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로부터 온 편지]오키나와 미군기지 ‘희생의 시스템’

오키나와인들은 미군기지의 과밀한 배치가 오키나와의 자치와 자립에 근본적인 제약이 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일본 본토 사람들은 안보를 위해서 미군기지의 오키나와 배치는 불가피하다고 생각한다.

2014년 6월 11일 밀양시청의 공무원과 경찰 2000여명이 고압 송전탑 건설 예정지에서 농성하고 있던 주민들의 농성텐트에 대한 행정대집행을 단행했다. 연로한 노인들과 가톨릭 수녀들, 그리고 이들과 함께했던 시민들이 쇠사슬로 그들의 몸을 결속해 저항했지만, 경찰은 반인권적이고 폭력적인 철거와 진압을 감행했다.

세월호 참사 당시 구조에는 무능했던 경찰들이 풀뿌리 민중을 진압하는 데는 전광석화 같은 기동력을 보이는 걸 보고 분노했던 사람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이런 일들은 벌써 수년째 제주의 강정에서 진행되고 있는 해군기지 건설 반대운동에 대한 탄압이나 이명박 정권 당시의 용산참사와 쌍용자동차 파업 진압 등에서 확인된 바다.

이 부분에서 다카하시 데츠야 도쿄대 교수의 ‘희생의 시스템’이라는 개념을 떠올렸다. 그는 후쿠시마의 원자력발전소 사고와 오키나와의 미군기지 현실을 거론하면서, 일본이라는 전후 국가가 이 두 지역의 희생 위에서 존속해 왔다고 지적했다.

일본 오키나와현 기노완시 시가지와 인접해 있는 미 해군의 후텐마 기지 전경. 일본 내 미군기지의 75%가 오키나와에 집중되어 있다. | AFP연합뉴스

가령 후쿠시마의 경우, 원자력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기는 후쿠시마 주민들 자신을 위해 쓰이지 않는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후쿠시마에서 생산된 전기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도쿄 등의 대도시 사람들이다. 대도시 사람들의 에너지 소비를 위해 위험으로 가득찬 원전시설이 후쿠시마와 같은 시골사람들의 희생을 초래하고 있는데, 그 희생이라는 것이 흔히 일본이라는 공동체를 위한 ‘소중한 희생’이라는 식으로 미화되곤 한다.

일본을 위한 ‘소중한 희생’으로 미화
같은 차원에서 오키나와의 기지부담 문제도 인식될 수 있다. 미·일 안보조약의 결과로 일본 내 미군기지의 75%가 오키나와에 배치되어 있다. 오키나와인들은 이 미군기지의 과밀한 배치가 오키나와의 자치와 자립에 근본적인 제약이 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일본 본토 사람들은 기지문제를 망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안보를 위해서 미군기지의 오키나와 배치는 불가피하다고 생각한다. 바꿔 말하면 미군기지가 파생시키는 이런 저런 위험은 일본이라는 공동체의 안전보장을 위한 ‘소중한 희생’이기에 기꺼이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식이다.

‘희생’을 통해서 ‘이익을 얻는 자’들과 ‘고통을 받게 되는 자’ 사이의 이러한 ‘비대칭성’을 은폐시키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강제하는 상황은 흡사 1945년 이전 일본의 제국-식민지 관계와 구조적으로 유사하다는 것이 다카하시의 생각이다.

시선을 한국으로 돌리면, 제주의 강정 해군기지 건설이나 밀양의 고압 송전탑 건설과정에서 주민들의 희생을 강제하고, 그들의 저항을 공권력을 동원해 노골적으로 무력화하는 행태는 한국에서 작동되는 ‘희생의 시스템’의 명백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국가는 이렇게 강제된 주민들의 고통을 경제성장이나 군사안보를 위해 기꺼이 치러야 할 ‘소중한 희생’으로 취급하고, 많은 수의 도시인들은 이러한 희생이 불가피한 게 아니냐며 사태를 방관한다.
이것은 여러 복합적인 문제를 우리들에게 제기한다.

