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책]녹색혁명 배후에는 권력집단의 음모가

파괴의 씨앗 GMO

윌리엄 엥달 지음 | 김홍옥 옮김 | 길 | 1만8000원

지난해 6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풍요의 시대는 끝났다. 제2의 녹색혁명이 필요하다’는 제하의 기사를 내보냈다. 곡물가격 상승으로 식량 부족에 대한 공포가 확산되면서 1950~1970년대에 일어난 혁명적인 농업 생산력 증대가 필요해졌다는 내용이었다.

신문은 20세기 중반에 세계가 식량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농업 부문에 대한 미국 정부의 대대적인 투자 덕분이었다면서 국제사회 지도자들 사이에 제2의 녹색혁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 정부는 1950~1970년대에 고수확 종자 개발과 비료 및 살충제 개량을 통해 개발도상국의 농업생산력을 비약적으로 향상시켰다. 여기까지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사실이다.

전작 <석유지정학이 파헤친 20세기 세계사의 진실>에서 석유를 무기로 한 미국과 영국의 패권 장악 음모를 폭로한 미국의 경제전문가 윌리엄 엥달이 <파괴의 씨앗 GMO>를 통해 주장하는 내용은 이 같은 일반적인 인식을 완전히 뒤집는다.

저자에 따르면 1960년대 라틴 아메리카를 무대로 펼쳐진 녹색혁명은 단순히 개도국에서의 공산주의 확산 방지만을 목표로 한 것이 아니었다. “녹색혁명은 실은 개도국 가운데 핵심 표적 국가에서 식량생산에 대한 통제력을 장악하려는 숨은 노력이었다.” 식량생산의 통제력을 쥔 것은 회전문 인사(대기업 임원이 행정부 고위 관료가 되거나 반대로 행정부 고위 관료가 퇴임 후 기업 임원이 되는 것)를 통해 미국 정부와 긴밀하게 유착한 미국의 애그리비즈니스(농업무역)였다. 미국 애그리비즈니스는 라틴 아메리카의 광대한 영토와 인구를 유전자조작 농산물(GMO) 개발의 실험장이자 신상품 판매를 위한 신천지로 사용했다. 그 결과 라틴 아메리카의 소농은 붕괴했고, 이들 국가의 식량안보는 몬산토 같은 다국적 바이오화학 업체들의 손에 들어갔다. 위험을 경고하는 과학자들은 가차없이 쫓겨났다. 몬산토는 1995년 미국과 영국의 행정부를 움직여 GMO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연구 논문을 발표한 한 영국 과학자를 실업자로 만들었다.

저자는 이러한 식량제국주의의 이면에는 미국 석유재벌 록펠러 가문을 정점으로 하는 극소수 권력집단이 있다고 주장한다. 록펠러 가문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도 전에 전후 세계질서를 미국 중심으로 재편하기 위한 그림을 그리고 유전자혁명을 지원하는 데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었다. 책은 존 덜레스, 딘 러스크, 헨리 키신저 등 1950년대 이후 미국 행정부의 역대 국무장관들뿐만 아니라 규제기관의 핵심 관료들 또한 록펠러 재단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고 말한다.

이주의 책

GMO를 첨병으로 하는 미국 식량제국주의의 배후에 미국 정·재계 극소수 엘리트 집단의 오랜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는 저자의 주장은 얼핏 그가 음모론적 시각에 기울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GMO의 개발과 확산에 얽힌 미국 식량제국주의의 추악한 이면에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는 적지 않다. 현재 한국에서 시판되는 식용유(대두유)는 대부분 유전자조작 콩으로 만들어진다. 사료의 원료인 미국산 옥수수, 밀, 콩의 90%도 GMO이다. 한국인의 밥상 또한 GMO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것이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