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탐색]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나부터 체제의 유지자가 되어주지 않겠다

김예슬 지음 | 느린걸음 | 7500원

지난 3월 10일 A4 용지 한 장 분량의 대자보 하나가 고려대 안암 교정 건물에 붙었다. 대자보의 주인공은 대학을 그만둔다고 했다. 드물기는 해도 대학을 제 손으로 그만둔 이가 그 전이라고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아예 “거부한다”고 선언했다.

고려대를 ‘그만둔’, 아니 한국의 대학 체제 자체를 ‘거부’한 김예슬씨(24)의 선언은 대학의 존재 이유를 고민하던 이들의 마음속에 돌멩이처럼 날아들었다. 마음과 마음을 타고 깊고 너른 파문을 일으켰다. 파문의 동심원은 계속해서 확장됐다. 그럴수록 의문도 커졌다. 그는 왜 대학을 거부해야만 했을까, 꼭 그래야만 했을까, 소영웅주의는 아니었을까, 그래서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한 달 가까이 침묵하던 김씨가 책을 통해 입을 열었다. 그는 글머리에 ‘사라진 물음’과 ‘이상한 물음’에 답하기 위해 책을 낸다고 밝혔다. 대학을 가겠다고 했을 때 ‘왜’라고 물은 사람은 없었다. 우리 사회가 여간해선 묻지 않는, 사라진 물음이다. 반대로 대학을 그만두겠다고 하자 모두가 ‘왜’라고 물었다. 김씨에게는 이상한 물음이다.

그는 왜 대학을 거부하나. 그는 부모와 학생이 십 수 년의 희생을 치러 달성한 ‘대학생’이라는 꿈은 결과적으로 ‘3무(無)”를 양산할 뿐이라고 말한다. 지금의 대학생들은 졸업과 동시에 실업자가 되는 최초의 ‘적자 세대’다. ‘무직’이다. 초·중·고등학교를 거쳐 대학과 대학원에서까지 수많은 지식을 머릿속에 우겨넣지만 정작 자신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무지’다. 명문대생일수록 실제 삶의 현장에서 부딪치는 문제 앞에서는 무력하다. ‘무능’이다. ‘3무’를 양산하는 대학에서 학생은 상품이 되고, 학점과 어학연수와 봉사활동으로 채워진 ‘스펙’은 이들의 이마에 붙은 ‘바코드’가 된다. 대학만이 문제인 것도 아니다. 대학의 문제는 곧 지금과 같은 대학 시스템을 매개로 유지되는 사회 전체의 문제다.

문제는 결국 삶이다. 그는 고유한 개성으로 반짝이는 개인의 삶을 자격증과 스펙과 학벌로 가두려는 모든 틀에 반대한다. ‘세대’라는 이름으로 20대에 붙여지는 꼬리표에 반대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가 보기에 경쟁력을 길러 외국으로 나가라는 조선일보의 ‘G세대론’은 ‘글로벌 카스트’의 다른 이름이다. 세계 시장에서 최고가 된다는 것은 글로벌 카스트의 하위 계급을 밟고 올라서는 일이라는 것이다. ‘88만원 세대론’은 20대들에게 연대해 권리를 쟁취하라고 말한다. 김씨는 “중산층이 못되면 억울하고 비참하리라는 식의 또 다른 불안과 공포를 조장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의문을 제기한다.

대학 거부는 극단적 선택인가? 그는 반문한다. “우리가 당연한 듯 따르는 지금의 이 학교 제도와 대학 현실이 정말로 극단적인 게 아닌가? 그런데도 끝도 없는 컨베이어 벨트에 실린 것처럼 그 한 길로 나아가겠다는 것이 정말 극단적 선택이 아니고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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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은 무엇인가. 그는 말한다. “나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모른다는 것을 안다. 이건 정말 아니라는 것은 안다. … 그들이 만들어 놓은 제도를 편리하게 유지하기 위해 우리들의 개성과 인생을 파괴하는 합리화를 나는 인정할 수 없다고, 나부터 더 이상 그 체제의 유지자가 되어 주지 않겠다고 나는 답하겠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