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말해야 할 것]탈핵, 누가 대안이 없다하는가

원전마피아 등 경제적ㆍ기술적 문제 과장된 논리로 사활 건 반대

사건 이전과 이후. 이미 일본 사회는 근본적으로 변했다. 2011년 3월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기준이다. 심지어 고이즈미 전 총리까지 ‘탈핵’을 언급하고 나섰다. 그렇다면 이웃에 위치한 우리는.

정권이 교체된 후 한국 상황도 조금은 달라진 모양새다. 박근혜 정부에서 ‘원전비리’ 사건은 1년 내내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비록 당선되지는 못했지만, 지난 대선에서는 야권 후보가 ‘탈원전’ 의지를 천명한 바 있다.

2013년 3월, 대통령 직속기구에서 국무총리 직속기구로 한 급 낮아진 모양새로 바뀌었지만 원자력안전위원회에는 최초로 야권이 추천한 ‘탈핵’ 인사 2명이 위원으로 들어갔다. 일본산 수산물 등 방사능 먹거리 안전성 문제가 본격적으로 사회적 의제로 떠올랐다.

지난 9월 환경운동연합, 환경보건시민연대 등 환경시민단체들이 일본대사관 앞에서 방사능 오염 수산물 제사상 풍자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강윤중 기자

2012년부터 전국적 이슈가 되고 있는 밀양 765㎸ 송전탑 문제도 신규원전과 관련이 있다는 점이 드러나면서 논란은 가중되는 양상이다. ‘탈핵 패러다임’은 한국에서도 시민권을 얻을 수 있을까.

박근혜 정부 원전 줄일 의지 없어
아직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정부는 원전비리를 발본색원하겠다고 누차 밝혔지만, ‘원전 안전성 강화’를 넘어서는 주장은 아니다. 2035년까지 에너지 수급비율을 결정하는 ‘2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에서 민·관 워킹그룹은 원자력의 비중을 22~29%에 맞춰야 한다는 ‘권고’안을 냈다.

산업자원부는 이 중 가장 높은 비중인 29%에 맞춰 시나리오를 내놓고 계획안 확정작업을 진행 중이다. 원자력안전위원회에 비상임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김익중 동국대 의대 교수는 “이명박 정부 때 목표가 원전 42기를 돌리는 것이었는데, 29% 안이 확정되면 한 기가 줄어든 41기를 돌리겠다는 것”이라며 “그 개수는 지금 사용기한이 만료된 원전들의 수명을 다 연장하고, 신고리 8호기까지 고리에 추가로 4기, 영덕과 삼척에 각각 4기씩 짓도록 예정되어 있는 것에서 한 개를 줄이겠다는 것에 불과한 계획”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런 원전 부흥 계획이 세계적 추세에 부합하느냐는 것이다. 현재 원자력발전소가 제일 많은 나라는 104기를 운영하고 있는 미국이다. 다음은 프랑스로 58개다. 하지만 미국은 지난 30년간 새로 지은 원전이 없다. 2035년까지는 미국이나 프랑스에 지어진 원전 대부분이 폐로에 접어들게 된다.

김 교수는 “한국이 2035년에 41기를 돌리게 되면 현재 32개를 돌리고 있는 러시아를 추월하는 숫자로, 그때쯤이면 전 세계 1·2위국이 될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유럽이나 미국은 원전에서 철수하는 모양새인데, 아시아나 개도국이 “뒤늦게 상투를 잡고 뒤처리를 해야 하는 형국이 될 공산이 크다”는 설명이다.

이미 폐로 시한을 2년 넘긴 월성 1호기 수명연장 여부를 둘러싼 사회적 논란도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월성 1호기가 건설된 것은 1983년. 예정 수명시한은 30년으로 원래는 2013년이면 폐로에 들어갔어야 했다. 2014년 초에 원자력안전위원회 등의 결정을 거쳐 수명연장 내지는 폐로 결정이 최종적으로 내려지게 된다.

월성 1호기는 중수로 방식으로 지어진 원자로다.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기후에너지국장은 “전 세계적으로 중수로로 지어진 원전이 수명연장된 사례가 거의 없다”며 “아직 폐로 사례가 없는 한국 상황에서 경험·기술 축적 차원에서라도 폐로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2014년 6월 30일 완공 예정인 경주 방폐장을 둘러싼 논란도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방폐장이 건설된 지반 안전성 문제 등이 이미 제기되어 있고, 방폐장 건설 후 주변지역의 방사능 오염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를 가능성이 많다.

김 교수는 “이미 원자력안전위원회 내부에서 논의가 시작되었는데 시민사회에서는 방사능 누출이 확실할 것으로 보고 있는 반면, 정부와 원자력계에서는 방사능이 새더라도 기준치 이하이기 때문에 안전할 것이라고 반론을 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단계적 폐기… “기술적 준비도 충분”
탈핵 주장에 대한 흔한 비판은 “당장 원전을 폐쇄하면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게으른 비판이다. 탈핵 주장을 펴는 사람들 중 지금 당장 운영 중인 모든 원전을 올스톱하고 전면 폐쇄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는 사람은 없다.

양이원영 국장은 “탈핵 주장은 현재 지어져 있는 원전은 정해진 수명기한까지만 최대한 안전하게 운영하는 대신, 아직 지어지지 않은 신규원전 계획의 경우 계획을 재검토하는 것을 통해 전체 원전 비중을 줄여가자는 것”이라며 “탈핵 주장에 대한 비판들을 보면 경제적·기술적 문제를 흔히 지적하지만 경제적·기술적 준비는 이미 충분히 되어 있고, 오히려 정치적 문제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탈핵에 대한 비판은 지속적으로 원전을 지어야 이익을 보는 ‘세력들’의 정치적 문제제기라는 주장이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