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로부터 온 편지]‘일본이 오키나와에 속한다’

소설가 오에 겐자부로는 1965년부터 1970년까지 오키나와를 방문했던 결과물인 <오키나와 노트>를 썼다. 오에는 오키나와의 현실을 취재하고 “일본인이란 무엇일까?”라는 의문을 던진다.

오키나와가 일본의 영토로 편입된 이후 적지 않은 일본의 지식인들이 오키나와를 방문하여 일본과 오키나와의 관계에 대해 천착했다. 언뜻 기억나는 것만 해도 민속학자인 야나기타 구니오와 오리구치 시노부, 민예학자인 야나기 무네요시와 같은 인물들이 떠오른다. 이들은 일본의 걸출한 근대지식인으로 팽창하던 일본제국의 상승기에 오키나와의 의미를 물었다.

야나기타 구니오는 <해상의 길>이라는 저작을 통해 일본 민족의 남방기원설을 주장했는데, 그에게 오키나와는 일본인론을 해명할 수 있는 표상적 장소였다. 역시 민속학자였던 오리구치 시노부는 <류큐 왕통의 기원>을 통해 오키나와 왕통의 기원이 중세로부터 일본과 친연성을 지니고 있다고 상상했다. 민예학자인 야나기 무네요시 역시 오키나와어와 일본어 사이에는 친족성이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관점에서 중일전쟁 이후 일본이 오키나와에 강요한 ‘일본어 상용정책’이 오키나와어 말살정책이라며 강력하게 저항했다.

대부분의 일본인이 오키나와인을 멸시적인 시선으로 차별했던 것을 생각하면, 이 일군의 지식인들이 오키나와 문화의 독자성과 일본 문화와의 연관성을 강조하면서 일본과 오키나와의 친족성을 강조한 것은 흥미롭다. 이 태도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아마도 각각의 지식인 개인적으로는 진심으로 오키나와를 이해하고 오키나와적 상황에 공명하고자 하는 진심이 있었을 것이지만, 사정이 그렇게 간단한 것은 아니다.

오키나와 주민들이 나고시 헤노코 해안에 있는 미군 해병기지 철책에 걸린 미군기지 반대 현수막을 보며 지나가고 있다. | AP연합뉴스

일본 지식인들의 문화 연관성 강조
이들 세 명의 전전(戰前) 지식인들의 오키나와 탐구는 오키나와 자체의 역사성을 탐구하려는 목적도 있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일본’ 또는 ‘일본인’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데에 그 본질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오키나와가 홋카이도와 타이완, 조선과 함께 일본의 식민지로 편입된 이후 일본의 관학파 지식인들은 노골적으로 해당 지역의 일본과의 동조동근성을 강조했다. 반면, 위에서 언급한 세 명의 민간학파 지식인들은 오키나와의 토착적 문화의 독자성을 강조하면서도 일본 문화와의 문화적 친족성에 근거해 결국 일본 민족을 ‘복합문화론’의 관점에서 해명하고자 애썼다.

일본인 자신이 제아무리 오키나와의 문화적 전통과 고유성에 대해 예찬했다고 할지라도, 제국주의·식민지적 상황 속에서의 오키나와론은 일본판 오리엔탈리즘의 차별적 시선을 구조화하는 효과를 초래한다. 진정으로 오키나와의 역사와 정체성이 해명되기 위해서는 오키나와인 자신에 의한 탐구가 요청되는 것인데, 이것은 이하 후유의 <고류큐>가 나올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하의 오키나와 규정 역시 일본 문화론의 자장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었다.

1965년부터 1970년까지 오키나와를 방문했던 결과물인 소설가 오에 겐자부로의 <오키나와 노트>(1970)를 읽으면서 내가 주목한 것은 바로 이 부분이었다. 오키나와는 1945년 오키나와 전쟁 이후 일본에서 분리되어 미 군정기를 거친 뒤 1972년 일본에 반환된다. 상당 기간 미국의 태평양 주의 한 지역으로 전락했던 셈인데, 이런 까닭에 오키나와인들은 일본 본토에 대해 강렬한 배신감을 느꼈다. 오키나와를 일본의 한 현으로 편입시켜 천황의 적자로 만든 후 가공할 태평양전쟁의 ‘희생양’으로 만들었던 일본은 정작 전쟁이 끝나자 오키나와를 미국에 넘겨주었고, 미국은 오키나와를 ‘기지의 섬’으로 만들어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의 출격기지로 활용했을 뿐만 아니라, 핵잠수함과 핵무기를 배치해 오키나와인들의 불안을 높였던 것이다.