첫째, 민주주의의 무력화다. 희생의 시스템이 가시적이거나 은폐된 형태의 폭력이라면, 그 시스템은 다수에 의한 소수의 배제라는 민주주의의 왜곡을 낳게 된다. 가령 오키나와의 기지 문제는 설사 오키나와 현민 전체가 이에 반대하고 있다고 해도, 그것이 다수결주의에 의존하고 있는 한 의회 안에서의 표결을 통한 정치적 설득으로 해결될 수 없다. 소수파인 오키나와의 민의는 일본 본섬의 다수자들에 의해 제도적으로 봉쇄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둘째, 소수자들의 희생을 영구화하면서도 그것을 갈등의 장에서 배제하는 현상을 초래한다. 후쿠시마에서 원자력발전소 폭발사고가 일어나기 이전에도, 여러 가지 위험은 현실화되었다. 원자력발전소의 유지에는 필연적으로 노동과정에서 방사능 위험에 노출된 피폭자 문제가 발생하며, 사용 후 방사능 폐기물의 보존문제 등 해결될 수 없는 난제들도 줄을 잇는다. 그러나 이 희생과 미해결의 과제 역시 은폐되고 정보의 유통은 강력하게 억제된다. 이것은 위험의 명백성이 ‘국익’이라는 안보적 수사를 통해 억제됨으로써 소수자들이 겪게 되는 고통이 없는 것으로 간주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셋째, 나는 이 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희생의 시스템이 작동되는 과정에서 각각의 희생이 개별화됨으로써 결과적으로 시민들의 연대감이 파괴된다는 점이다. 가령 후쿠시마와 오키나와의 구조적 모순은 실질적으로 그 희생의 토대 위에서 이익을 얻는 자들에게는 당연한 것으로 간주되어 은폐된다. 이것은 이런 의제에 대한 시민적 연대가 ‘이해관계’ 때문에 분열되고 파괴되는 현상을 초래한다. 가령 원자력발전소 문제는 그것이 위치하고 있는 후쿠시마의 문제일 뿐이다. 미군기지 문제도 그것이 위치해 있는 오키나와의 지역 문제일 뿐이라는 식의 자기기만이 구조화된다는 것이다. 사실 이 문제는 특정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일본이라는 국가의 성격과 관련된 문제인데, 그것이 구체적으로 체감되지는 않게 된다.

시민적 연대가 분열·파괴되는 현상 초래
그렇다면 희생당하는 주체들 간의 연대는 가능한가라는 문제에 대해 생각할 수도 있다. 가령 원자력발전소의 폐해를 직접 경험하고 있는 후쿠시마 현민들과 미군기지 문제로 고통에 빠져 있는 오키나와 현민들은 서로의 고통에 대해 공감하고 연대할 수 있는가. 언뜻 생각하면 그것은 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희생당하는 주체들 간에도 어떤 ‘비대칭성’의 문제가 존재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가령 오키나와 지역언론인 <오키나와 타임즈>가 오키나와와 후쿠시마의 전체 시정촌장을 대상으로 행한 2014년 6월 9일자 앙케트 조사 결과를 보면 이 사실이 잘 드러난다. 앙케트 내용의 요지는 이런 것이었다. 후텐마 비행장의 헤노코 지역으로의 이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에 대해 오키나와 현의 수장들의 51%는 ‘진행하면 안 된다’는 명확한 반대의사를 보여주었다. 반면, 후쿠시마 현의 수장들은 단지 9%만이 ‘진행하면 안 된다’는 의견을 냈고, 무려 72%의 수장들이 ‘모르겠다’라는 의사를 표시했다.

오키나와로부터 온 편지

이것은 희생의 시스템 속에서의 희생자들 자신간에도 연대를 어렵게 만드는 인식의 ‘비대칭성’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을 뼈아프게 제시한다. 후쿠시마나 오키나와의 문제가 ‘지역문제’로 축소되면, 그 위험의 광역성과 보편성은 희석되어 희생자들 간의 연대조차 약화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어떻게 이를 넘어설 수 있을까?

<이명원 문학평론가·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racan@kh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