 옆으로 불러서 이렇게 말했다. ‘이로써 끝입니다. 그러나 나에게는 삶의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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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만나는 길은 이렇듯 다를 수 있다. 오늘의 한국 사회는 지나치게 미신적이거나 비종교적이다. 본래의 신과 만났으면 좋겠다.

최재천<변호사> cjc4u@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