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의 책갈피]더 이상 미국은 경제중심 아니다

“달러는 우리의 통화지만 당신의 문제다.”
1971년 존 코널리 미국 재무장관의 말. 2008년 금융위기가 시장의 위기였다면, 2011년은 국가의 위기다. 그때가 ‘밑으로부터의 위기’였다면, 이번엔 ‘위로부터의 위기’다. 이번 경제위기는 지난 2008년 때보다 훨씬 경제적 고통이 클 것이다. “1차 침체 때는 미국인들이 몸에서 지방을 잘라냈다면, 2차 침체가 닥치면 뼈를 깎아야 할 것이다”(뉴욕타임스)라고 한다. 2008년 이후 나라는, G20 정상회의는, 시장은, 이코노미스트들은 도대체 뭘 반성하고 뭘 대비했다는 것인가?

<이번엔 다르다><br />케네스 로고프, 카르멘 라인하트 지음·<br />최재형, 박영란 옮김·다른세상 펴냄

<이번엔 다르다>
케네스 로고프, 카르멘 라인하트 지음·
최재형, 박영란 옮김·다른세상 펴냄

빈센트 라인하트는 연방준비은행에서 거의 25년을 근무했다. 1998년 그는 시장 참가자들과 함께 금융정책 의사결정 회의에 주요 멤버로 참여했었다. 시장 트레이더로서 그는 오래된 기억을 바탕으로 이렇게 말한다. “총칼보다 두 마디 단어로 인해 훨씬 더 많은 돈이 연기처럼 사라졌다. 그 두 마디 단어는 ‘이번엔 다르다(This time is different)’였다.”

미국은 이번에도 그랬을 것이다. ‘이번엔 다르다’고. 미국은 지난 금융위기 이후 법과 제도를 정비 중에 있으며,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선진적인 금융정책 기구와 정책 담당자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번만큼은 문제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우리는 단기외채 비중이 줄어들었고 외환보유액이 두둑해졌으며 펀더멘털이 튼튼하고 지난 금융위기를 가장 먼저 극복한 튼튼한 저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번엔 다르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역시나 <이번엔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 케네스 로고프와 카르멘 라인하트의 2010년 여름 책인데, 어쩔 수 없이 1년 만에 다시 들춰야 했다. ‘이번엔 다르다’ 신드롬은 금융위기란 다른 시간대에 다른 나라에서 다른 사람들에게나 일어난다는 확고한 믿음에 뿌리를 두고 있다. “위기란 지금 이곳의 우리에게는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는 모든 면에서 선배 세대의 경쟁자들보다 우월하다. 우리는 현명하며 과거의 실수들에서 이미 많은 교훈을 얻었다. 가치평가에 대한 과거의 규칙들은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다”는 식의 논법이다.

하지만 역사가 우리에게 말하는 교훈은 이렇다. “정책기관과 정책 수립자들이 아무리 규제안을 강화해도 그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시장의 유혹은 항상 존재한다는 것이다. 오래도록 부를 유지한 사람이 파산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금융시스템 역시 아무리 잘 규제된 것처럼 보일지라도 탐욕과 정치와 이익의 압력에 붕괴될 수 있다.”

<눈먼 자들의 경제>
조지프 스티글리츠 외 지음·한빛비즈 펴냄

금융위기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일반적이고 과거 사례와 유사하다. 하지만 금융위기의 징후를 포착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래서 17세기 튤립버블에서부터 1929년 대공황, 2008년 금융위기에 이르기까지 금융대란의 역사는 늘 학자나 저널리즘의 주된 관심사다. 가장 가까운 역사에서부터 교훈을 찾아야 한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조지프 스티글리츠와 역사학자 니얼 퍼거슨 등이 금융저널리즘에 뛰어들었다. 저돌적이고 자극적인 헤드라인도 아니고, 현실성 없이 무거운 주제를 다루는 학술서도 아니다. 어떤 전문가도 하지 않은 방식으로 2008년 금융위기를 풀어나간 <눈 먼 자들의 경제>다.

미국에선 2010년 출간인데 마치 2011년을 예견한 듯한 스티글리츠의 글이 눈에 꽉 찬다. “분명한 것은 이제는 미국을 역할 모델로 떠받들지 않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미국의 영향력이 줄어들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벌어진 일이다. 미국은 글로벌 자본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데 익숙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이 미국이 위기를 관리하고 금융자원을 배분하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더욱이 오늘날 세계 저축액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아시아는 이미 독자적인 금융중심지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이제 미국은 세계 주요 자본 제공국의 지위를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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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고대사를 쓰고 미국은 현대사를 쓴다. 우리는 과거사를 쓰고 미국은 현재사를 쓴다. 우리 눈으로 2008년 금융위기를 분석한 책이 있어 함께 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최재천<변호사> cjc4u@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