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말해야 할 것]軍 문민통제 묘안 없나

대선개입ㆍ인권침해 일어나도 ‘무풍지대’… 옴부즈만 등 견제장치 필요

“국방부에서도 거기가 뭐하는 데인지 아는 사람이 드물었다. 우리도 제보를 받고 믿을 수가 없어서 3개월 동안 꾸준히 자료를 요구하고 추구하는 과정에서 그 사람들이 거짓말하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국군 사이버사령부의 대선개입 공작 실체를 밝혀낸 민주당 진성준 의원실 관계자의 말이다.

사이버사령부는 2010년 1월 국방정보본부 예하 사령부로 설립되었다. 2011년 9월 국방부 직속 사령부로 배속전환 증편되었다. 병력은 약 1000명. 이들이 지난 대선에서 벌인 공작의 실상은 제보를 바탕으로 민주당 국회의원들의 끈질긴 추적이 없었다면 그냥 묻힐 뻔했다.

상관 지휘받는 군사법원 판결 뻔해
정치적으로 논란이 된 사건들은 이명박 정부 때부터 불거졌다.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던 국방부 불온서적 목록 사건이 발생한 것은 2008년이다. 그해 10월, 군 법무관 7명이 학문의 자유 등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이 12월 19일 국방부에서 사이버사령부 댓글의혹사건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한 후 기자회견장을 빠져나가고 있다. 이날 국방부 조사본부는 군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위반한 행위는 있었으나 대선에 개입한 것은 아니라고 발표해 꼬리 자르기 발표라는 비난을 받았다. | 김정근 기자

이듬해 국방부는 헌법소원을 낸 군 법무관 2명을 군 위신 실추, 장교 품위 손상 등을 이유로 파면조치했다. 재판 끝에 파면 결정된 법무관들은 취소 결정을 받았지만 관련 근거가 된 군인 복무규율 16조 2항은 합헌 결정이 내려졌다.

2011년 불온서적 리스트는 ‘장병 정신저력 강화에 부적합한 서적’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유지되었다. 오히려 19권이 추가되었다. 책에만 그치지 않는다. ‘아리랑’을 비롯, 약 50곡의 노래를 불온곡으로 지정해 부대 내 노래방기기에서 삭제토록 했다는 것도 지난 12월 중순 밝혀졌다.

“영화 ‘변호인’을 보면 고문에 개입했던 군의관이 재판정에 나와 양심선언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걸 탈영범으로 몰아 헌병대가 체포해 가는데 물론 허구적 사실을 다뤘지만, 현실적으로 그것은 가능한 일이다. 기본적인 헌법적 권리인 양심의 자유 위에 군림하는 군사법 시스템에 대한 전면 검토가 필요하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의 말이다. 인권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군대에 대한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우선해야 할 것은 ‘군의 문민통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YS정권 때 하나회 숙청이 해방 후 지금까지 유일한 군의 문민통제 사례다. 국군 사이버사령부의 사례는 총칼만 안 들었지 쿠데타를 일으킨 것과 같은데, 군인의 기소와 수사를 담당하고 있는 군사법원이 과연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겠는가. 국방부의 조사 결과 발표만 보더라도 결국 장관이 지시자이자 보고를 받은 사람인데, 결론은 우려했던 것처럼 개인적 일탈이고 대선개입을 한 것은 아니라는 것 아니냐.”

군사법원의 경우 국방부 장관과 군단장 및 사단장의 지휘를 받는다. 근본적으로 삼권분립의 원칙에 위배되는 기관이기 때문에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이 임 소장의 주장이다. 다른 군 인권 관련 사건에서도 마찬가지의 문제가 불거진다.

지난 10월 성관계를 강요받고 성적 모욕을 당했다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 여군 대위 사건, 해병대 성추행 사건 등에서 가해자가 무죄를 받고, 피해자와 가해자가 뒤바뀌는 경우 역시 근본적으로 따지고 들어가면 문민통제를 받지 않는 군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 임 소장의 지적이다.

성추행 등 가해자가 피해자 둔갑도
논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 대선에서 야권후보였던 문재인 후보는 군 인권 문제와 관련해서 “법률로 장병들의 인권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행정부 소속이 아닌 제3의 ‘군인 권리 보호기구’ 설립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또 군 영창제도와 관련해서도 “적법한 사법절차를 거치지 않은 자의적 구금제도”라며 폐지를 공약했었다. 하지만 현재는 ‘군에 대한 문민통제 방안’에 대한 논의는 답보상태다.

일단 추진해볼 수 있는 것이 군 옴부즈만의 도입이다. 임 소장은 “의회 산하에 복지·인권·인사 문제를 투명하게 들여다보고 관여할 수 있는 장관급 조직인 옴부즈만 제도를 두는 것이 문민통제 시스템의 핵심”이라며 “독일의 경우 여성이 국방장관을 맡고 있어도 아무런 문제없이 시스템이 작동되는 이유”라고 말했다.

현재 국방위 안규백 의원이 제출하고 있는 ‘군인 지위향상에 관한 기본법’에 국방 옴부즈만을 설치한다는 내용이 들어가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충분하지 않다는 평가를 받는다. 관련해서 국가인권위원회처럼 ‘기구법’으로 만들어져야 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