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말해야 할 것]공권력 남용, 당사자에 책임을

공무원 개인의 책임 묻지 않아 ‘일탈’ 계속… 손배 청구해야

2007년 11월 11일은 전국에서 ‘한·미 FTA 저지 범국민 행동의 날’이 벌어진 날이다. 전국의 농민들이 버스를 빌려 서울광장에서 상경 집회를 하기로 되어 있었다.

이날 경찰은 전국 고속도로에 병력을 보내 시위대를 원천 봉쇄했다. 이병하 경남진보연합 대표를 비롯해 경남 각지에서 모여든 수백명 시민들의 발이 묶였다.

이들은 경찰의 위법한 집회 방해로 정치적 의사를 표현할 권리를 잃었고 이동의 자유를 박탈당했다며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2009년 6월 대법원은 이 대표를 비롯한 88명의 손을 들어주며 국가가 이들에게 각 10만원씩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다른 311명의 시민들도 비슷한 취지로 2012년 7월 국가로부터 배상을 받았다.

2013년 12월 22일, 경찰병력 5000여명의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 건물 강제진입 사건 역시 공권력 남용의 소지가 크다. 민주노총은 경찰의 행위에 대해 국가배상법 2조에 근거해 손해배상을 제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경찰이 체포영장이 발부된 철도노조 지도부를 검거하기 위해 12월 22일 서울 정동 민주노총 건물로 진입해 저항하는 노조원들을 연행하고 있다. | 강윤중 기자

고의성ㆍ중대한 과실 입증 쉽지 않아
민변이 12월 24일 발표한 성명에 따르면, 기존 판례에 따라 수색영장 없이 압수·수색을 진행할 경우 그 과정은 최소한으로 실시해야 한다. 또한 압수·수색 시 주거 및 사무실의 평온을 유지하고 온건한 방법으로 실시하도록 명한 판례가 이미 서 있다.

하지만 22일 당시 경찰은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문 바로 뒤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리문을 파괴했다. 지은 지 40년이 넘은 건물에 수천명을 투입시키는 등 위험한 행동도 불사했다.

국가배상법 2조는 공무원이 직무를 집행하면서 법을 위반해 타인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 피해자에게 손해를 배상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실제로 국가가 개인에게 배상한 경우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무원들의 ‘일탈’이 계속되는 이유는 본인이 잘못의 직접적인 책임을 지지 않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국가배상법 2조 2항에 따라 국가나 지자체는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을 일으킨 공무원에게 구상권을 청구할 수 있다. 하지만 고의성이나 중대함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아 실제로 개별 공무원이 재정 손실을 채우는 경우는 드물다.

또한 현행법으로는 ‘피해 당사자’만이 국가에 배상 책임을 물을 수 있다. 4대강 논란이 한창이던 2013년 10월, 환경단체를 비롯한 시민단체들은 4대강 사업이 막대한 국고 손실로 끝났다며 이명박 전 대통령과 4대강 사업에 연루된 공무원들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당시 기자가 취재한 법률 전문가들은 이 소송이 성립될 수 없다고 전망했다. 현재 국가배상법으로는 부당한 공무집행으로 직접 피해를 입은 당사자만이 소송을 할 수 있으며, 피고 역시 특정인이 아니라 국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반면 지자체 단위에서는 주민소송제가 도입돼 있다. 주민소송제는 공무원이 위법이나 과실로 국가 재정에 손해를 끼친 경우, 직접 피해 여부와 무관하게 일정 수 이상의 주민이 모여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할 수 있는 제도다.

피해당사자만 국가책임 물을 수 있어
현재 용인경전철 손해배상 소송이 주민소송제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 용인시 주민들은 용인경전철 건설이라는 잘못된 정책 결정으로 매년 400여억원의 혈세가 낭비되고 있다며 변호인단을 꾸려 용인시장을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용인시장이 직접 용인경전철 정책 결정자들에게 손해배상 소송을 하도록 하는 주민소송이다.

현재 국민소송네트워크 등 시민단체들은 주민소송제를 전국 단위로 확장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2014년 새해가 되면 입법을 위한 본격적인 청원에 들어갈 예정이다.

물론 주민소송제가 도입된다고 해서 경찰의 과도한 공권력 남용까지 제어할 수 있는지는 미지수다. 국민소송네트워크의 최재홍 변호사는 “경찰력이 필요 이상으로 동원된 경우도 그만큼 세금이 낭비된 것으로 볼 수는 있다. 하지만 아직 그런 부분까지 검토해본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다만 최 변호사는 경찰의 민주노총 강제진입 사건 자체는 국가배상법상 ‘중대한 과실’로 볼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경찰이 강제진입 과정에서 많은 기물을 파손했고 최루액도 하루 만에 한 달치를 사용했다. 피해 당사자들이 적극적으로 국가가 지휘선에 있는 경찰들에게 직접 구상권을 행사하도록 요구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국민소송제가 도입된다 하더라도 넘어야 할 산은 많다. 지자체에서의 주민소송제의 경우, 2006년 도입된 이래 20여건의 소송 중 단 한 차례만 주민들이 승소했다. 피고가 되는 공무원만큼 원고인 주민들이 풍부한 자료를 갖추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시민단체들은 공무원의 권력남용을 제대로 막기 위해서는 충분한 정보공개 역시 이뤄져야 한다고 보고 있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