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탐색]비정규직 노동의 척박한 현실

4천원 인생

안수찬 전종휘 임인택 임지선 지음·한겨레출판·1만2000원

언론사에는 어디나 노동담당 기자가 있다. 보수와 진보와 중도를 가리지 않는다. 통계 수치를 인용하고, 파업 현장에 달려가며, 전문가들에게 노동문제의 해법을 묻는다. 노동담당 기자가 없으면 다른 기자라도 한다. 이렇게 “언론은 늘 노동을 다룬”다. 신문을 조금이라도 유심히 보는 이들이 술자리에서 노동문제에 대해 한마디쯤 걸칠 지식을 얻기에 충분한 양이다. “실업자가 늘고 임금은 줄고 비정규직만 양산된다는 것쯤 누군들 모르겠나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게 다뤄지는 노동은 ‘갈등’(파업)이거나 ‘숫자’(통계)이거나 ‘규범과 조항’(정책)일 뿐이다. 추상으로서의 ‘노동’은 있지만 살아 숨쉬는 ‘노동자’는 없다. 노동문제의 심각성을 목놓아 부르짖지만 신발을 신고 가려운 발바닥을 긁는 격이다.

“그런데 정말 알고 있나?” 지난해 여름 시사주간지 <한겨레21> 사회팀 기자들이 스스로 던진 질문이다. 이들은 ‘불안정 비정규직 노동’의 현장을 파고들기로 의기투합했다. 4명이 한 달씩 취직해 직접 일했다. 식당 아줌마, 대형마트 판매원, 이주노동자들이 모여 있는 마석 가구공단 일꾼, 안산의 한 난로공장 조립공이 그것이다. <4천원 인생>은 지난해 9월 첫 연재를 시작해 12주 동안 총 4부로 완결된 ‘노동OTL’ 기사를 책으로 묶은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노동은 비로소 통계의 겉옷을 벗고 속살을 드러낸다. 물론 ‘속살’이라고는 하지만 관능과는 거리가 멀다. 주름살과 굳은살 투성이다. 식당 아줌마들은 ‘파블로프의 개’처럼 벨이 울리면 조건반사적으로 테이블로 뛰어간다. 대체 인력이 없는 상황에서 쉬는 날 없이 일하느라 생리통을 차가운 주방 바닥에서 끙끙거리며 견뎌낸다. 이주노동자들은 단속의 공포 때문에 톱밥 날리는 공장에서 늘 문을 잠가둔 채 일한다. 일이 힘들어도 “단속만 없으면 우리 괜찮아”라고 말한다. 마트에서 일하는 20대 청년들은 중·고생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해 왔다. 8년째 일하면서 많아야 140만원을 받는데도 “공장보다 마트가 훨씬 나아요”라고 말한다. 컨베이어벨트가 돌아가는 공장에서 노동자들은 침묵 속에서 일한다. “왜 여기 사람들은 웃지도 않고, 말도 안 걸어 줘요?”라며 며칠만에 떠나는 이도 많다.

저마다 다른 노동의 현장이지만 비정규 노동자들이 처한 삶의 조건은 크게 다르지 않다. 앞치마나 공장 유니폼을 입은 노동자는 그 순간부터 개성을 잃는다. 빈곤은 가족이라는 고리를 타고 뫼비우스 띠처럼 이어진다. 내일은 달라질 거라고, 섣불리 희망을 말할 수 없다. 그럼에도 책에는 상투적인 말이 하나도 없다. 기자들이 관찰자가 아니라 당사자가 됐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공연히 해법이나 대안을 말하지도 않는다. 거대한 삶의 무게 앞에 형식적인 대안이나 해법은 무책임하거나 탁상공론이다.

신간 탐색

사람은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논리적으로도 설득당하지 않는다. 이 책은 논리를 말하는 대신 몸으로 겪은 현실을 보여 준다. 그래서 울림이 깊고, 노동 문제를 숫자나 정책이 아니라 구체적인 삶의 수준에서 생각하게 만든다. 누군가 현 단계 한국 저널리즘이 도달한 수준이 궁금하다고 묻는다면 이 책을 읽을 것을 권하고 싶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