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책]마이클 무어의 대통령 길들이기

부유층 5% 자녀만 군대에 보내자

마이클 무어 지음 | 최지향 옮김 | 걷는나무 | 1만2000원

독설가 마이클 무어가 5년 만에 새 책을 내놓았다. 책 안의 출판 정보를 보면 원제는 <마이클의 선거 가이드>다. 아마존 닷컴에 따르면 이 책의 영어판은 미국에서 2008년 8월에 발간됐다.

한국어판은 4개 장으로 구성돼 있다. 1장의 내용은 영어판과 같다. 선거와 정치에 대한 미국 시민들의 질문에 무어가 답하는 내용이다. 한국어판의 2장은 영어판의 3장, 3장은 영어판의 2장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4장과 5장은 영어판과 같은 순서지만 영어판의 6장은 한국어판에서 빠졌다. 사정은 다음과 같다.

2008년 8월이라는 출간 시기와 ‘선거 가이드’라는 책 제목을 배경에 깔고 무어가 골수 민주당 지지자라는 사실을 그 위에 겹쳐 놓으면 그림이 나온다. 이 책의 영어판은 무어가 2008년 미국 대선과 총선을 앞두고 유권자이자 독자인 미국 시민들을 상대로 써낸 일종의 선거 매뉴얼이다. 목적은 물론 버락 오바마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와 민주당 후보들의 선거 승리다.

한국어판이 미국 대선 후 1년도 더 지난 시점에 발간됐다는 점을 생각하면 출판사가 한국 사정에 맞게 책을 편집하느라 고심한 흔적이 보인다. 미국 상·하원 선거 경합 지역에 대한 선거 가이드 성격인 영어판의 6장은 빠졌다. 한국 독자들이 흥미를 가질 내용이 아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영어판에서는 ‘선거가 끝나면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저자에 따르면 부시 전 대통령을 체포하는 것)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던 5장은 한국어판에서 ‘대통령을 길들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바뀌었다. 한국어판의 2장 ‘내가 대통령이 되면 세상은 이렇게 바뀐다’의 경우 내용은 그대로지만 제목에 오해의 소지가 있다.

출판사는 이 장을 ‘세상을 살맛 나게 만들 마이클 무어의 10대 공약’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나 실제로 이 장은 무어가 오바마가 백악관에 입성한다는 가정 아래 대통령 오바마가 열흘 안에 해야 할 열 가지 일들을 제안한 내용을 담고 있다.

2008년 미국 선거를 앞두고 미국 독자들을 상대로 쓰여진 책이지만 한국 독자들에 대한 소구력 또한 만만치 않다. 좁게는 미국 정치, 넓게는 신자유주의 체제가 만들어 내는 승자 독식의 사회질서에 대한 무어 특유의 통렬하고 경쾌한 비판을 감상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한국어판에서 ‘마이클 무어의 10대 공약’이라고 소개된 대목을 보자. 저자는 미국이 수행하는 전쟁은 거대 기업의 이익을 위한 것일 뿐이며, 그 과정에서 빈곤층 자녀들만 총알받이로 희생되는 현실을 지적하면서 ‘부유층 5%의 자녀들만 군대에 보내자’고 꼬집는다. 미국인이 프랑스인보다 소득세를 평균 3%포인트 더 낮게 내고 있지만 프랑스인과 달리 무상교육과 무상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면서 “부지런히 일하고도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것만 빼면 미국은 괜찮은 나라”라고 비꼰다. 저자는 또 미국 공화당이 부자들에게 엄청난 감세 혜택을 주면서 빈곤층을 외면하고 있다고 성토한다.

이주의 책

부자 감세와 복지 축소, 승자 독식 시스템 강화 등 여러 지점에서 부시 전 행정부와 미국 공화당을 떠올리게 하는 정책을 수행하고 있는 한국 정부를 겹쳐 놓고 읽어도 크게 어색하지 않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