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책]조선 양반의 일생

양반들의 신참 신고식은 어땠을까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엮음 | 글항아리 | 2만2000원

조선시대 생활사나 풍속사를 다룬 책들의 주인공은 대부분 양반이다. 조선 시대 민중의 일상을 다룬 책이 드물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소소한 일상의 세목이나 개인의 내면으로 파고드는 데는 한계가 있다. 문자로 자신들의 감정이나 생활을 기록하는 일은 경전을 궁구하는 것이 계급적 존재 기반이었던 양반에게만 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일 테다. <조선 양반의 일생>은 정조가 만든 왕실도서관인 규장각의 서고에 보관된 문헌과 사료들을 바탕으로 출생부터 죽음에 이르는 조선 시대 양반들의 생활상을 12개 장으로 나눠 요약한 책이다.

문무의 구분을 막론하고 관료가 되는 것은 모든 양반의 꿈이자 가문의 영광이었다. 이 때문에 합격자 명단에는 아버지의 관직과 성명, 형제들의 인적 사항까지 기록됐다. 과거의 백미인 문과는 804회에 걸쳐 1만5000명을 뽑았다. 조선의 고을수가 33개였던 데 반해 정기시험인 식년시의 합격 정원은 33명에 불과했다. 오늘날의 행정고시나 사법고시를 연상케 하는 치열한 경쟁이었음은 물론이다.

과거는 경쟁도 치열했지만 절차도 까다로웠다. ‘조흘강’이라는 이름의 예비시험을 통과해야만 본시험을 볼 수 있었다. 시험 전에는 ‘녹명’이라 하여 일종의 응시원서를 제출하는 절차를 밟았다. 수험생들은 녹명소에서 인적 사항을 증명하기 위해 선조들의 관직과 성명, 본관, 거주지 등을 기재한 ‘사조단자’, 6품 이상의 관료가 신원을 보증하는 ‘보단자’를 제출해야 했다. 시험장에서는 ‘도련지’라는 이름의 하등품을 사용하도록 돼 있었는데 부유층 자제 가운데 규정을 어긴 고급용지를 사용하다 실격되는 일도 더러 있었다. 시험 결과를 투명하게 하기 위한 노력도 치밀했다. 채점자가 사적 인연으로 불공정한 채점을 하지 못하도록 응시자의 인적사항이 기록된 부분은 몇 번 말아서 실로 꿰맸다. 문과시험에서는 아예 인적사항이 기재된 부분을 칼로 절단해 채점 결과가 나올 때까지 따로 보관하기도 했다.

양반들의 관직 생활과 관련해 특히 흥미로운 대목은 ‘신고식’ 문화다. 선임들은 신참을 ‘새 귀신’ 또는 새로 온 사람이란 뜻의 ‘신래(新來)’라고 불렀다. 신참 관료는 얼굴에 분칠을 하고 넝마 같은 옷을 입은 채 선배들에게 온갖 수모를 당했다. 신참 관료는 일단 근무 부서의 고참들을 일일이 집으로 찾아다닌다. 문전박대는 기본이다. 문전박대가 어찌나 심했는지 어떤 이는 종들에게 뇌물을 쓰기도 했다. 일단 동석을 허락하게 되면 그 다음에는 고문과도 같은 술자리가 기다리고 있다. 고참들은 신참을 겨울에는 물에 집어넣고 여름에는 뙤약볕 아래 서 있게 했다. 심한 경우 오줌을 먹이거나 부모의 이름을 적은 종이를 태워서 먹이기도 했다.

이주의 책

책은 주제별로 관련 내용을 다소 건조하게 요약해 놓았다. 실증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상상력의 깨소금을 뿌렸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드는 대목이다. 대신 책은 풍성한 정보량으로 읽는 맛을 돋운다. 양반들의 유배형이 2000리, 2500리, 3000리 등 세 등급으로 나뉘어 있었다거나 유배지로 이동하는 데서도 권력의 등급에 따라 차등이 있었고, 철종 4년에 홍문관 교리 김진형의 경우 유배지에서 기생들과 흥청거리기도 했다는 대목처럼 소소한 정보를 채집하는 재미가 있다. 서적이나 그림, 양반들의 일상 소품을 찍은 풍부한 도판도 독자들의 이해를 도운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