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탐색]노무현 사후에 쓰여진 ‘정본 자서전’

운명이다

노무현재단 엮음·유시민 정리·돌베개·1만5000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육신은 1년 전에 흙으로 돌아갔다. 어수선한 봄바람을 타고 그의 자서전이 도착했다. 노무현재단이 엮고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글을 쓴 <운명이다>다.

이미 생의 경계를 넘어간 이의 ‘사후 자서전’은 고인의 뜻을 얼마나 잘 반영하고 있는 걸까. 유 전 장관은 책머리에서 “대통령 노무현은 자신의 삶에 관한 자필기록과 구술기록을 많이 남겼습니다. 자신의 삶에서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던 일들을 생전에 기록해 둔 것입니다”라고 밝혔다. 그 기록이란 1988년 13대 총선 당시 미공개 자필기록인 ‘오! 민주여! 사람 사는 세상이여!’, 1994년 출간된 단행본 에세이 <여보, 나 좀 도와줘>, 2001년 작성한 구술기록 <통합의 정치를 향한 고단한 도전>, 2007년 9월부터 2008년 1월까지 청와대에서 진행된 네 차례 구술 기록, 퇴임 이후 1년 3개월 동안 쓴 다양한 자필기록과 구술기록을 말한다. 집필자는 “이 기록들을 시간과 사건에 따라 재구성, 압축하면서 ‘재집필’했다”고 말한다. 노무현재단 상임이사를 맡고 있는 문재인 변호사는 “비록 다른 사람이 원고를 정리하기는 했지만 이 책은 노 전 대통령 스스로 자신의 삶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한 일들을 기록한 ‘정본 자서전’”이라는 말로 책의 신뢰성을 보증했다.

“반항적이고 자의식이 강한 소년”이었던 고인의 성장기와 사법시험 합격 과정은 이미 알려진 그대로다. ‘권력의 정상’에서 겪은 일들은 실패와 좌절의 기록이다. 경제 양극화, 이라크 파병, 대연정 제안, 언론과의 싸움, 탄핵 등 재임 중에 일어난 굵직한 일들의 막후 사정과 개인적 소회를 기록했다. 기록 전반에서 참여정부에 대한 오해를 풀려는 애씀이 엿보인다. 서거 1주기를 맞는 시점에서 독자의 관심은 어쩔 수 없이 검찰에 대한 그의 생각에 집중된다. 그는 “검·경 수사권 조정과 공수처 설치를 밀어붙이지 못한 것이 정말 후회스러웠다”고 쓴다. “이러한 제도 개혁을 하지 않고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보장하려 한 것은 미련한 짓”이었고 “퇴임한 후 나와 동지들이 검찰에서 당한 모욕과 박해는 그런 미련한 짓을 한 대가”라고 한탄한다. 그는 스스로 묻는다.

“내가 과연 잘못한 것일까? 민주주의 교과서가 말하는 그대로 헌법과 법률에 따라 권력을 운용하려 했던 나의 선택이 어리석었던 것일까?”

뜨겁고 숨가쁘게 달려온 지난 인생을 회고하는 문장들은 비감하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꾸었다고 믿었는데, 돌아보니 원래 있던 그대로 돌아가 있었다. 정말로 세상을 바꾸는,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드는 길이 다른 데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대통령은 진보를 이루는 데 적절한 자리가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무엇으로,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 것일까?”

신간 탐색

문 변호사는 책머리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아주 사랑하셨던 분들에게는 이 책이 따뜻하고 정겨운 작별 인사가 되기 바랍니다”라고 썼다. 노 전 대통령이 세상에 남긴 마지막 인사는 “운명이다”로 끝나는 짧은 글뿐이다. 집필자는 상상력을 발휘해 “마지막으로 본 세상은 평화로웠다”는 문장으로 책을 맺었다. 그를 추억하는 다른 많은 이 또한 부디 그러했기를 바랄 것이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