오에 겐자부로가 오키나와를 방문했던 시점은 오키나와 안에서 일본으로의 복귀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던 시점이었다. 일본 본도에서도 안보투쟁 과정 속에서 돌파구를 찾고자 했던 혁신세력이 오키나와적 현실에 공명해 오키나와의 이른바 ‘조국 복귀운동’에 시선을 돌리고 있던 때이기도 했다.

바로 이 시기의 몇 년 동안, 오에 겐자부로는 오키나와를 수차례 방문해 오키나와의 현실을 취재하고 “일본인이란 무엇일까? 그렇지 않은 일본인으로 나 자신을 바꿀 수 있을까?”라는 필사적인 의문에 직면하게 된다. 그가 일본인이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질 때의 일본은 ‘천황제 파시즘’을 통해 아시아 여러 나라에 비극을 초래했던 ‘추한 일본인’이라는 강한 비판이 담겨 있다.

일본의 가해성과 자기기만을 폭로
그는 전후의 평화주의에 입각한 일본이라는 국가가 전전의 제국주의적 국가와는 다르지만, 평화주의와 민주주의를 모토로 내세우는 것의 허구성을 오키나와에서 뼈저리게 체감한다. 전전에는 일본을 방어하기 위한 소모전으로 오키나와를 희생시키고, 전후에는 오키나와를 미국의 점령지로 인계한 후 일본 방어를 위한 군사기지를 건설하는 것을 용인했던 일본인의 처지에서 볼 때, 일본의 평화주의나 민주주의는 허구라는 것이다.

전후의 평화주의나 민주주의가 허구라는 것은 다른 의미에서 일본이 전전의 역사에 대한 진정한 반성이나 참회를 해본 적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참회하지 않는 ‘추악한 일본인’의 한 사람으로서 오키나와적 현실에 대해 공명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혹 자기기만이 아닌가. 전전의 지식인들과 마찬가지로, 오키나와에서 ‘일본적인 것’의 흔적을 발견하려는 몸부림은 아닌가 하는 분열적 무의식을 오에 겐자부로는 수없이 고백한다.

나는 이 고백의 진정성을 신뢰한다. 오에의 오키나와 기행 속에는 오키나와인들이 실로 고통 속에서 주체성을 모색한 내용과 함께 일본의 가해성과 자기기만이 웅변적으로 폭로되고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미·일 군사동맹 과정 속에서 희생되고 차별당하고 있는 오키나와적 현실에 대한 탐구가 치밀하게 이 책에서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오키나와로부터 온 편지

이 책의 첫 장의 제목은 ‘일본이 오키나와에 속한다’이다. 이 말을 통해서 오에가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이런 것이다. 어느날 한 핵전략 전문가가 연필로 극동지역의 지도를 그려주었다. 그런데 일본열도가 오키나와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칠 만큼 작았다. 핵무기가 배치된 오키니와의 상황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그림 앞에서 오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일본의 실체가 오키나와라는 존재 뒤에 숨어 슬그머니 오키나와로 편입하여 이처럼 거짓 ‘자립’을 하고 있는 상황을 꿰뚫고 있다.” 전후 일본의 평화주의와 민주주의는 허구다. 미국에 의한 오키나와의 식민화와 핵무장 군사기지화, 이를 통한 일본 안보의 수호라는 상황 속에 오키나와인에 대한 고려는 전혀 없다. 이것이 ‘추한 일본’의 본질이라고 오에 겐자부로는 탄식했으며, 이러한 일본적인 것으로부터 이탈하기 위해 그는 필사적으로 사회참여를 지속했다.

<이명원 문학평론가·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racan@kh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